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 비판하더니 양당으로 투신... '정치 불신' 키운 안철수 '철수 정치'

입력
2022.03.04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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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체제 비판하다 거대 정당과 손잡아
신뢰도 깎이고 다당제 등 정치개혁 기대 꺼져
차차기 노린 포석... 벌써부터 국민의힘은 견제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동계단(에스컬레이터)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동계단(에스컬레이터)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오대근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또다시 '철수'했다. 정치 입문 이후 벌써 4번째다. 이번 대선에서 수없이 강조해온 완주 의지와 단일화 상대인 윤 후보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스스로 뒤집었다. 이번엔 '좋은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며 지지자들의 기대마저 손쉽게 저버리는 행태는 정치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가 줄기차게 비판하던 '거대 양당체제'의 폐해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완주 의지 수차례 피력해 놓고...

안 대표는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 선언 후 4개월 동안 수차례 완주 의지를 다졌다. "내가 대통령이 되려 나왔다"며 정권교체를 위한 이른바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를 강조했다. 지난달 유세차량 사고로 선거운동원과 버스기사가 사망했을 때도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동지의 뜻을 받들겠다. 결코 굽히지 않겠다"고 했다. 당원의 유지를 받들어 완주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해석됐다.

단일화 전날인 2일 마지막 TV토론에서도 유권자들을 향해 "저를 선택해 달라"고 했다. 토론 직후 윤 후보를 만나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안 대표가 TV토론에서 완주하지 않을 본인 홍보에 할애한 시간은, 유권자 입장에선 다른 후보들에 대한 검증에 활용될 수 있었다.

윤 후보에 대한 평가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뀌었다. 지난달 22일 안 대표는 "상대방을 떨어트리기 위해 마음에 안 들고 무능한 후보를 뽑아 당선되면 어떻게 되느냐"며 "1년만 지나고 나면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라고 외쳤다.

'안철수법' 제정 청원, 국민의당 지지자도 '폭발'

안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에 피해를 보는 것은 유권자들이다. 더욱이 이번 대선의 재외국민 투표는 지난달 28일 완료된 상황. 그의 '다당제 정치'에 공감해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기만한 것으로 역풍이 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외국민 투표 종료 이후 후보 사퇴를 제한하는 '안철수법'을 제정해 달라"는 요청이 올라왔다.

안 대표의 홍보 플랫폼 '안플릭스'와 국민의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기대한 내가 부끄럽다" "완주할 수는 없었느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안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를 비교하며 "지지자들이 소액주주라지만 회사를 너무 쉽게 파는 것 아니냐. (합당을) 사업체 인수 합병쯤으로 생각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안철수 후보 단일화·합당 관련 발언

안철수 후보 단일화·합당 관련 발언

안 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매번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번 중도 사퇴 이전에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대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중도 하차를 선언했다. 10여 년의 정치 이력 중 창당·합당·탈당·분당 등의 경력도 화려하다.

안 대표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출마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는 이번 대선 불출마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그의 모호한 화법도 도마에 오른다. 안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과의 합당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당제가 제 소신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며 아리송한 말을 남겼다.

총리 등 입각, 당권 거쳐 차차기 포석

이번에도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을 들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안 대표가 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향후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주자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정치 개혁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안 대표가 이날 선거 직후 인수위원회 및 공동정부 구성을 함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회의원으로서 열심히 입법 활동을 했지만 그걸 직접 성과로 보여주는 그런 행정적 업무는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 후보가 당선하면 국무총리나 입각 등을 통해 행정경력을 쌓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동시에 "국민의힘을 더 실용적인, 중도적 정당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싶다"며 당권 도전도 선택지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국정 핵심 요직과 거대 정당의 대표를 거쳐 차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단일화 및 합당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소통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단일화 및 합당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소통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 이미지 강화

안 대표의 구상은 기대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갑작스러운 이번 단일화로 인해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강화된 것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거대 양당체제를 비판하다 거대 정당과의 합당에 합의한 것도 정치개혁의 불씨를 스스로 꺼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합당이 이뤄진다고 해도 국민의힘에 비해 왜소한 국민의당의 지분으로는 당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당장 당권을 두고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단일화 발표 후 "당권이라고 표현될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율할 생각이 없다"며 견제구를 던졌다.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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