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시대’ 정치에 휘둘리는 한일 외교

입력
2022.03.01 04:44

정의용(왼쪽) 외교부 장관이 2월 12일 오후(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과 회동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한미일 외교장관이 대면 회담을 했다. 새해 벽두부터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자 오랜만에 한미일 장관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날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정의용 외교장관과 양자회담도 가졌다. 미국은 대북 공조 등을 위해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 때문에 양자 회담에 이목이 쏠렸지만 두 장관은 이전과 다름없이 자국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소식통에 따르면 애초 양국은 하와이 회담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로 발표할 계획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러시아나 중국에 세계의 눈이 쏠린 틈을 타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질 우려가 커지면서,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외교당국은 국장급 회담 등을 통해 하와이 양자 회담에서 발표할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 중이었다.

그런데 일본 국내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애초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천을 올해는 보류할 계획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강제 노역한 장소로 한국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자민당 우파가 ‘역사전쟁’이란 표현까지 쓰며 총리 측을 몰아붙이자,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는 막판에 추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하와이 양자 회담에서 두 장관은 사도 광산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피력하며 대립했다.

일본 내부 정치로 양국의 노력이 좌절된 셈이지만, 한국에서도 반일 감정은 궁지에 몰린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카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후보들의 발언에 반일·반중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단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에는 적어도 이웃 국가에 대한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유럽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외교안보 정책이야말로 국내 정치의 정파적 이해득실을 떠나, '신냉전 격동기'에 제대로 대응할 '국익'만을 따지길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