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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생 11년, 열한 번째 철수...안철수 결단인가, 배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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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철수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선언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단일화는 국민 여러분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과 지난 10년간 국민과 함께 달려온 안철수가, 국민의 뜻에 따라 힘을 합친 것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정치인 안철수가 또 물러났습니다.
지난달 2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며 "비록 험하고 어렵더라도 제 길을 굳건하게 가겠다", "아무리 큰 실리가 보장되고 따뜻한 길일지라도 옳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완주 의사를 내비쳤던 그였습니다.
지난달 13일 후보 등록 직후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 국민 경선 방식 단일화를 전격 제안한 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며 미련을 보이지 않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제20대 대선 사전투표(4일, 5일)를 하루 앞둔 3일 새벽 윤 후보와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하고 이날 오전 8시 윤 후보와 나란히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와 마주 잡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후보 단일화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윤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약속하며, 후보직 사퇴의사도 표명했습니다. 퇴장과 등장을 반복해온 '철수 정치' 경력에 또 한줄을 추가하게 된 것이죠. 안 대표가 내세운 이번 철수의 명분은, "더 좋은 정권교체"였습니다.
안 대표에겐 결단이었지만, 지지자들에겐 배신이었습니다.
"안철수를 10년 넘게 지지했는데, 끝내 돌아온 건 배신이다."
밤사이 터진 '단일화 날벼락'에 안 대표 지지자들은 당혹감을 넘어선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 팬카페인 '안국모' 커뮤니티에는 "오늘부로 안철수를 향한 지지 평생 철수다", "양당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더니 그 당에 들어가면 어쩌자는 말이냐" 등등 안 대표의 단일화 결정을 성토하는 글들이 잇따랐는데요.
지지자들이 '배신'이라고까지 표현한 데는 비단 안 대표가 대선 레이스를 중도포기해서만은 아닐 겁니다. '새정치', '기득권 양당체제 종식', '제3지대', '다당제' 등 그가 줄기차게 외쳐온 한국 정치 개혁이 좌절된 데 대한 실망이 더 크지 않을까요. 정치권 입문 11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철수 정치'에도, 믿어주고 지켜주려했던 '안철수의 정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답답함, 허탈함도 깔려 있어 보입니다.
당장 정치권에선 "다당제를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남아주실 줄 알았는데, 안타깝고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 (이제 안철수의) 제3지대의 길은 정리가 되신 것 같다"(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원망 섞인 한탄과, "전형적인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에 불과하다"(더불어민주당 선대위)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지자들의 분노와 세간의 비판을 모를 리 없겠죠. 안 대표는 기자회견 이후 "제 결심에 따라 실망한 분도 많이 계실 것"이라며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드는 실행력을 증명해 보답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다당제는 여전히 본인 소신"이라며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도 거듭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을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정당으로 변화시키고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 개혁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죠. 윤 후보와의 단일화는 정치개혁을 위한 승부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2011년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해, '새정치' 바람을 몰고 왔던 정치인 안철수. 벌써 열한 번째 철수를 단행한 그는 또 한번의 철수로 그의 다짐대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새정치의 꿈을 스스로 저버린 배신의 정치인으로 남게 될까요.
일단 그가 걸어온 '철수의 길'을 되돌아보면 그나마 답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철수 역사를.
처음엔 '감동'이었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철수 정치사'는 ①2011년 9월 6일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시작됐는데요. 자신이 유력 후보임에도 출마를 양보하는 모습은 기성정치 문법에 익숙하던 대중에게 신선한 울림을 줬죠.
2012년 정계 입문 이후 선보인 안 대표의 철수 여정 역시 기성정치 문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부정적인 쪽이었습니다.
②2012년 '대선 철수'가 대표적입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하며 선거 운동을 벌이던 그는 대선 당일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납니다. 정권 교체를 위해 함께하자던 손을 끝에 가서 갑자기 놓아 버린 거죠. 결국 그해 대선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2013년 3월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컴백한 안 대표는 무소속으로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여의도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죠. 이후 안 대표는 새정치연합이란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었지만, 2014년 3월 김한길 민주당 의원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전격 창당하며 훗날 '창당 전문 대표'의 길을 걷기 시작하죠.
같이 신당 창당을 도모했던 참모들 입장에선, ③안 대표의 날벼락 같은 결정은 독단적 철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하루아침에 이뤄진 합당 형식의 창당. 물리적으로는 합쳐졌지만, 화학적 결합까진 역시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공천 문제로 불거진 극심한 계파 갈등 속에, 안철수의 신주류파와 구민주당계가 충돌하며, 결국 재·보궐 선거는 패배하게 되죠.
