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

입력
2022.03.03 18:00
수정
2022.03.03 18:07
26면
구독

정권교체 환호하나 安 지지자에겐 배신
명분 있으려면 국민의힘 변화 이끌어야
미래·통합 위해 혐오정치부터 허물기를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정권교체를 ‘대의’라고 믿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는 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단일화 선언이 지당한 결단이다. 완주 의사를 밝혔던 안 후보에게 “역사의 죄인이 될 거냐”고 쏟아부었던 비난과 협박은 통 큰 결심에 대한 박수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권교체나 재창출에만 목숨 걸지 않는 유권자도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쪽도 저쪽도 못 찍겠다는, 정권의 향배보다 정치 변화가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안 후보의 철수는 분통 터지는 배신이다. 상대적으로 나은 인물을 찍으려 했고 누가 집권하든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이들은 황망함과 분노를 안고 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안 후보의 행보는 종잡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선 후 합당하겠다면서 “다당제가 소신”이라고 했고, 며칠 전에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1년만 지나면 뽑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며 '좋은' 정권교체를 여러 번 강조했었다. 몇 시간 전까지 “협상은 끝났다”고 되풀이했고 TV토론회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미 그에게 투표했다가 무효표가 된 재외국민의 억울함은 보상할 길도 없다. 그의 변심을 이해할 단초는 “행정 업무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드는 실행력을 증명하겠다”는 말에 있을 것이다. 집권하면 안 후보는 내각에 자리를 잡고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 결과에 미칠 효과 외에 단일화의 명분이 없지 않다. 미래와 통합, 중도와 실용으로 국민의힘의 변화를 내건 점이다. 공동선언문에 담은 대로 적폐 청산 등 퇴행적 국정이 아니라, 진영 논리와 특정 집단에 경도된 정책이 아니라, 미래와 통합으로 나아간다면 진심으로 환영할 일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 권한 분산과 통합정부 등 정치개혁을 제안한 것을 “사기”로 일축했던 윤 후보가 이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 정치개혁도 실행돼야 마땅하다.

문제는 두 후보가 내세운 ‘국민통합정부의 시작’이 될지, 민주당이 비판하는 ‘자리 나눠먹기식 야합’이 될지 예단이 어렵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담판을 통해 공동인사권을 보장받은 것으로 보이나, 합당 후 자기 입지를 다지는 것부터 시험에 들 것이다. 단일화 협상 중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총리 등을 노리는 중진이 많아 안 후보가 생각하는 공동정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시피 당내 권력다툼과 논공행상은 치열한 법이다. 진짜 어려운 과제는 “국민의힘을 보다 실용적인 정당, 중도적인 정당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국민의힘은 태극기부대와 선을 긋고 쇄신하는 듯했으나 윤석열-이준석 체제에서 다른 버전의 혐오 정치로 나아갔다. 선거에서 승리해도 단일화 효과냐, 세대·성별 갈라치기 전술의 효과냐며 다툴 소지가 있다. 안 후보는 혐오와 편가르기에 기반해 세력을 키워온 국민의힘 정체성을 허물 준비가 돼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에겐 제3지대를 무너뜨리고 유권자 선택권을 지운 책임이 남을 것이다.

선거 결과는 예측이 어렵고 적대 정치에 불안은 크다. 공허한 표어 같지만 나는 결국 유권자가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믿는다. 지지 후보가 있다면 그에게, 위험해서 떨어뜨려야 한다면 경쟁자에게, 당선 가능성과 별개로 옳다고 믿는 정치를 위하여, 국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 표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찍을 후보가 없다”며 주권을 포기하기엔 정치가 너무 오만하고 후진적이다. 당신의 한 표는 당선자를 결정지을 것이며, 정치인에게 경고할 것이고,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