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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쥐 레이저 쬐니 털이 풍성…뜻밖에 탈모인의 희망으로 [그렇구나!생생과학]

입력
2022.03.22 05: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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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력 레이저로 탈모 치료 원리

탈모는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20대 대선판에 등장했던 탈모 공약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탈모는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20대 대선판에 등장했던 탈모 공약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머리털 나는 약만 개발하면 노벨상 탄다.'

탈모 치료법을 다룬 기사를 보면 어김없이 이런 우스개 댓글이 달리지만 탈모인들은 정말 애가 탄다. 웬만한 암도 치료하는 세상인데 정작 천만 탈모인의 고민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치료제는 아직 없다.

그나마 탈모 치료를 위한 다양한 보조 치료제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최근엔 '레이저 치료기'가 주목받고 있다. 뜨겁지 않은 빨간 레이저(저출력 레이저)를 머리에 쬐면 레이저에서 나온 빛 에너지가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낭을 자극해 탈모를 치료하는 방식이다. 이뿐 아니라 레이저는 피부재생, 염증 치료 등 다방면으로 쓰인다.

의학 분야에 레이저가 등장한 건 50여 년 전 의외의 실험 결과가 단초가 됐다. 지금은 레이저가 의학을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지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아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의료계의 평가다.

누구도 정확한 용도 몰랐던 레이저

21일 과학계에 따르면 레이저는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방사선 유도방출에 의한 광증폭)'이란 영문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빛이란 뜻이다.

최초의 레이저는 1960년 과학자 시어도어 메이먼이 미국 휴즈연구소에서 발명한 붉은빛의 '루비 레이저'다. 보석 루비가 매질(매개물)로 이용됐다.

시어도어 메이먼은 1960년 인류 최초의 레이저를 만들었다. 루비 막대에 플래시 램프를 코일 형태로 감은 루비 레이저가 그것이다. LG사이언스랜드 제공

시어도어 메이먼은 1960년 인류 최초의 레이저를 만들었다. 루비 막대에 플래시 램프를 코일 형태로 감은 루비 레이저가 그것이다. LG사이언스랜드 제공

최초의 레이저에 대한 당시 대중들의 반응은 상당했는데, 언론이 메이먼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레이저가 정말로 죽음의 광선인가"였다. 공상과학 영화 속 '광선검'처럼 처음엔 무시무시한 무기로 인식됐던 것이다. 메이먼 역시 레이저가 절단이나 용접처럼 산업용으로 쓰일 것 같다고만 했을 뿐 그 스스로도 정확한 용도를 얘기하지 못했다.

레이저 쬤더니 털이 빨리 자라네

레이저는 처음에 군사용(미국 군대)으로 사용됐는데, 우연한 실험 결과 덕분에 의료 분야로 영역이 확대됐다. 1960년대 초 헝가리 의사 앙드레 메스터는 레이저가 피부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려고 실험용 쥐의 털을 민 뒤 루비 레이저를 쬐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레이저를 쬔 쥐가 암에 걸리기는커녕 대조군의 쥐보다 털이 훨씬 빠르게 자라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앙드레 메스터는 이 같은 실험 결과를 '레이저가 쥐털에 미치는 영향'(1967년)이란 논문으로 발표했고, 이 기술을 저출력 레이저 요법(Low-Level Laser Therapy·LLLT)이라고 이름 붙였다.

앙드레 메스터. 그는 레이저, 특히 저출력 레이저 치료법의 개척자로 불린다. 위키피디아 캡처

앙드레 메스터. 그는 레이저, 특히 저출력 레이저 치료법의 개척자로 불린다. 위키피디아 캡처

당시 레이저가 기대했던 것보다 약한 694나노미터(nm·10억 분의 1m)로 발사된 탓에 낮은 파장의 레이저가 털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피나르 아브치는 '탈모 치료를 위한 저출력 레이저 요법'이란 논문(PMC 등재·2013년)에 "이 실험이 빛과 신체 간의 상호작용인 광생체 자극의 첫 시연이자 의학 분야에 새로운 길을 연 계기가 됐다"고 썼다.

이후 LLLT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지금은 통증, 염증, 피부 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이 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탈모 치료는 어떻게

저출력 레이저(500~1,100nm)는 고출력 레이저처럼 열 에너지가 아주 강하지 않아 피부에 쬐도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저출력 레이저 치료법은 레이저나 발광다이오드(LED) 같은 인공광을 이용한 광선요법(phototherapy)이다. 식물에서 태양 빛(태양광)이 엽록소를 통해 식물세포로 변환되는 것처럼 특정 파장의 인공 광원이 피부에 침투해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일으켜 세포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자료 출처=LG전자

자료 출처=LG전자

흔히 대머리라고 하는 남성형 탈모증 안드로겐성 탈모는 안드로겐(남성호르몬의 총칭) 때문에 발생한다. 탈모가 진행되면 대표적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탈모 호르몬으로 불리는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변하는데, 이 DHT가 모발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 합성을 방해해 모발이 '성장기'에서 '퇴행기·휴지기'로 빨리 도달하게 만든다.

시중의 가정용 레이저 치료기(헬멧 또는 빗 모양)는 600nm 대역의 저출력 레이저를 내리쬐는 기기다. 붉은색의 저출력 레이저를 머리에 쬐면 빛 에너지는 모낭 세포에 흡수돼 세포조직 내 아데노신 삼인산(ATP)과 활성산소(ROS) 합성을 증가시킨다. ATP는 모든 세포의 에너지원인데, 이 ATP가 잠들어 있는 모낭 세포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레이저에 노출된 세포는 산화질소(NO)를 방출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세포의 대사활동을 촉진시켜 휴지기 모낭이 성장기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레이저 탈모치료기는 200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했을 만큼 안전성과 치료 효과가 검증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LG전자가 2020년 선보인 헬멧 형태의 탈모 치료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치료용 의료기기, 미국 FDA에서는 가정용 의료기기 수준의 '클래스Ⅱ' 등급을 받았다. 임상시험 결과 임상 참가자의 모발은 1㎠당 밀도가 21.64% 증가했고, 모발 굵기도 19.46% 굵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력 레이저 의학적 활용

저출력 레이저 의학적 활용


"레이저 치료 나날이 발전한다"

다만 레이저 치료법이 탈모를 관리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내는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보조 치료기에 머물러 있다. 죽은 모낭을 되살리지는 못해서다.

의학계는 앞으로 레이저 치료가 계속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어느 정도 파장의 레이저가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내는지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레이저 파장에 따라 피부에 침투할 수 있는 깊이와 기대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LG전자가 2020년 선보인 헬멧 모양의 가정용 탈모 치료기. 레이저와 LED를 광원으로 사용했다. 직진 방향으로만 흐르는 레이저와 빛이 넓게 퍼지는 LED의 특성을 고려해 광원을 구성한 것이다. LG전자 제공

LG전자가 2020년 선보인 헬멧 모양의 가정용 탈모 치료기. 레이저와 LED를 광원으로 사용했다. 직진 방향으로만 흐르는 레이저와 빛이 넓게 퍼지는 LED의 특성을 고려해 광원을 구성한 것이다. LG전자 제공

한 의학계 관계자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이 많지만 레이저의 광학적인 성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지면 적용 범위는 훨씬 커질 것"이라며 "인공지능(AI) 등 첨단 IT기술 접목으로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된 로봇 레이저 수술 같은 꿈의 기술도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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