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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돈 벌기 안 되는 日 '어떤 집에 살까'가 중요

입력
2022.03.05 04:40
수정
2022.03.05 08:36
13면

<58> ‘어떤 집을 살까’보다 ‘어떤 집에 살까'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부동산 가격은 수십년간 완만하게 하락하거나 정체되어 왔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집값이 안정되는 만큼 긍정적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를 중심으로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만큼 ‘어떤 집을 살까?’ 대신 ‘어떤 집에 살까?’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부동산 가격은 수십년간 완만하게 하락하거나 정체되어 왔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집값이 안정되는 만큼 긍정적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를 중심으로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만큼 ‘어떤 집을 살까?’ 대신 ‘어떤 집에 살까?’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는 많이 다른 일본의 부동산 사정

한국에서 집값은 늘 가장 핫한 이슈다. 누구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부동산 때문에 빚더미 위에 앉았다고도 한다. 살 집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결혼을 마다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고, 안정적으로 잘 살면서도 부동산으로 벼락 부자가 된 지인 때문에 박탈감에 시달린다는 사람도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도 집값은 중요한 키워드다. 후보들은 앞다투어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이에 대한 판단이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집 문제와 관한 한 일본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1980년대에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폭등했던 소위 ‘버블 경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다. 다소간의 오르락내리락은 있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완만한 하락세를 그려왔다. 경기부양책과 도쿄 올림픽 특수 덕분에 부동산 경기가 반짝 호황을 맞기도 했지만, 이 역시 도쿄의 도심부 등 극히 일부 지역에 한한 이야기다. 부동산 매매 절차도 꽤 복잡하고 수수료 등의 제비용도 한국의 몇 배나 든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집을 사고팔면서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본에서는 주택이나 아파트 (일본에서는 ‘맨션’이라고 부른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낡은 집이 되어가는 만큼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장인들은 수십 년에 걸쳐 상환하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데, 대출금을 모두 갚을 즈음이면 집 값은 절반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택을 구입할 때에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나이가 든 뒤에 살고 싶은 곳에 집을 사 보금자리를 꾸린다. 딱히 정착하고 싶은 곳이 없을 때에는 임대도 방법이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어떤 집을 살까(buy)’라는 부동산 문제보다 ‘어떤 집에 살까 (live)’라는 거주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화두다.

대도시를 떠나는 사람들, 코로나19사태의 영향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집에 살까’라는 문제 역시 경제적인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에서도 대도시의 고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넉넉하기 마련이고, 집값이 다소 저렴한 교외에 사는 주민은 중산층일 확률이 높다. 다만, 어디에 살든 어차피 집값은 떨어진다는 전제는 동일하다. 고가의 고급 주택에 거주한다는 것은 비싼 주거 비용을 감당할 만한 여유가 있다는 뜻일 뿐, 부동산 덕분에 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큰 부동산 회사가 매년 조사, 발표하는 ‘간토 지역(도쿄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열도 동쪽 지역)에서 살고 싶은 동네 랭킹’ 1위는 몇 년째 요코하마(横浜)다. 도쿄의 중심부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있는 기치조지(吉祥寺)나 사이타마 현의 오미야(大宮) 등도 늘 베스트 5에 포함된다. 이런 지역들에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 등 부동산 값을 견인할 만한 조건은 없다. 병원, 상점, 쇼핑몰 등 편의 시설이 충실하다거나, 큰 공원이 주변에 있다거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등 거주 환경이 좋아서 선택을 받은 지역들이다.

벌써 몇 년째 도쿄와 나가노 현을 오가면서 ‘두 집살이’를 해 온 친구가 있다. 프리랜서로도 충분히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그는 도쿄에서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셰어하우스에 거점을 마련해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칸센 (일본의 고속철도)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나가노 현의 산골에 허름한 일본식 가옥을 한 채 빌렸다. 일이 있을 때에는 도쿄의 셰어하우스에 머무르지만, 일주일 중 절반은 시골집에서 고즈넉하게 생활하고 있다. 시골집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소박하지만 꽤 멋드러진 스타일로 꾸며 놓았다. 마당이 널찍하고 방이 많은 그의 집에 다같이 몰려가서 하룻밤 실컷 놀다 온 적도 있다. 사교적인 성격의 친구는 누구든지 금방 친해지는 ‘인싸’여서, 도쿄의 셰어하우스에서는 동네 식사 모임이나 주말 이벤트에 참여하고, 시골집에서는 취향이 맞는 동네 사람들과 힘을 모아 벼룩시장이나 로컬 축제를 함께 조직한다. 그가 두 집살이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기적으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는 직업의 이점을 살려, 도시와 시골 생활의 장점을 모두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누리는 ‘이중의 삶’이 꽤 즐길 만해서, 아예 그 시골 집을 구입할 계획도 있단다.

한국에서는 셰어하우스라고 하면 자유분방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젊은이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이라는 인상이지만, 일본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도쿄의 셰어하우스를 거점으로 쓰는 그 친구 역시 40대 독신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셰어하우스에 젊은이가 많이 입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이의 문화가 셰어하우스의 분위기를 독점하는 것은 아니어서 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친구와 같은 자유분방한 두 집살이는 일본에서도 ‘튀는’ 스타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전체적으로는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안정적인 주거 형태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개인의 진로와 취향을 고려해 자신의 주거 스타일을 스스로 ‘디자인’한다는 사고방식도 낯설지 않다. 의외로 다양한 주거 형태와 거주 스타일이 존재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사회적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도시를 떠나 교외나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 총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도쿄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전출자 수가 다른 지역에서 도쿄로 유입된 전입자 수보다 많았다. 내국인 집계로는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실직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귀향한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재택 근무나 원격 근무가 가능한 업종에 종사해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타격이 적었는데도 도시를 떠나 교외로 이주한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생활비가 비싸고 감염 위험이 높은 도회지를 떠나 보다 자연친화적인 교외에서 살고 싶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한 지역에 붙박이로 눌러앉는 주거 형태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거 스타일의 다양화

일본처럼 수십 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완만하게 하락하거나 정체되는 현상을 ‘장기적인 침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지향하는 거시적 모델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집값이 안정되는 만큼 긍정적이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혹은 잃을지도 모르는) 기회는 없겠지만, 널뛰는 부동산 시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내 집 마련을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할 길이 열린다. 또,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삶의 방식을 모색할 수도 있으니,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집값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아우성이요, 내리면 내리는 대로 걱정인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언젠가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도 한참 되었다. 한편, 젊은층에서는 다양한 주거 스타일에 대한 실험도 활발하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든가, 일찌감치 귀농이나 귀촌을 실천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앞으로 어떤 전개를 맞게 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다만, ‘어떤 집을 살까?’ 대신 ‘어떤 집에 살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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