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 생일도에는 투명한 산이 있다?

입력
2022.02.24 20:00
25면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오성주

ⓒ오성주

2월은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새해의 영광은 1월에 뺏기고, 봄의 환희는 3월에 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2월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성격이 뚜렷한 이 두 계절을 이어주는 인정 많은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1월, 2월, 3월은 한편의 멋진 이야기가 된다.

여기 2월과 비슷한 풍경이 있다. 그것은 완도군 생일도 투명산이다. 투명산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마치 산 두 개가 겹쳐 투명하게 보이는 착시이다. 이 착시는 경이롭다. 산은 거칠어 절대 투명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이요, 이 착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희귀한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조건들이 서로 꼭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성주

ⓒ오성주

투명산을 보기 위해서는 완도 당목항에서 배를 타고 금일도로 가야 한다. 투명산을 만들어내는 것은 생일도에 있는 백운산 봉우리들이지만, 정작 이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은 5㎞가량 떨어진 금일도이기 때문이다. 투명산을 만들어내는 세 봉우리는 실제로는 서로 앞뒤로 떨어져 있다(그림a). 그런데, 건너편 금일도에서 보면 봉우리의 능선이 부드럽게 중첩되는 부분에 'X'자가 선명하다(그림b). 우리 눈은 이렇게 어떤 표면의 윤곽에서 'X'자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여러 형태가 중첩되었다고 보는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세 봉우리가 비슷한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난다. 따라서, 관찰하는 위치도 중요하다. 금일도 일정항에서 자동차로 20분쯤 떨어진 동백리 선착장에서 볼 때만 세 봉우리의 능선이 일치한다.

다음으로, 세 봉우리의 밝기가 물리학적으로 그럴싸한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즉, 양쪽 봉우리는 밝고 가운데 봉우리는 어두워야 한다. 세 봉우리가 1.5㎞가량 거리를 두고 떨어진 것에 비밀이 있다. 흔히, 관찰자로부터 산이 가까이 있을수록 산이 선명해 어둡게 보이고, 산이 멀수록 대기중 공기층이 두꺼워져 먼 하늘과 비슷한 밝은 색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서로 멀리 떨어진 거리로 인해 투명산의 맨 앞 봉우리가 어둡게 보이고 뒤쪽의 두 봉우리가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날씨가 아주 맑거나 너무 어두워서는 이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사진처럼 2월의 해질 무렵은 투명산을 만나기 좋은 시간이다.

왜 우리는 투명한 성질을 지각할까? 우리 주변에는 물, 그림자, 안개, 황사, 공기, 조명 등 투명한 성질을 가진 대상들이 많다. 이 대상들은 얼마나 혼탁한지에 따라, 즉 얼마나 빛을 많이 투과하는지에 따라 투명한 정도가 다르다. 우리 눈은 투명한 성질을 매우 정확하게 지각하는데 아마도 오랜 진화와 시각 경험을 통해서 투명성을 지각하는 장치가 뇌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생일도의 투명산과 같은 착시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2015년 네팔의 히말라야 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 착시를 보기 위해서는 높은 히말라야 산을 올라야만 하고, 착시 정도도 약하다. 투명산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신기루와 같은 소망이 하나씩 있다. 나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다. 이렇게 투명산을 보며 자신의 소망을 빌어볼 수 있다. 청정 지역인 생일도와 금일도 앞바다는 다시마와 미역 양식으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자란 다시마와 미역은 시중에서 파는 라면에 많이 들어간다. 라면 국물 속에 다시마나 미역 두 조각을 세모로 잘라 겹치면 투명산 착시를 집에서도 볼 수 있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대체텍스트
오성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