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그 책은 어디 갔을까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우리부(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 회의에서 기자들이 쓴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보낼 정치인들을 골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이낙연 당시 경선 후보와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 정의당 여영국 대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살펴 달라”는 취지의 편지도 동봉했다.
각 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11월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도 책을 보냈다. 그리고 4명의 대선주자에게 중간착취를 근절할 대책을 질의했다.
나와 후배 기자들은 기대감과 절박함을 가지고 기다렸다. 지난해 1월 ‘중간착취의 지옥도’ 시리즈를 처음 보도한 후 노동자들에겐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으나, 이들의 고통을 줄여줄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좌절감은 무척 컸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질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느꼈다. 마침 대선이지 않은가.
다행히 이재명·심상정 후보와 안철수 당시 후보가 중간착취 근절 대책을 약속했고, 공약집에도 넣었다.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만 답을 거부했다. 12월 윤 캠프 측은 “노동 공약이 발표된 것이 없어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 최근, 마침내 윤 후보 공약집이 나왔다. 살펴보니 관련 공약은 담겨 있지 않았다. 예상은 했으나 아주 실망스러웠다. 비정규직이 902만 명에 이르는데, 그의 공약집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윤 후보는 정치 초보라서 국정 주요 문제에 무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외면’이다. 윤 후보가 책을 받아본 건 무려 5개월 전이다. 다른 정치인들과 같다. 캠프 측 관계자가 편지와 책을 받아보고 전달하지 않았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윤 후보의 주변엔 노동 문제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단 뜻이 된다. 한국일보가 ‘불평등끝장넷’(참여연대 등 주요 시민단체 연합체)과 함께 복지·노동분야 공약을 질의했을 때도, 역시 윤 후보만 답변을 거부했다.
윤 후보는 왜 절박한 목소리들을 외면하는 걸까.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더 문제다. 그가 보수 후보여서도 아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선과정에서 중간착취 금지 공약을 발표했었다.
기본적으로 윤 후보의 언행에선 심각한 ‘결여’가 보인다. 약한 이를 가엾이 여기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즉 ‘애민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부정식품이라도 먹게 해야” “(최저임금보다 적은) 월 150만 원을 받게” “주 120시간 일하도록”. 부정식품을 먹는 이가 있다면 좋은 것을 먹일 방법을 강구하고, 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있다면 어떻게 보호할지 골몰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건만.
투표를 앞두고 한 노동자가 어머니와 싸우고 울었다며 쓴 글을 봤다. “엄마가 그 사람한테 투표하면 나 또 주말에 못 쉰다. 작년까지 주말에도 일했는데, 이제 겨우 주말에 쉬게 됐는데. 월급도 깎일 거야, 애들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몰라.”
윤 후보는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1위를 차지한 후보이며,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의 ‘개인적’ 영광이 약한 이들의 눈물이 되지 않도록, 한번 돌아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윤 후보 캠프 사무실의 어느 구석에 그 책이 버려져 나뒹굴고 있을지 궁금하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