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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전 대통령, 트로트 신동 정동원도 엘부림 양복 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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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소공동, 청담동, 여의도동이 ‘맞춤정장 3대 명소’로 꼽힌다. 소공동은 국내 맞춤정장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청담동은 고급정장과 결혼 예복으로 유명하다. 여의도동은 직장인들이 ‘전투복’을 맞추기 위해 찾는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이 찾는 곳은 따로 있다. 맞춤정장 업계에선 변방처럼 느껴질 수 있는,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엘부림 양복점’이 바로 그곳이다. 엘부림 양복점은 33㎡ 남짓한 크기지만, 그 안에선 세계 정상급 정장이 만들어진다. 그 양복점엔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토록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까. 지난달 24일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4번 출구에서 400m가량 떨어진 대로변의 가게를 찾았다.
1975년 문을 연 엘부림 양복점은 47년간 답십리동을 떠난 적이 없다. 옷을 만드는 뛰어난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가게의 입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박수양(72)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답십리는 박 대표에겐 '탈출구'와도 같았다. 17세가 되던 1968년 농사일이 싫어 차비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곳이 답십리 외삼촌 댁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외숙부의 소개로 집 앞 양복점에 취직한 것이 박 대표가 맞춤 정장 길로 접어든 계기였다.
박 대표는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월급도 못 받고 밥만 먹여줘도 고마웠던 시절"이라며 "아무도 양복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 어깨너머로 배우고, 모두가 퇴근하면 밤새 옷감을 자르고, 붙이고, 꿰매며 기술을 연마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양복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군대를 다녀온 이후였다. 다른 양복점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며 꿈을 키웠다. 그러다 26세가 되던 해 답십리 사거리에 '부림 양복점'이라는 본인의 가게를 차렸다.
시작은 순탄했다. 1970~1980년대는 맞춤 정장의 전성시대였다. 밤낮없이 일을 해도 일감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기성복 시대'가 열리면서 맞춤 정장의 쇠퇴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당시 100여 개에 달했던 답십리의 양복점들은 줄줄이 폐업했고, 그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다"며 "지난해 맞은편에 있던 가게마저 문을 닫아 현재 답십리에 남아있는 맞춤 정장 매장은 엘부림 양복점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성복이 밀려드는 시대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더러는 가격 경쟁력을 위해 꼼수를 부릴 때였다. 그는 "흘린 땀방울과 정성을 다한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표는 맞춤 정장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장점은 최대한 살리는 방법에 골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엘부림 양복점의 자랑인 ‘올인원 피팅 시스템’이다.
수 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로 탄생한 올인원 피팅 시스템은 고객이 한 번만 방문해도 몸에 딱 맞는 정장을 맞출 수 있는 ‘파격적인’ 피팅 방식을 갖췄다. 통상 맞춤 정장 제작 과정에서는 신체 치수 측정(채촌), 재단, 가봉 등의 단계마다 고객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엘부림 양복점은 자체 개발한 ‘S라인 패턴'을 활용, 한 번의 채촌만으로 완벽한 맞춤 정장을 만들어낸다. S라인 패턴은 박 대표가 지금까지 맞이한 수천 고객들의 체형을 분석, 100여 개의 유형으로 체계화 한 것이다.
박 대표는 “세분된 패턴에 고객의 체형을 맞춰보고 미세한 부분만 손질하면, 가봉 없이도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제작할 수 있다”며 “이 시스템 덕분에 맞춤 정장의 단점 중 하나인 ‘긴 제작 기간’을 대폭 단축했고,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고객이라도 한 번만 방문하면 집에서 택배로 옷을 받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실력은 화려한 수상 경력에서도 드러난다. 1996년 서울기능경기대회 은메달을 시작으로 2002년 노동부 장관 표창, 2010년 한국맞춤양복 기술경진대회 대상, 2014년 소상공인 전국 기능경기대회 최우수상, 일본 아시아 양복기능경기대회 금메달 등 수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입상했다. 이런 실력을 인정받아 2016년에는 한국맞춤양복협회로부터 ‘명장’으로 선정됐다. 또 양복점을 배경으로 방영됐던 KBS 주말드라마 ‘월계수양복점신사들’의 기술자문을 맡으면서, 특별 출연도 했다. 지금도 드라마나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의 의상을 제작하고 자문도 제공한다.
엘부림 양복점 역사가 반백 년에 이르다 보니 다녀간 손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013년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으로 방한했던 피델 발데스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그의 손님이다. 당시 라모스 대통령은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의 소개로 엘부림 양복점을 방문, 정장을 맞췄다. 2019년엔 한국에 순회공연을 왔던 독일 뮌헨 교향악단 단장도 찾아와 연미복을 맞춰갔다.
박 대표는 “그 단장은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연미복이 멋지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다음 내한 공연 땐 120명의 단원복을 모두 맞추겠다고 약속했다”며 웃었다.
최근 엘부림 양복점을 더욱 알린 사람은 종합편성 채널 ‘미스터트롯’ 시즌1에서 5위를 차지했던 정동원군이다. 정군이 경연 준준결승, 최종 결승에서 입었던 무대 의상을 박 대표가 만들었다. 그들의 인연은 열정적인 ‘팬심’에서 비롯됐다. 정군에게 멋진 정장을 선물하려 몇몇 팬들이 정군을 엘부림 양복점에 직접 데려왔던 것이다. 정 군이 결승전에서 입었던 베이지색 정장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박 대표는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10여 벌의 정장을 맞춰줬다”며 “손님 중에 '정군이 입은 옷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많은 위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들 승필(38)씨 덕분이기도 하다. 양복점 실장직을 맡아 다양한 일을 처리하고 있다.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박 실장은 본래 영어 교사를 꿈꿨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 패션쇼에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기능올림픽의 맞춤 정장 부문에서 12년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기성복에 밀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국내 분위기가 그를 끌어당겼다. 박 실장은 세계를 주름잡는 아버지의 기술에 젊은 감각을 더한다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명품 못지않게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박 대표는 "아들이 가업을 잇기로 마음먹은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이 자체 브랜드를 만든 것"이라며 "기존 상호였던 '부림' 앞에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엘(여호와)'을 붙이면서 세련된 느낌을 강조했고, 최근에는 상표등록까지 마치면서 맞춤정장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이 경영, 마케팅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다. 가업을 잇기 위해 양복 맞춤 기술도 열심히 익혔다. 2016년 평택국제대 평생교육원에서 명장이 지도하는 맞춤 양복 과정을 수료했고, 양복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금도 부족한 기술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고 있다.
70대 중반을 향해가는 박 대표는 양복점 실무를 아들에게 하나둘 넘겨주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80세가 되는 해에 뜻깊은 일을 하는 80명의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맞춤정장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 양복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칭찬받는 엘부 림양복점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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