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정호연 '오겜', 美 드라마서 지워진 '아시아'를 살리다

입력
2022.02.28 14:31
수정
2022.03.01 10:4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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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배우조합상서 남녀연기상 등 3관왕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
외신도 주목
"오랫동안 아시아 흔적 지워진 할리우드서 흥미진진한 행진"
3년 연속 한국 드라마·영화 수상
더 높아진 K콘텐츠 위상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각각 연기상을 받은 뒤 손을 맞잡고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두 배우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기운과 새벽 역을 연기했다. 산타모니카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각각 연기상을 받은 뒤 손을 맞잡고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두 배우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기운과 새벽 역을 연기했다. 산타모니카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수상자로 호명되자 배우 이정재는 깜짝 놀라 크게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고, 정호연은 눈물을 쏟았다. AP통신 등 외신은 "(세계에) '한국 현상'을 끌어낸 '오징어 게임'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미국 안방극장에서 그간 변두리에 자리했던 아시아 국적 배우들이 인종차별의 '유리천장'을 깨고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는 평가다.

배우 이정재(왼쪽)와 정호연이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시상식에서 각각 연기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샌타모니카=AP 뉴시스

배우 이정재(왼쪽)와 정호연이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시상식에서 각각 연기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샌타모니카=AP 뉴시스


"한국 현상 '오징어 게임'이 새 역사"

'오징어 게임' 출연진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바커행어 이벤트홀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TV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자연기상(이정재), 여자연기상(정호연), 스턴트 앙상블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미국 배우들이 선정하는 SAG에서 비영어권 드라마가 후보에 오른 것도, 수상자를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국적의 배우가 이 시상식 드라마 부문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도 '오징어 게임' 배우들이 최초다.

이정재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이정재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라이언 콕스('석세션')와 빌리 크루덥('더 모닝 쇼') 등을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너무 큰일이 제게 벌어졌다"며 감격했다. 제니퍼 애니스톤('더 모닝 쇼'), 엘리자베스 모스('더 핸드메이즈 테일')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친 정호연은 시상식 무대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연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는 "여기 계신 많은 배우를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징어 게임' 배우들의 수상에 대해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며 "상상력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인들의 열정과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준 국민들의 의식이 어우러져 오늘의 결과가 있었다"고 의미를 뒀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에서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뒤 사채와 도박을 하다 이혼당한 기훈 역을, 정호연은 보육원에 홀로 남겨진 남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소매치기 등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온 새터민 새벽을 각각 연기해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TV 드라마 시리즈 부문 대상 격인 앙상블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석세션'에게 돌아갔다.

정호연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새터민 새벽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정호연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새터민 새벽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기생충' '미나리' 이어 3년 연속 수상...판 흔든 K콘텐츠

SAG는 미국 배우 회원들이 동료 배우의 연기력을 인정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할리우드에서 영향력이 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한국 배우의 SAG 수상은 3년 연속 이뤄졌다. 2020년엔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등 출연 배우들이 비영어권 영화로 처음 앙상블상을 받았고, 2021년엔 '미나리'의 윤여정이 한국 배우 가운데 처음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징어 게임' 출연 배우들의 수상으로 K콘텐츠의 위상은 더 높아졌고, 업계에서 인종 다양성을 넓히는 밑거름이 됐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허핑턴포스트는 "아시아가 오랫동안 지워진 할리우드에서 '미나리' 윤여정과 '오징어 게임' 이정재 정호연의 연이은 개인상 수상은 흥미진진한 행진"이라고 평가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오징어 게임'을 중심으로 한 한국 배우들의 세계적 조명은 할리우드에서 유색 인종의 유리 천장을 깨는 데 큰 동력이 될 뿐 아니라 현지 진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부문 남우조연상으로 한국 배우 오영수(78)가 호명되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맡았다. 베벌리힐스= AFP 연합뉴스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부문 남우조연상으로 한국 배우 오영수(78)가 호명되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맡았다. 베벌리힐스= AFP 연합뉴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생사를 건 서바이벌 게임을 치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해 공개 17일 만에 1억1,100만 유료 가입 가구가 시청해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가구가 본 드라마로 기록됐다.

'오징어 게임'이 SAG를 비롯해 1월 열린 골든글로브(오영수·남우조연상) 등 미국 주요 시상식에서 잇따라 주목받은 데는 폭발적 흥행 성과와 함께 윤리가 무너진 자본주의 현실을 비판한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여세를 몰아 '오징어 게임'은 9월 열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주요 부문 후보 입성에도 도전한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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