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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 묵사발 만드는... 원작 찢고 나온 '근육남'의 통쾌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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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소설, 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이 원작의 팬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원작의 미묘한 뉘앙스나 기존 매체의 고유한 매력을 완벽하게 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야기의 방대함이나 매체의 차이 때문에 장편을 영화 한 편으로 각색하려면 많은 것을 빼야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시리즈 한 시즌 정도면 가능하지만, 몇 권씩 이어지는 소설이라면 시즌을 거듭해야 한다. 열광적인 팬은 원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되도록 유지하기를 바란다. 이미 영상화한 작품 중에 졸작들이 많아 기대치가 낮기는 해도.
사실 원작의 열혈 팬이 가장 화나는 경우는 지나친 축약이나 초라한 스펙터클이 아니다. 원작의 핵심인 '무엇'을 훼손하는 것이 제일 문제다. 주제의식이나 가치관, 캐릭터의 상징 같은 것들. 리 차일드의 소설 '잭 리처' 시리즈의 경우는 캐릭터였다. 톰 크루즈는 직접 판권을 구입하여 '잭 리처(2012)'와 '잭 리처: 네버 고 백(2016)'을 제작하고, 주연도 맡았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원작인 '원 샷'과 '네버 고 백'을 충실하게 각색했고, 액션도 볼만했다. 소설을 읽은 독자가 아니라면 적당히 만족할 만한 액션 스릴러 영화였다. 톰 크루즈는 이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수많은 액션스릴러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잭 리처'를 소설로 접했고, 팬이 된 독자라면 톰 크루즈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사이즈의 문제다. 소설에는 '그는 거구다. 키 195㎝에 체중이 113㎏인데 온몸이 근육질'이라고 묘사돼 있다. 톰 크루즈는 키가 170㎝가 되지 않는다. 날렵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온몸이 근육질은 아니다. 잭 리처는 '프로 (미식) 축구 선수들처럼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체격에 적당히 느긋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나이'다. 톰 크루즈는 느긋하면서 자신감이 넘치기는 하지만, 절대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지 못한다. 영상화되면서 캐릭터의 신체적 조건이나 인종, 성별이 바뀌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이터널스'에서 가장 힘이 센 길가메시를 마동석이 아니라 작은 체구의 여성이나 아이로 했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잭 리처는 단지 몸만 큰 캐릭터가 아니다. 리 차일드의 원작 속 잭 리처는 악당들이 보는 순간에 위압감을 느끼고, 싸움을 걸면 바로 제압하고, 확실하게 응징하는 거대한 벽같은 남자다. 이번에 공개된 아마존프라임의 시리즈 '리처' 초반에 잭 리처의 캐릭터를 잘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잭 리처가 술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한 남자가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끌고 나온다. 주차된 차에 여자를 몰아붙이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잭 리처가 지켜본다. 남자는 잭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넌 뭐냐고, 소리 지른다. 잭 리처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자 서서히 남자는 눈을 아래로 깔면서, 자기가 과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프로 격투기 선수나 군인, 킬러 정도가 아니라면 잭 리처를 보는 순간 위축되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유치한 남자들은 잭 리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릎을 꿇는다. 그 캐릭터가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리처에게 가능할 리가 없다.
톰 크루즈가 물러나고, 리 차일드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리처'는 원작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다. 우선 배우부터 원작에 걸맞는 거구의 근육질이다. DC의 나이트윙, 로빈, 레이븐 등이 나오는 슈퍼히어로 시리즈이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DC 타이탄스'에서 호크역으로 나온 알란 리치슨이 리처를 연기한다. 알란 리치슨의 키는 188㎝지만, 적절한 촬영기법으로 극중에서는 거의 2m로 보인다. 온몸이 근육질이고, 악당들과 마주했을 때의 카리스마도 충분하다.
리 차일드는 영국의 방송국에서 해고된 후 자신이 좋아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리처' 시즌 1의 원작인 '추적자(1997)'로 '잭 리처' 시리즈를 시작했다. 잭 리처는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미국과 독일, 일본의 미군부대에서 성장했고, 어른이 되자 군에 입대해 헌병이 됐다. 일평생을 군대에서 살아온 것이다. 필요하다면 적에게 선제공격을 하고 완전히 제압하는 전투기술을 배웠고, 헌병대에 있으면서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실무 능력을 익혔다. 셜록 홈즈의 추리력과 스티븐 시걸의 무술 실력을 겸비한 캐릭터다.
작가처럼, 잭 리처도 군대에서 정리해고가 된다. 군대 바깥의 사회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잭 리처는 떠돌이로 살아간다. 차도 없고, 가방도 없고, 카드도, 핸드폰도 없다. 신분증 대용인 여권과 매달 들어오는 연금을 현금으로 지닐 뿐. 좋아하는 블루스 뮤지션의 흔적을 따라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리처에게, 운명처럼 악당과 사건들이 찾아온다. '리처'에서는 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경찰에 체포된다. 지난밤 벌어진 외지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은 것이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는 작은 마을에 들어온 거구의 낯선 남자는 바로 용의자가 되고, 하루를 구치소에서 보낸다.
'리처' 1화는, 잭 리처가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심플하게 보여준다. 구치소에서 리처를 공격한 죄수들은 순식간에 박살이 난다. '당당하게 맞서서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결코 물러서지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항상 영악하게 대응해주길 바라'며 리 차일드가 창조한 잭 리처의 활약을 화끈하게 보여준다. 리처는 고민하지 않는다. 시비를 걸면 대응한다. 상대가 많으면 선제공격도 한다. 때로는 속임수도 쓴다. 고뇌하기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캐릭터다.
사소한 범죄였다면 리처는 오해를 풀고 마을을 떠났겠지만, 하필이면 죽은 사람 중 하나는 오래 보지 못했던 형이었다.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형이 살해당한 것이다. 리처는 형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 요원을 죽일 정도의 담대함과 능력을 가진 적도 만만치 않다. 한 마을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공권력까지 장악한 범죄조직은 리처를 만만히 보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잭 리처는 적의 정체를 알았다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굴복도, 타협도 없다. 악당이 파멸하는 순간까지 힘으로 밀어붙인다. 군대에서 배운, 전투기술과 전략을 무기로.
리 차일드는 잭 리처 캐릭터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나쁜 놈들이 그들보다 더 크고 힘센 정의의 사나이에게 묵사발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다." '리처'는 리 차일드의 목적을 확실하게 구현한다. 그리고 바로 시즌2를 확정지었다. 리 차일드가 '잭 리처' 시리즈를 매년 1권씩 썼으니 이미 나온 것만 20권이 넘는다. 매년 '리처'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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