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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마저 갈라서게 만드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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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에서 죽고 나서 묻힐 만한 땅만 있으면 된다는 답을 내어놓는다. 지나친 열정으로 많은 땅을 소유하려는 욕심의 노예가 되면 딱 한 평 남짓 땅에 몸을 누이는 신세가 된다는 게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은 한 논문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얼마만큼의 공동체 정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비슷한 답을 내어놓는데, 공동체 정신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히틀러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에 만연한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새로운 아리아 인종의 공동체라는 비전으로 채워 주면서 권력을 잡았다. 최근 정치학자들의 연구는 나치에 대한 지지가 공동체적 결속력이 강하고 사회자본이 풍부한 지역에서 특히 높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허쉬만은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는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타협하고 절충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접착제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갈등의 이런 순기능에 대한 주장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하지만 모든 사회적 갈등이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타협과 절충으로 관리되지 못할 경우 복잡한 사회를 이어 붙여 주는 접착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연대를 녹이는 용해제가 되기 마련이다. 미국 사회의 극단적인 정치적·이념적 양극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갈등의 이런 파괴적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
인디애나대학 사회학자 이병규는 대규모 스마트폰 자료를 분석한 최근 논문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접전을 치른 대통령 선거 후에는 추수감사절 가족 방문을 위해 여행하는 미국인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이 치열하게 경합했던 2016년 대선 후 추수감사절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 다른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 저녁식사를 짧게 마치고 일찍 귀가했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선거 때 다른 후보를 지지한 가족과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추석 귀성길에 나서지 않거나 빨리 귀경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또 이병규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미국인들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중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의 비중이 더 줄었다고 한다. 마스크와 백신 등 팬데믹 대응법마저도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되는 문화에서 이런 사회적 관계의 이념적 동질화는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후보 간 오가는 말이 갈수록 험해진다는 느낌이다. 각 후보 열성 지지자들도 내 후보가 아니면 큰 재앙이라도 올 것 같은 결사항전의 자세다. 선거가 갈등이 표출되고 새로운 합의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니 이런 열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험한 말 속에 후보들이 내어놓는 비전은 잘 보이지 않고 타협과 절충의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어, 선거 기간의 갈등이 접착제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마저 갈라놓는 용해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슬슬 염려된다. 갈등이 접착제가 되려면 땅 한 평보다는 좀 더 넓은 연대가 필요한 게 아닐까? 미국의 경험이 현명한 한국 유권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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