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낙마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고 강제로 잡아당겨 목이 꺾인 장면이 논란이 되었다. 말은 경주마에서 퇴출된 다섯 살 된 암컷이었다. 고꾸라진 말은 고개부터 처박힌 채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말의 떨림을 카메라가 끝까지 찍고 나서야 연출자는 컷을 외쳤다. 목이 꺾였던 그 말은 일주일 뒤 사망했다. 촬영 영상이 공개된 뒤 '방송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는 심각함을 몰랐던 것 같다. 그동안 사극에서 말이 고꾸라지는 장면은 종종 볼 수 있었고, 촬영 현장에서 이런 상황이 분명 처음은 아니었으리라. 업계에서는 이런 연출방식은 오랜 관행이라 했다.
광고에서도 동물은 자주 등장한다. 광고 속 동물은 감성을 자극하거나 극적인 성능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용된다. 동물이 등장하면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는데 심지어 이용료도 싸다.
얼마 전, 동물책 전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에서 올린 글에서 25년 전 유명 CF감독의 인터뷰 기사의 한 부분을 읽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물고기의 몸을 뚫어 전기충격을 줘서 공중에서 펄떡이는 장면을 완성도 있게 연출했다는 후일담을 자랑하는 기사에 화가 나서 올린 글이었다. 동물학대로 비난받기는커녕 우스개 일화로 말하던 시절이었다.
미디어에서 동물은 깨진 유리병처럼 하나의 소품인 경우가 많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대변하고, 사람들의 몰입을 위해 사용되는 소도구인 셈이다. 촬영 후 후속처리는 알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개, 고양이, 말 등은 소속된 곳이 있어 촬영 후의 행방을 찾을 수라도 있지만, 금붕어, 토끼, 햄스터, 파충류 등은 더욱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분노한 등장인물이 어항을 깨고,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 위에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보았다. 굳이 어항을 깨야만 감정이 표현될까. 유리 조각이 흩어진 바닥에서 파닥거리던 그 물고기는 살았을까. 25년이 지난 지금도 단 몇 초의 장면 때문에 많은 동물이 죽거나 다친다.
실제로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미디어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0% 정도가 '동물들이 촬영 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그들이 털어놓은 경험담은 끔찍했다. 원하는 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전기 충격을 쓰거나 매질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여윈 강아지를 표현하기 위해 며칠씩 굶기고, 닭을 사서 목을 비틀거나 패대기치는 장면을 찍고, 새가 멀리 날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경험담까지. 그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동물의 사용은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생생한 장면이라고 여기기보다는 "과연 저런 게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을 먼저 가진다. 정말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해야만 하는지 반드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촬영장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는 미국인도주의연합 (American Humane Association)의 감시를 받는다. 동물들이 나오는 영상물에서 우리는 동물들이 인도적으로 대우받고 있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미디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밝혔다.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소품으로 여겨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다. 신체적인 위해만이 아닌 정신적 고통도 같이 고려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미디어는 대중들의 눈높이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높아진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을 알 만도 할 텐데 말이다. 멋진 연예인과 귀여운 아기동물이 나와도 동물을 소품이나 배경처럼 써서 저조한 시청률로 외면당한 프로그램은 그동안도 상당히 많았다. 동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관심을 끌지 않는다.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 그건 20년 전쯤에나 적용될 만한 공식이다. 진부하다. 아니 촌스럽고 후지다.
대중들은 동물의 권리와 생명의 소중함을 먼저 고려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선호한다. 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은 이제 소수의 부류가 아니다. 취미생활로 혹은 과시용으로 키우는 사람보다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도, 동물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비단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만이 가진 동정심이 아니다. 동물 존중은 타자 존중과 다르지 않다는 게 보편적인 정서다.
미디어 관계자들도 대중들의 높아진 동물 감수성에 대해 공부하고 이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자. 이젠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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