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시간'의 함정

입력
2022.03.05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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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녁 식사 시간’으로 약속을 한다면 몇 시에 가야 할까? 저녁이란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는 사이이니, 한국에서는 대략 예닐곱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삶 속에서 시간이란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우선 기준이 되는 ‘해 질 무렵’이 지구의 어디냐에 따라 다르지 않은가?

파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부부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교사와 반 친구 서너 명에게 손수 자국의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약속된 날 6시 무렵, 과일과 주스를 들고 초인종을 누르니 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을 연다. 음식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아차, 날짜를 잘못 알았나? 문제는 ‘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다. 유학생 부부의 고향에서 저녁 식사 시간은 늦은 9시 정도라고 했다.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는 집주인과 3시간을 보내고서야 기다렸던 저녁을 먹고 밤 11시에 나온 기억이 생생하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저녁 뉴스는 한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두 대륙의 저녁 식사가 한 시간 정도 차이가 나고 이것이 뉴스 시간에 반영된 셈이다. 하물며 하루 세끼 자체도 문화권별로 다 다른데, 우리는 시간을 임의대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면 ‘주말’은 언제일까? 한국어 교실에서 주말 활동을 말할 때 있었던 일이다. 주말에 뭘 하느냐고 물으면 유학생 대부분은 집에서 쉰다거나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고 답한다. 그런데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 학습자들만 도서관이나 실험실에 간다는 것이다. 주말이란 한 주의 마지막 날인데, 종교적으로 금요일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는 금요일의 하루 앞날인 목요일이 주말로 계산된다. 그들은 한국말 ‘주말’을 목요일로 알고 있었다. 사실 한 주를 바라보는 시각도 문화권별로 다르다. 어떤 곳은 7일을 5일과 2일로 나누지만, 금요일 오전까지 일하는 문화에서는 4.5일과 2.5일로 나눈다.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개념이란 없다. 한국에서도 토요일 오전에 등교하고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1주일이란 5.5일과 1.5일로 구성된 것이었다. 밤 12시가 곧 통행금지를 뜻할 때도 있었다. 최근 뉴스 속의 밤 9시, 밤 10시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영업 시간과 관계없었다. 경험에 따른 보기도, 실존하지 않을 모범적인 보기도 문화권과 문맥을 넘어서면 더 이상 보기가 아니다. 말에 원형을 세우면 그 말에 자신이 얽매이기도 한다. 시간을 가리키는 한국말이 우리 삶을 어떻게 또 얼마나 조정하고 있는지 오늘도 궁금하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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