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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얽혀 든 EU택소노미, 우리 선택은?

입력
2022.03.02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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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EU택소노미 후폭풍이 더 커질 조짐입니다. EU택소노미 문제는 그저 '친환경이냐 아니냐' 수준의 논쟁이 아닙니다. 에너지 문제는 친환경을 넘어 산업 전략적 측면은 물론, 더 크게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알려졌다시피 지난 1월 유럽연합(EU)은 EU택소노미를 공개하면서 원전과 천연가스(LNG)를 '녹색 에너지'로 분류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두 에너지원에다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놨습니다. 원자력발전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모두 '거 봐라 유럽에서는~'이라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 좋게 해놨습니다. 몹시 정치적 결정이란 얘깁니다.

이 정치적 불확실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EU택소노미, 그리고 그 영향권 안에 있는 K택소노미는 어떻게 바뀔까요.

1월 1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총리관저 앞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의 가면을 쓴 환경단체 소속 활동가가 '지속 가능'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1월 1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총리관저 앞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의 가면을 쓴 환경단체 소속 활동가가 '지속 가능'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탈원전 외쳤던 마크롱의 변심... "택소노미에 원전 넣어 달라"

택소노미란 말 자체는 '분류체계'라는 뜻입니다. 친환경 문제가 커지자 유럽연합은 이 경제활동이 친환경적인지 아닌지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겠다면서 여기다 'EU택소노미'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친환경적인 경제활동을 체계적으로 분류해두면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단순한 논리가 복잡한 현실에 딱 들어맞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제각기 다른 산업구조, 안보상의 이유 등으로 각 나라마다 다른 주장을 내세우기 일쑤입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당시엔 75% 수준인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50%대로 낮추겠다 했습니다. 하지만 석탄과 천연가스, 전력 가격이 줄줄이 치솟자 탈원전 정책을 접었습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지원하겠다 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이미 지었거나, 현재 짓고 있는 원전을 이어나가는 데만도 1,2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61조 원이 필요하답니다. 거기다 새 원전까지 짓는다면 약 460억 유로(62조 원)가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전기 생산과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이미 파산 지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EU택소노미마저 친환경에서 원전을 빼버리면 이 엄청난 돈을 끌어 댈 수가 없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EU택소노미에 원전을 집어넣으려는 이유입니다.

독일마저 '메르켈의 탈원전' 벗어나나

독일은 대표적 탈원전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과정이 아주 순탄하거나 매끄러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령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전 세계에 탈원전 바람이 불었지만, 독일이 실제 탈원전을 결정한 건 2000년입니다. 10년 이상의 장기적 논쟁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추진된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등의 다양한 조치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전기가 부족하니 화석연료를 더 사용할 수밖에 없고, 전기요금까지 대폭 올랐습니다. 돈은 더 많이 드는데 탄소중립에는 역효과만 나니 결국 2010년 탈원전을 중단합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입니다.

이 흐름을 바꾼 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입니다. 메르켈 총리는 즉각 탈원전 정책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탈원전을 위해 독일은 LNG, 특히 러시아가 수출하는 LNG에 크게 의존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탈원전이라는 대의명분만 작용한 게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이라는 정책 기조 외에도, 어쨌거나 통일을 도와준 러시아와 LNG를 매개로 결합하면서 러시아를 좀 더 서방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미국 일본과 함께 독일이 가스터빈 시장 3대 강자라는 산업적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한데 얽혀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달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 앞에서 국제 환경 시민운동 단체 '아바즈' 활동가들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왼쪽부터) EU 집행위원장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EU의 녹색성장 전략인 '그린딜'을 매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지난달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 앞에서 국제 환경 시민운동 단체 '아바즈' 활동가들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왼쪽부터) EU 집행위원장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EU의 녹색성장 전략인 '그린딜'을 매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EU택소노미도 요동치나

지난 1월 EU택소노미가 원전과 LNG를 친환경으로 분류한 데는 이런 복잡한 사정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원전과 LNG를 전면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강합니다.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쓰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갖춰야 한답니다. ATF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폐기물 처리장은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만, 그나마도 '건설 중'입니다.

LNG도 마찬가집니다. LNG에다 탄소배출량 기준 조건 270g/kWh를 붙여 뒀습니다. 현재 탄소배출량이 약 413g/kWh인데,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로는 270g/kWh에 맞추기 어렵다고 봅니다. 게다가 LNG발전소 건설은 문 닫는 석탄발전소를 재생에너지 시설로 쓰지 못할 경우에만 허용합니다.

EU택소노미에 넣어 주긴 했지만 이런저런 조건 다 따져보면 "원전과 LNG는 더 이상 하지 마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사태가 터졌고, 독일-러시아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독일이 러시아산 LNG를 버린다면,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친원전 노선으로 이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다 해도 EU택소노미보다 완화된 조건을 내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다 해도 EU택소노미보다 완화된 조건을 내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원전은 향후 60년 주력 기저 전원"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한 발언 또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환경 전문가들은 여전히 고개를 젓습니다. 독일이 탈원전을 포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또한 탈원전 정책이 바뀐다 하면 신규 원전 건설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EU택소노미에, 그리고 K택소노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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