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셋이 만났다

입력
2022.03.06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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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밸런타인데이에 흥미로운 만남이 있었다. 최근 '대통령의 염장이'를 발간한 유재철 선생님, '죽은 자의 집 청소'의 김완 작가님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추천사를 인연으로 만났고, 직업상 죽음을 마주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죽음의 전문가 셋은 공교롭게 연인의 날에 모였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유재철 선생님은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인 1호로 30년 넘게 장례지도사로 일하셨다. 오랫동안 그는 수천 명의 망자를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혀 관에 눕혀 왔다. 세상을 떠난 역대 대통령, 기업 총수의 장례와 큰스님의 다비식을 맡으며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책에는 망자가 떠나는 순간까지 그를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존중하는 결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무엇보다 망자를 이전 삶까지 포함해서 예우하는 자세가 그를 명장으로 만든 것 같았다. 죽음에 얼마나 진심인지 사무실 전화번호 뒷자리가 4444일 정도였다.

김완 작가님은 특수 청소부이자 특수청소업체 '하드웍스'의 대표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집을 정리하거나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한 사람의 흔적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시신이 오래도록 방치되어 심각한 악취를 내거나 들끓는 벌레를 치우기도 한다. 망자가 남긴 물건이나 편지를 마주하고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그 흔적을 남김없이 지워야 한다. 어질러진 집이나 정돈된 집이나 가슴이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책에선 그가 오래도록 시를 써 왔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글은 망자의 흔적을 보고 그의 생전 삶을 되짚어 보며 시작한다.

나 또한 응급실에서 근무하며 늘 죽음과 지척에 있다. 아직 생을 떠나지 않은 사람을 받아 사망을 선언하고 유족에게 인도하며 생생한 오열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 일화를 각색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 또한 해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는 막걸리와 어우러져야 하는데 낮이라 아쉽다고 소탈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고독하게 죽음이라는 경계로 넘어간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했다. 아직 죽음은 이 세상에서 지독한 음지에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씩 달랐다. 나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사람을 보았고, 작가님은 그가 남기고 떠나온 자리나 사고를 당한 현장을 보았으며, 선생님은 망자의 육신과 떠나갈 때까지의 유족의 모습을 보았다. 서로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교환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나아갈 방향이 있어야 했다. 나는 존엄한 삶을 바랐고, 작가님은 도움받을 수 있는 삶을 바랐으며, 선생님은 조금 더 나은 모습의 장례를 추구했다. 선생님은 대부분의 장례식장이 병원에 소속되어 수익을 내는 공간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셨다. 그는 국내에는 보편적이지 않은 '장례식' 문화를 만들고자 하셨으며, 시신을 태우는 다비식의 선구자로서 장작을 배열하는 황금 각도를 발견하셨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명장과 함께하는 한낮의 대화였다.

사실 죽음을 선언하는 직업, 죽음이 남긴 것을 정리하는 직업, 죽음 이후를 인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다. 다만 세상을 떠난 망자의 순간을 복기하면서 글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이 우리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헤어지며 다음의 막걸리를 기약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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