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백 투표함·기표 용지 등 곳곳 사고
빛바랜 36.9% 투표율… 본투표 대책을
4, 5일 20대 대선 사전투표가 역대 최고 투표율(36.93%)을 기록했으나 미숙한 선거관리로 대혼란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는데도 안이하게 대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이 무겁다. 어떤 변명이나 사과로도 선거 신뢰성을 훼손한 잘못을 씻기 어려운데 6일 입장문 발표에서도 심각한 상황 인식이 안 보인다. 부정선거 의심과 선거 불복으로 이어질지 모를 중대한 위기다.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나서서 제기된 의혹을 일일이 규명하고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야 하며, 9일 본투표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5일 투표소를 찾은 자가격리자들은 넉넉지 않은 기표소와 투표용지 인쇄기로 1~2시간씩 줄을 서는 불편을 겪었고 신원 확인이 부실하거나 감염 우려로 참관인이 참관을 거부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것만도 문제인데, 투표용지를 쇼핑백이나 종이박스에 담아 참관인 없이 투표함으로 옮기거나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투표자에게 주어지는 일들도 발생했다.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아 선거 불신을 야기할 치명적인 사고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선관위다. 자가격리자 사전투표를 5일 오후 5~6시로 시간을 겹치게 해 놓고 기표소와 동선만 분리한 지침부터 문제다. 그러면서 법규에 따라 투표함은 1개만 두었고 확진자 투표지는 소쿠리에 담아 옮긴다는 허술한 매뉴얼을 마련했다.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가격리자 투표시간을 오후 6시~7시30분으로 제안한 것도 무시했다. 기표된 용지가 발견된 일에 대해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은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며 유권자만 탓했다. 무능과 무책임이 극에 달했다고 하겠다.
본투표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관위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이미 고개를 든 선거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부정의 소지는 없다”는 입장문을 배포한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 위원장이 국민 앞에서 직접 진상을 소상히 밝혀야 하며 필요하다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야 한다. 정치권이 여야 없이 선관위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섣불리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선관위원장 사퇴 등 책임 추궁은 남은 투표를 무사히 끝낸 뒤에 할 일이다. 투표권을 행사할 유권자가 아직 절반 이상 남아있다. 이 일이 유권자 권리침해나 선거불복의 소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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