④안 대표는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에 들어갑니다. 그 당시의 철수는 정치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되기도 했죠.
그러나 정치 휴업의 그 시기는 길지 않았습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3개월 만인 그해 10월 안 대표는 '새정치 2기 선언'을 하며 복귀하죠. 이후 ⑤2016년 총선을 앞두고 전격 탈당을 감행합니다. 이때는 '전략적 철수'라는 분석도 나왔었죠.
결국 새로운 당인 국민의당을 또 한 번 창당, 두 달 만에 38석의 원내 3당으로 만들어냅니다. 안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가 먹혔던 거죠. 하지만 안 대표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죠. ⑥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같은 해 6월 당 대표직에서 또 물러납니다. 언론은 여기까지 셈하며, '여섯 번째 철수'라고 칭했죠.
철수했다가, 잠시 칩거했다가, 복귀했다가 정신 없으시죠?
하지만 앞으로도 한참 남았습니다.
안 대표가 다시 등장한 건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선이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새누리당이 힘을 못 쓰는 '부재' 상태였음에도, 3위에 그치며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이때도 안 대표는 ⑦한 달 동안 잠행하며 정치 휴업기를 가졌죠. 이후 8월에 다시 복귀해 국민의당 대표직에 도전, 정치 전면에 복귀합니다.
이후 안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만든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는데요, 국민의당의 한 축이었던 호남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8년 2월 합당을 밀어붙여, 바른미래당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안 대표는 그해 6ㆍ13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후보로 서울시장직에 도전하지만, 패배하게 되고, ⑧독일로 출국하죠. 안 대표는 당시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더 깊이 경험하고 더 큰 깨달음을 얻겠다"고 밝히며, 더 나은 정치 행보를 도모하기 위한 '일보 후퇴'임을 강조했었죠.
하지만 바른미래당 창업주인 안 대표가 독일로 유유히 정치 공부를 떠난 사이 바른미래당은 극심한 계파 갈등을 겪으며 급기야 바른정당계가 분당하는 사태에 이르렀죠. 하루빨리 복귀해서 상황을 정리해달라는 요구가 많았지만 안 대표는 곧바로 응답하지 않았죠.
1년 4개월 만에 돌아온 안 대표는 2020년 1월 ⑨또다시 탈당을 선언하며, 바른미래당을 떠나서 새집을 짓는 길을 택합니다. 안 대표는 당시 당권을 쥐고 있는 손학규 대표와의 협상에서 당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협상 이틀 만에 판을 깬 걸 두고, 진정성 없는 일방적 결정이란 비판이 나왔죠.
결국 안 대표는 2020년 4·15총선을 두 달 앞두고 '국민의당'을 만들며, 네 번째 창당에 나섭니다.
그러곤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야권 단일화 경선을 치렀죠. 결과는 오세훈 후보의 승리. 안 대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자평하며 후일을 도모합니다. 단일화 경선에서 늘 마무리가 좋지 않았던 안 대표는 이번엔 "철수는 없다"고 공언하며, 물심 양면으로 야권 승리를 도왔죠.
이후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먼저 제안했지만, 2개월 동안 끌어오던 중도와 보수의 통합은 ⑩안 대표가 협상 결렬을 또 선언하면서 결국 물 건너가게 됐죠. 안 대표는 통합 결렬을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정치 입문 때부터 줄곧 외쳐 온 "기득권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 타파" "초당적 실용 중도 정당"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또 한번 소환했었죠.
하지만 이번 윤 후보와의 단일화,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합의하며 결과적으로 당시의 호소마저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굵직한 이벤트만 쭉 헤아려 보니, 정치인생 11년 동안 열한 번째 철수였네요.
안 대표는 2020년 1월 독일에서 돌아온 뒤 귀국 일성으로 이런 다짐을 남깁니다.
"진영 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 "어렵고 외로운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7년 전 저를 불러주셨던 국민의 바람을 가슴에 깊이 담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
2012년의 안철수와 2017년의 안철수, 2020년의 안철수의 달라진 점을 묻는 질문에는 "더욱 간절해졌다"며 기다려준 지지자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도 했죠.
그렇다면, 2년이 흐른 2022년의 안철수는 과거와 뭐가 달라졌을까요, 또 같을까요.
적어도 안 대표가 말한 '초심'은 아직 그의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걸까요.
그간의 '철수 정치사'는 안철수의 정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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