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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선진국 비해 낮은 건 사실이나 ‘더 쓰고 보자’는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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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부의 ‘나랏돈’ 씀씀이에 대한 우려가 크게 번지고 있다. 안 그래도 ‘큰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의 확장재정정책이 규모와 쓰임새에서 적정한지를 두고 적잖은 논란이 지속돼 왔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코로나19 대응에 막대한 추가 재정이 투입되고, 급기야 대선을 앞둔 여야의 선심성 ‘돈 풀기’ 경쟁으로 사상 초유의 1월 추경까지 편성되면서 고삐 풀린 ‘재정중독증’과 국가부채 상황 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우려와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정부 출범에 앞서 나랏돈 씀씀이에 관한 몇몇 이슈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재정지출 증가 현황, 그에 따른 국가부채 규모 및 증가 추세의 적정성 등을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크다. 현 정부 들어 급증한 재정지출이 제대로 쓰였는지도 중요하다. 아울러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바람직한 조세정책 방향도 짚어봐야 한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최근 연구원 기관지 '재정포럼' 1월호 권두칼럼을 통해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의 재정여건은 더 악화됐다”고 공식 경고했다. 특히 그는 “정부부채 증가속도는 2011~2020년 연평균 9.2% 수준으로 전 세계(5.5%) 및 선진국(4.3%) 대비 매우 가파른 수준”이라며 중장기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차기 정부의 전략적 대응을 촉구했다. 재정과 국가부채 상황에 대한 김 원장의 진단을 구한다.
"일반정부 부채(D2)로 따져도 한국 국가채무 비율은 양호한 상태"
-전문가들 중에서도 재정지출을 더 늘려도 괜찮다는 쪽에선 국가채무(D1) 비율이 GDP 대비 약 44%(2020년) 수준으로 OECD 평균인 약 130%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걸 강조한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국가채무 비율만 해도 올해 이미 50.3%로 급증했고,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비금융 공기업 부채와 연금충당부채 등을 합친 국가부채(D4) 비율은 이미 120%에 육박했으며, 증가속도도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점을 우려한다. 지속 가능한 재정과 국가신용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할 때, 우리 재정상황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고 인식하는 게 적정한가.
“나랏빚의 국가 간 비교를 위해 보통 쓰이는 잣대는 일반정부 부채(D2)다. 중앙 및 지방정부의 회계기금 채무인 국가채무(D1)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것이다. 우리나라 D2는 지난해 GDP 대비 51.3%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범위를 넓혀 D2에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더한 D3를 기준으로 하면 GDP의 66.2%다. D2든 D3를 기준으로 하든, 일단 우리나라 국가부채 수준은 OECD 회원국들에 비해 상당히 낮고, 재정건전성도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게 맞다. 다만 GDP 대비 비율만으로 국가부채 상황을 평가하는 건 무리다. 똑같이 연봉 5,000만 원에 10억 원의 대출을 일으켰더라도, 집이 원래 부자인 사람에겐 대출이 큰 부담이 안 되는 반면, 자산이 거의 없이 연봉만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10억 원의 대출이 위험한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D2나 D3의 GDP 대비 비율을 맹신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정여건 특수성이나 부채 감당능력 등을 함께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가급적 국가채무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칼럼에서 우리나라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속도를 경고하셨다. 실제 우리나라 증가추이는 어땠고,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빠른가.
“2011~2020년 우리나라 연간 부채 증가율을 세계평균, 선진국, 신흥국 등 3개 집단과 비교했다. 해당 기간 중 우리나라 증가율은 연평균 9.2%였다. 반면 세계평균은 5.5%, 신흥국 평균은 10%, 선진국 평균은 4.3%였다. 신흥국보다는 약간 낮지만, 세계평균이나 선진국에 비해서는 매우 빠르다. 당장 국가채무 수준이 양호하더라도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현실을 나타낸다. 특히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세계 최고 속도의 저출산 고령화, 복지확대 요구 등에 따라 재정지출 증가 요인은 큰 반면, 잠재성장률 하락 등에 따라 세수 여건이 개선될 여지는 크지 않아 국가채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 가장 많이 증가
그래도 붕괴 직전의 소상공·자영업자 지원 확대는 불가피"
-역대 정부에 비해 현 정부의 국가채무 증가 정도는 어떤가.
“기획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간 국가채무는 299조2,000억 원에서 443조1,000억 원으로 총액 143조9,000억 원, 48% 늘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국가채무는 629조9,000억 원에 이르러 총액 186조8,000억 원, 42% 늘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채무액은 965조9,000억 원으로 늘어 총액 336조 원, 53% 늘었다. 증가비율이나 총액에서 현 정부 들어 가장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다만 코로나19라는 비상요인을 감안할 때, 현 정부 들어 국가부채 증가폭이 이례적으로 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채무가 늘어난 것처럼, 현 정부 역시 코로나19 대응 재정투입을 확대하면서 비상한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53%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OECD 평균 130%에 비해 훨씬 낮은 50% 선이기 때문에 코로나 집중 피해집단인 소상공·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은 더 해야 한다는 데 여야 정치권이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나.
“괴멸적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 현실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추가 지원은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국가부채나 재무건전성 시비를 벌일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각국의 재정지출 정도를 해당국 GDP 대비로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매우 적은 수준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평균이 GDP 대비 10.2%였고, 미국 25.5%, 영국 19.3%, 독일 15.3%, 일본 16.7%에 비해 우리나라는 6.4%(123조7,000억 원)였다. 붕괴된 기층 사업자 기반을 신속히 되살려 전체 경제회복의 선순환을 도모한다는 접근법이 절실하다.”
