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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써도 온실가스 제로? 기업들, 근거는 공개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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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 탐정]<3> '탄소중립' 석유·LNG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리터당 12원만 더 내면 친환경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석유가 등장했다. SK에너지가 지난해 11월부터 판매중인 ‘탄소중립석유’다. 석유는 생산ㆍ유통ㆍ사용 전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기후위기의 주범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이 제품은 좀 다르다고 한다. 판매량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넷제로’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기후위기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잘 타던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건 평범한 운전자들에게 부담이다. 이런 번거로움 없이도 탄소배출권 값 12원만 더 내면 ‘더 건강한 지구를 위해 동참’할 수 있다고 하니 솔깃할 수밖에 없다. SK에너지도 이번 캠페인을 “운전자가 탄소중립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온실가스 저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착한 소비를 직접 실천하게 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보다 한발 앞서, 2019년 세계 2대 정유기업인 로열더치셸(이하 셸)도 네덜란드와 영국 등에서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리터당 1유로센트(13.39원)만 더 내면 탄소중립석유를 살 수 있다는 ‘드라이브 카본 뉴트럴' 캠페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네덜란드 정부는 셸에 캠페인 광고 중단 명령을 내렸다. 영국에서도 셸의 캠페인이 ‘그린워싱’이라는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화석연료에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들 마법 따위는 없다’는 이유다.
산업계가 ‘탄소중립’ 화석연료를 활용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국내에서도 SK에너지에 앞서, 지난해 6월 GS칼텍스가 스웨덴 정유기업 룬딘사로부터 탄소중립원유를 수입했다. 포스코 역시 지난해 3월 독일기업 RWE로부터 탄소중립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했고, GS에너지도 2019년 쉘에서 탄소중립LNG를 구매했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친환경 경영’(GS칼텍스)이자 ‘ESG 경영을 적극 실천’(포스코)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SK에너지는 이 제품을 소비자에 팔고, 나머지 업체는 내부에서 쓰고 있다.
기업들이 말하는 탄소중립 열쇠는 ‘상쇄’다. 쉽게 말해 화석연료를 쓰는 만큼 나무를 심어 흡수하면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숲 1헥타르당 연간 탄소흡수량은 약 9~18톤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나 폐기물을 연료로 재활용하는 것 등도 상쇄사업 중 하나다.
직접 나무를 심고 할 수도 있지만, 위 기업들이 택한 건 탄소배출권 활용이다. 다른 기업이나 기관이 친환경 사업을 하거나 온실가스를 감축한 대가로 발급받은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포스코와 GS가 수입한 연료는 제조사가 이미 배출권을 구매한 뒤 판매한 경우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만으로는 실제 탄소중립이 가능한지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기후정책연구소인 카본마켓워치에 따르면 탄소중립 광고가 유효하려면 우선 다음과 같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전 과정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량과 계산방식 △어떤 사업을 통해 탄소배출권이 발행됐는지 △배출권 발행기관의 신뢰성 △배출권 가격 등이다. 실제 탄소중립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기본 데이터다.
하지만 연구소가 2020년부터 2021년 9월까지 확인된 탄소중립 화석연료 거래 18건을 분석한 결과 필요한 정보를 모두 공개한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카본마켓워치는 포스코와 RWE의 탄소중립LNG 거래도 분석에 포함했는데, 배출권 공급사(골드스탠더드)만 공개됐을 뿐 대부분의 정보가 비공개라고 지적했다. 실제 포스코는 탄소중립LNG의 온실가스발생량이 약 3만5,000톤(채굴 및 액화 2만8,000톤, 수송 7,000톤)이라고 밝혔을 뿐, 계산식이나 탄소배출권의 종류 등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배출권 가격 역시 “공급사와의 비밀 유지 의무에 따라 공개가 어렵다”는 답변이다.
