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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민 20%가 대피 신세... 까맣게 탄 집에 눈물도 메말랐다

입력
2022.03.05 19:15
수정
2022.03.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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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휩쓴 마을마다 전소 주택 쏟아져
대피인원 1만명 넘어 수용공간도 부족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소 인근 신화리 한 주택이 5일 산불로 전소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소 인근 신화리 한 주택이 5일 산불로 전소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김정혜 기자

“몸만 겨우 빠져 나왔어요.”

한울원자력발전소 바로 옆 마을.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1리에 사는 전종두(57)씨는 4일 울진 산불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산불이 집 뒷산까지 옮겨 붙어 타올랐지만, 피신은커녕 몸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전씨는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요청하려고 했지만, 산불로 통신장애마저 발생해 휴대폰은 먹통이었다.

화마 앞 속수무책... 극적으로 목숨 건진 장애인

전씨를 걱정한 활동지원사는 "산불이 원전 주변까지 덮쳤다"는 얘기를 듣고 차를 몰아 한달음에 달려왔고, 불길이 전씨의 집을 휘감기 전 극적으로 전씨를 집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전씨는 무사히 이재민 대피소인 울진읍 국민체육센터로 피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망연자실했다. 산불이 고목1리 마을 전체를 덮쳐 그의 집을 몽땅 태워버린 것. 보금자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씨는 “대피소에서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집에 가보니 모두 잿더미가 돼 있었다”면서 “뇌출혈 약도 들고나오지 못했는데 다 타버려 약봉지조차 찾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목리 못지 않게 피해가 큰 북면 검성2리에 사는 김순화(69)씨는 산불 소식을 듣자마자 ‘대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같은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챙기느라 아무 것도 들고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경북 울진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이 5일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대피해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울진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이 5일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대피해 있다. 김정혜 기자


화물칸에 사람 싣고 극적으로 마을 탈출

김씨와 동네 어른들이 검성2리 마을을 탈출한 모습은 거의 한 편의 재난영화와도 같았다. 그는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집을 두고 어딜 가느냐’며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2인승 픽업트럭 앞에 3명, 짐칸에 4명을 겨우 태우고는 사방으로 불꽃이 튀는 도로를 정신 없이 달려 대피했다”고 말했다.

대피소에서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5일 마을을 찾은 김씨는 다행히 집이 불에 거의 타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웃 집들이 몽땅 타버린데다 4년 전 언니인 자신을 따라 검성3리에 집을 지어 이사 온 동생 김말여(60)씨의 주택이 잿더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생 부부의 집이 3년 전에 태풍 미탁으로 망가져 겨우 수리를 끝낸 상황이었는데 이번 산불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탔다”면서 “동생이 새까맣게 탄 집을 보며 너무 울어 눈물도 말라버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오전 11시 17분쯤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시작된 울진 산불은 밤사이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확산해 강원 삼척까지 번졌다가 이날 다시 남하해 군청이 있는 울진읍내로 옮겨 붙고 있다.

4만7,000명 군민 중 1만명이 대피

울진군은 울진읍 16개 마을 주민 6,500명에게 문자 등을 보내 울진국민체육센터 등으로 대피할 것을 안내했다. 일부 지역은 통신망이 두절되고 휴대폰이 없는 고령의 주민도 있어 군청 직원들이 일일이 집을 방문해 대피시키기도 했다.

경북 울진 산불이 동시다발로 확산되면서 5일 오후 울진읍까지 번져 읍내 울진초등학교 뒤 산 위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울진 산불이 동시다발로 확산되면서 5일 오후 울진읍까지 번져 읍내 울진초등학교 뒤 산 위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김정혜 기자

대피소에 피신한 주민 수는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대략 1만명 가까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울진지역 인구 수가 4만7,0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주민 5분의 1이 대피한 셈이다. 불길이 동시다발로 확산돼 한꺼번에 많은 주민들이 몰리면서 대피소인 울진국민체육센터 등은 텐트 한 동에 5, 6명이 함께 지내야 하거나 일찌감치 수용인원을 초과해 일부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번 산불의 영향구역은 이날 오전 7시 30분 기준으로 6,066㏊다. 이는 국제공인 축구장(0.714㏊)의 8,496개 면적에 해당한다. 또 주택 116채가 불에 타는 등 158곳에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울진=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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