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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외모 지적하는 남편, 가스라이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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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결혼한 지 4개월 된 신혼부부입니다. 남편이 제 외모, 성격, 생활 습관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서 너무 상처를 받아요.
저희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조금 넘게 사귀고 결혼했어요. 남편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둔한 성격, 야무지지 못한 생활력, 근육 없는 몸매, 다리 털, 팔자 주름, 여성스럽지 못한 생활 습관을 지적하며 '매력을 못 느끼겠다'고 했어요. 성관계 후 대놓고 '성적 매력이 안 느껴진다.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는 말을 해서 수치심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제가 문제를 삼자, 남편은 '남자는 시각적인 부분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여자가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진 않지만, 남편이 진짜 원하는 건 만족스러운 성생활인 것 같아요. 저희는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혼후 관계'를 원했고, 남편도 제 뜻을 따라줬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제가 교회에 다니다 보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있고, 이성과 만나면서 성관계를 하고 싶다거나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
그때는 별말 없어서 몰랐는데 남편은 이 문제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결혼하고 나서는 외모, 몸매를 지적하며 성관계를 내키지 않아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이 나를 거부하면 어쩌지?' '내가 더 늙고 매력이 없어지면 그땐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게 가스라이팅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추진력이 강하고, 맡은 일을 잘 해내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가족 간에 사이도 좋습니다. 본인보다 여러 조건에서 뛰어난 형을 정신적 지주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묘한 경쟁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다만 표현이 서툴러요. 스스로 말을 되게 못한다고 생각해서 아예 안 해버리는데 그러다 나중에 터지는 말들이 거의 흉기에 가깝습니다.
저희 아빠는 딸들에게 과한 스킨십이나 애정 표현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사춘기가 됐는데도 뽀뽀해 달라, 배를 주물러 달라, 옆에 와서 앉아라, 누워라 요구하며 늘 스킨십을 원하셨어요. 싫은 티를 내도 소용없었습니다. 방에도 불쑥불쑥 들어 와서 제가 옷을 갈아 입다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지나가는 여자의 다리를 한참 본다거나 노출이 심한 연예인 사진이 휴대폰 사진첩에 가득 차 있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권이 전적으로 아빠에게 있어 학원 등록, 대학 진학처럼 큰돈이 드는 일들은 늘 아빠와 상의해야 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 했어요. 적금도 제가 직접 넣으면 될 것을, 아빠는 반드시 본인을 통하도록 했습니다.
엄마와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사이가 비교적 좋았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언니가 마음에 안 드는 남자와 결혼하자, 불똥이 저한테 튀었어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저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냈어요. 아빠와 문제가 생겨도 애꿎은 저에게 분노를 표출했고요. 귀가 시간이 예정보다 30분만 늦어져도 전화해서 "너는 늘 이딴 식이지"라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며 '나'를 지켜내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늘 힘들었는데, 결혼을 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자괴감이 듭니다. 화가 나 당장 이혼할까 싶다가도, 제가 진짜 원하는 건 자신을 건강하게 지키면서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은커녕 비난을 받으면서 결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요.
이주영(가명·30·회사원)
주영씨,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의 직설적 표현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배우자니까, 가까운 사이니까, 외모나 몸매 같은 예민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되레 배우자이기 때문에 그런 말에 더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영씨가 앞으로 남편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봅시다.
부부 관계를 다루기 전에 먼저 주영씨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부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은 결혼 후 독립하기까지 함께 사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당신에게 했던 행동은 성 학대나 성적 괴롭힘에 해당해요. 만에 하나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딸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싫다고 했다면 당장 멈췄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행동은 자녀와 부모 사이의 천륜이라는 귀한 관계를 깨는 행동이에요. 성추행입니다.
대상관계 이론(인생 초기의 대상관계 경험이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향후 모든 인간관계, 인간행동, 성격을 형성하는 기본 틀이 된다는 이론)으로 봤을 때도, 아버지가 당신을 '성적 대상'으로 본 경험이 이후 당신에게 많은 부정적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아버지가 내 몸을 만졌을 때 기분 나빴고 피하고 싶었던 경험과 마음이 반복되다 보면, 성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거부감이나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영씨가 남편에게 혼후 성관계를 요구했던 데는 종교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런 경험 역시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여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성 부모는 자녀가 만 5세가 넘으면 성적으로 오인될 수 있는 스킨십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나이부터는 함께 맨몸으로 목욕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하더라도 속옷을 입는 등 옷차림을 신경 쓰셔야 해요. 그게 아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행동입니다.
어머니로부터는 일종의 정서적 학대를 받아왔던 것 같아요. 큰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엄마는 당신이 대학 진학을 한 이후부터 가정 내 가장 약자인 당신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곤 했지요. 이럴 때마다 당신은 스스로가 마치 감정 쓰레기통 같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으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일일이 허락받아야 했어요. 아버지는 과도하게 통제하는 성향을 갖고 있으며 딸의 정당한 요구도 수용해 주지 않았어요. 이 과정에서 주영씨는 얼마나 힘들고 혼란스러웠을까요. 예측할 수 없게 쏟아지는 어머니의 분노를 받아내면서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쳤을까요. 당신은 아마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거예요.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과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서, 당신은 자존감이 상당히 떨어졌던 것 같아요. 내면도 위축되고요. 그렇다고 당신이 남편이 말하는 것처럼 '둔한 사람'은 아니에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자기 주장을 잘 내세우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오히려 남편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표현이 서툴다는 면에서 감정적으로 더 둔한 편에 속합니다.
주영씨 부부는 서로 솔직한 대화가 필요해 보여요. 물론 남편처럼 상대를 모욕하는 방식의 대화는 도움이 안 됩니다. 주영씨의 경우 남편에게 '내 외모나 몸매를 지적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당위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엄마와 이런 관계였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과하게 감정을 표현하면 내가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된다. 그런데 당신이 내 외모나 몸매를 지적할 때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해 보는 거죠.
특히 결혼 생활에서 부부의 성생활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남편은 당신이 느낀 대로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고, 그러니 이를 외모나 몸매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화풀이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역시 돌려 말하지 말고 터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성생활에서 자유롭고, 적극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소극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에게 성은 사랑하는 남녀가 동등하고 독립적 관계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남편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성관계 시 긴장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부부 관계를 할 때 불만이 있거나 원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해 달라'는 정도로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부부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남편은 가스라이팅한다기보다는 당신에 대한 불만을 지나칠 정도로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반면 당신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남편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고 관계가 깨질까 봐 불안해하고 노심초사하고요. 만일 내면에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편이 '다시 성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했을 때 '불만을 이야기해 봐,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하고 대답할 수 있었겠지요. 다리 털을 보고 남편이 뭐라 하면, '털이야 깎으면 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무안을 주고 그래?'라고 받아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대꾸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무엇을 바꿔야 하지?' 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주영씨,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인생 대화'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도 나누고 살아가는 게 인생 대화예요. 갈등의 발단은 성관계였으나 제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부족한 소통인 것 같아요. 저는 당신의 마음이 허락하는 선에서 남편과의 제대로 된 소통을 늘려 나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이런 노력을 했을 때도 관계에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이혼을 포함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죠. 일단 오랜 시간 억눌려 있던 내면을 드러내는 연습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눈빛으로, 몸으로 표현할 때 당신이 원했던 건강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중요한 대상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자신 안에서 문제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이에요. 주영씨가 제 옆에 있다면 손을 꼭 잡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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