정보공개가 부실한 건 GS칼텍스도 마찬가지다. GS칼텍스는 탄소중립원유 200만배럴 도입 사실을 알리면서 ‘일반적인 유전 평균보다 탄소배출량이 40배 낮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왔는지, 탄소상쇄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진행됐는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실상 룬딘사 홈페이지의 상품소개에 실린 정보를 그대로 소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다양한 시도 차원에서 경제성 검토를 위해 한번 도입해 본 거라 정확한 데이터를 분석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탄소배출권 가격 계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화석연료 배출량만큼의 배출권을 사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텐데 실제 그만큼의 가격을 감당했느냐는 거다.
SK에너지의 탄소중립석유에 붙은 배출권 비용 12원이 그 예다. SK는 이에 대해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에 대한 가격”이라며, “생산부터 소비 직전 단계에 발생하는 탄소배출분은 회사가 부담했다”고 설명한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은 이 같은 계산에 의문을 제기했다. 석유의 경우 소비단계, 즉 주행시 온실가스 배출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휘발유·경유차 주행시 평균 탄소배출량은 154.8g/㎞이다. 같은 자료에 따라 자동차 리터당 평균 연비를 15.7㎞로 가정하면 석유 1리터당 2.43kg의 탄소가 발생하는 것이다. 리터당 배출권 가격 12원을 적용해 계산하면 소비단계의 배출량 상쇄를 위해 1톤당 약 4,938원짜리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3월 현재 한국 배출권시장의 배출권 가격은 톤당 3만원,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은 약 8만9,000원이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SK에너지의 탄소중립 휘발유는 온실가스 저감에 필요한 상쇄비용을 지나치게 축소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탄소중립 석유를 만들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SK에너지에 제품 1리터당 실제 온실가스 발생량 등을 물었지만 “복합적인 사유로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보공개 여부는 네덜란드 정부가 셸의 탄소중립석유 광고를 ‘그린워싱’이라 판단한 핵심이었다. 시민들이 이 광고를 제소하자 네덜란드 광고위원회는 셸에 ‘석유 소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조림을 통해 상쇄된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했지만 기한내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위원회는 이에 환경광고법 위반으로 셸의 ‘탄소중립’ 광고를 중단시켰다.
국내 기업들의 홍보도 명확한 정보를 밝히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정림 법무법인 태림 변호사는 “제품 자체(석유)가 넷제로가 아니라 배출권 구매로 상쇄시킨다는 것을 광고에 표시하는 것은 물론, 실제 상쇄가 되는지 등을 실증 가능한 데이터에 근거해 밝혀야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환경부의 ‘환경성 표시ㆍ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도 환경성에 대한 정보를 누락, 은폐, 축소시키는 것을 기만적 표시ㆍ광고라고 본다.
그런데 정보공개만 투명하게 된다면 화석연료도 ‘탄소중립’일 수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탄소상쇄는 어디까지나 이론과 계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나단 크룩 카본마켓워치 정책담당관은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탄소배출권을 산다고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약 300년에서 1000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문다. 기업이 나무를 심어서 탄소배출량을 흡수하고자 해도, 수백 년간 남아있는 양을 완전히 흡수할 때까지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탄소배출권 판매 기관이 벌이는 감축사업이 실효성이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돼도 기후위기로 산불 등 재난이 잦아져 좌초될 위험도 크다. 실제 넷제로 달성까진 극복해야 할 변수가 많은 것이다.
크룩 정책담당관은 “탄소배출권은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충분히 한 뒤에도 줄이기 어려운 부분을 상쇄하라는 취지로 고안된 것”이라며 “탄소배출량은 그대로 둔 채 ‘탄소중립’이라며 그린워싱을 하기에는 기후위기의 현 상황이 너무도 급박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단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당장 화석연료를 쓰는게 불가피하니 우회적인 노력이라도 하는 거라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정확하지 않다. 실제 효과는 탄소 ‘저감’에 그치기 때문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전문가인 은기환 한화자산운용 책임운용역은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모든 활동을 탄소중립이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후위기를 위해 기업이 해야할 근본적인 노력은 '감축'이기 때문에, 이 같은 홍보는 장기적으론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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