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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어르신도, 사할린동포도... 고령 산불에 긴급 대피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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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넘어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산불이 한창 타오르던 지난달 28일 오후 8시쯤 경북 고령군 쌍림면 매촌리 대창요양원에 비상연락망이 가동됐다. 인근에 거주하는 요양보호사부터 1시간 30분 거리인 대구 북구 연경동에 사는 요양보호사까지 한걸음에 요양원으로 모였다. 한 요양보호사는 남편의 1톤 트럭까지 직접 몰고 왔다. 트럭에는 어르신들의 휠체어 등 기구가 실렸다. 이들이 밤새 입소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이송시키고 큰불도 잡히면서, 요양병원은 다시 집 떠난 어르신 맞이에 분주했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발생해 경북 고령군 쌍림면까지 675㏊를 태운 산불은 중증 치매 환자 등이 모여 있는 대창요양원과 사할린동포가 거주하는 대창양로원에도 비상이 걸렸지만, 직원들의 침착한 대처로 평온을 되찾고 있다.
산불은 발생 27시간 34분 만인 지난 1일 오후 6시 큰불이 진화됐으나, 대창요양원 환자 22명과 대창양로원 어르신 47명은 2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대피장소인 대가야호스텔과 대가야생활촌에서 머물고 있다.
산불 소식에 대창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방마다 찾아가 “불났어요.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라고 연거푸 외쳤다. 이곳에 근무 중인 요양보호사는 모두 8명. 주간(오전 9시~오후 6시)조 4명과 야간(오후 6시~다음 날 오전 6시)조 2명이 3교대로 근무하는 형태다.
주간조는 퇴근도 미룬 채 상황을 주시했고, 비번인 요양보호사마저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 결과 이들은 대창요양원에서 직선거리로 4㎞가량 떨어진 대가야호스텔 2층으로 어르신들을 무사히 이송했다. 소방대원들도 이송에 투입됐다. 이들은 밤을 꼬박 세워가며 어르신들 건강을 살피고 상황을 주시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은 모두 22명. 1명을 제외하곤 모두 휠체어나 침대 신세다. 최고령 101세 어르신 등 대부분은 3~5급 중증 치매 등을 앓고 있어 의사소통은 물론 배변 활동도 할 수 없다.
체중이 85㎏에 육박하는 한 남자 어르신을 이송하기는 특히 쉽지 않았다. 이송 자체도 문제였지만 극심한 저항도 난관이었다. “나는 안 간다” “내 집 놔두고 어디가노” “나는 여기서 불타 죽을란다”라며 집기와 문을 발로 차는 등 고집이 상상보다 컸다. 요양보호사들은 “소방대원들이 없었다면 이송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불길이 요양원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산골짜기에서 치솟았고 바람도 많이 불어 공포가 엄습했던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은 “산불이 당장이라도 코앞으로 번져 건물로 옮겨 붙을 것만 같았다”며 “1초라도 빨리 어르신들을 피신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현재까지도 어르신들의 건강에 이상 징후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사할린 동포들이 머물고 있는 대창양로원도 지난달 28일 오후 9시 20분쯤 소방버스로 대가야생활촌으로 이송됐다.
이날 어르신과 환자 보호자들의 연락도 빗발쳤다. 요양원 측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어르신들이 무사히 피신했고 건강 상태도 이상 없다'고 안내했지만, 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보호자들의 전화가 쏟아진 것이다. 한 요양보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면회가 금지된 탓에 자녀들도 노심초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불이 잡히면서 요양보호사들도 한시름 놓고 있다. 한 어르신이 “2년 만에 이토록 멀리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자, 요양보호사들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코로나19 사태 후 가벼운 산책을 제외하곤 외출이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어르신 대피소에는 대한적십자사의 ‘밥차’까지 달려와 식사를 챙겼다.
대창요양원에서 12년간 근무 중인 전옥희(63) 요양보호사는 "많은 기관과 주민들이 지원해줘 별탈 없이 지내고 있다"며 "요양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르신들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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