-이재명 후보는 “기축통화 편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니 국채 더 많이 찍어 나랏돈 더 써도 괜찮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의 절실함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이해되지만, 국가채무 관리 차원에서는 적잖은 우려를 산 것도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표준바스켓 통화 편입 가능성을 두고 기축통화 편입 가능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이고, 설사 편입된다고 해도 국가부채 위험이 거의 없는 미국 같은 현실적 의미의 기축통화국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재정상황이 그만큼 건전하다는 걸 강조한 얘기라고 본다. 다만 건전재정에 대한 낙관이 GDP 100%까지 국가채무를 늘려도 된다거나,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확대하더라도 흩뿌리는 방식보다는 생산적이고 실효적인 방식을 진지하게 찾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게 왜 위험한가.
“우리나라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지나치다는 건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론 경제성장을 통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담세여력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채무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저출산 고령화, 잠재성장률 하락 등에 따라 앞으로 채무 증가속도와 담세여력 증가속도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런 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나 국가채무 증가속도를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건 이런 문제가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현실적 잣대로 부각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재정관리를 보다 보수적으로 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변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는 광범위한 복지수요를 일으키는 반면,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연령인구 급감은 저생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쓸 곳은 급증하는데, 쓸 돈은 되레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둘째,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인한 성장잠재력의 둔화다. 성장률 하락은 조세수입 여건이 악화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다. 이는 내수기반이 두꺼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대외여건 등에 의해 성장세의 변동성이 크고, 그에 따라 세수의 안정성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향후 남북통일 등 한반도 정세 변화에 재정적으로 대비해야 할 필요다. 이런 특수성을 감안하면 다른 선진국들의 부채비율이 GDP 대비 100%를 넘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걸 준거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채무 못지않게 민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민간부채의 급증이 국가부채 문제의 위험도를 증가시키고 국가신용도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위기를 촉발한 게 민간의 과도한 부채였다. 종금사부터 시작해 은행 부실채권, 기업의 과도한 부채 등 숨겨졌던 민간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가신용도에 치명타를 가했다. 지금 민간부채가 한 2,000조 원 가까이 되고, GDP의 약 106%(가계부채)에 이른다. GDP 대비 비중으로 가계부채는 OECD 6위, 기업부채는 13위다. 이는 국제적으로 절대수준도 높고, 증가속도도 매우 빠른 것이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기업 및 자영업자 부채까지 더해지면 민간부채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막대한 민간부채는 위기 시 재정의 감당능력을 낮추고, 추가 세수여건을 악화시키게 된다. 빚 부담도 큰 가계와 기업에게 무슨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 있겠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수치로 국가채무 관리기준을 정하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수치 대신 바람직한 국가채무 관리 원칙 같은 걸 말씀한다면.
“수치 기준은 1993년 11월 EU의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 회원국들에게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부채비율은 60% 이하를 유지하도록 권고한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대부분 유럽국가들이 부채비율 60%는 다 넘고 있다. 부채비율 수치 자체를 절대적 기준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씀씀이를 위해 부채를 높이는 건 언제나 자제돼야 한다. 정치인들은 임기 중 증세보다는 채권을 발행해 부채로 인심 쓰기를 좋아하겠지만, 결국 후세들이 원금과 막대한 이자까지 감당해야 하는 거다. 따라서 공론화를 거쳐 정치인들이 함부로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도록 재정준칙 같은 걸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확장재정과 국가채무 급증은 결국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한 세수 보강, 또는 증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질소득 정체, 코로나 충격, 일자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 산업기반 해외유출 등 부정적 상황에서 증세를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차기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대다수 대선후보들이 재정지출을 늘릴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지만, 누구도 구체적 재원조달 계획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나랏빚을 더 내든, 세금을 올리든 모두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랏빚을 최대한 자제하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지출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다음이 세수 확충이다. 세수 확충도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올리는 방식의 증세는 마지막 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우선 과세기반을 넓힐 수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현행 세제상 빈틈이 적지 않아 과세에서 빠지는 부문이 꽤 있기 때문에 세정의 고도화를 통해 그런 부문에서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부가세도 이런저런 틈새를 통해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약 15%의 부과세 과세가 누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5%면 약 10조 원 정도다. 그런 수단을 쓰고 그래도 필요하면 증세인데, 증세는 당대와 후세 간 재정지출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형성한 후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기 정부는 그런 공론화를 시작할 필요가 크다.”
"공약 실현 돈줄은 결국 국민, 시혜성 공약을 세금청구서로 바라볼 필요"
-그동안 역대 정부마다 지출구조조정 얘기했지만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실효적 지출구조조정을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면.
“원칙은 성과분석 등을 통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예산을 줄여나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식으론 부지하세월이다. 부처별 예산을 정해진 비율대로 일괄 삭감하고, 삭감된 범위에서 해당 부처가 지출구조조정을 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일방적이고 거친 방식이지만,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현실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약 270여 개를 이행하는 데는 300조 원 이상의 재원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공약 200개를 이행하는 데는 266조 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 재정현황을 감안할 때 유력 대선후보들의 대규모 재정지출 공약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정치나 정부는 자원을 모아 다시 분배하는 파이프, 즉 도관(導管)일 뿐이다. 재정은 어떻게 쓰든 결국 국민이 내는 돈으로 충당되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돈을 내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공약을 통해 나라가 국민에게 뭘 해주겠다는 얘기는 정치인들의 얘기이고, 국민으로선 300조 원이든, 266조 원이든 결국 내 주머니에서 그만큼 돈을 내놓으라는 얘기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정의와 국리민복을 실현하는 길을 찾는 정치의 역할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 대선이 우리 국민에게 ‘선심성 공약’의 실체를 더 냉철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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