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가 끝나 새해 운세를 보았다

입력
2022.02.24 22:00
수정
2022.02.25 09:56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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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三災)가 끝났다. 9년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인 삼재.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재난이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 퇴근길 버스에 치이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고민은 있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성과도 있었다. '아! 역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삼재가 끝났으니 운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기대되는 마음으로 2022년을 맞이했다. 음력설을 보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친구가 소개해준 용한 점성술을 보는 일이었다. 올해 어떤 운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발신 번호 없음으로 걸려온 전화. 미리 전달한 생년월일과 한글창에 적어놓은 질문들을 바라보며 핸드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려온 예상치 못한 말.

"선생님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얻어걸린 건 하나도 없네요."

서른넷, 지금까지 운에 기대어 살아왔다. 스무 살, 누군가 입학을 포기해준 덕분에 추가 합격으로 대학생이 됐다. 스물일곱, 메모장에 써둔 글들을 엮어 책을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에게 닿아 작가가 됐다. 스물여덟, 적자였던 단골서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매년 서점 사정이 나아져 독립할 수 있는 돈을 모았다. 모두 운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에 기대 살아오면서도 운이 탄로 날까 봐, 끝날까 봐 마음 졸였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찾아와준 운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땔감을 가져오는 일. 이해하기는커녕 외우기도 힘든 그래프를 겨우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 도서관에 있는 글쓰기 책을 잔뜩 빌려다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주어진 시간을 모두 써서 일했다. 불안한 마음을 연료 삼아 운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불을 지핀 셈이다.

그런데 내가 운 아닌 노력에 기대어 살아왔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말들을 부지런히 받아 적고, 질문하니 1시간이 지났다.

점성술 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하는데 한참을 가만히 듣던 한 친구가 말했다.

"난 너 보면서 운이 좋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자신을 너무 갈아서 사는 건 아닌가 싶었어."

나는 왜 운이 좋다고 생각했을까? 왜 모든 결과물을 운으로 연결했을까? 어쩌면 최선을 다했는데 기대했던 결과물이 없을까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에 대한 면죄부를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운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뾰족한 답은 떠오르지 않지만 이내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운이었든 노력이었든 상관없다. 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노력이었다면, 앞으로 운도 노력을 통해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계속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을 때 실제로 운이 좋았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다.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얻어걸린 건 하나도 없어요'에 이어지는 말은 더 있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고생했다고, 앞으로는 좋은 운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욕심내도 된다는 말. 지금까지도 운이 좋았는데, 앞으로도 운이 좋다니. '아! 역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감사한 삶이다.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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