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은 노동자를 매일 기록합니다"

입력
2022.03.01 04:30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운영자
"1년에 2,000명씩, 알려지지 않은 죽음 많아"
중대재해법 시행된 지난달 27일 책 출간

트위터에서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 계정을 운영하는 이현(가명)씨가 2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가 들고 있는 책은 2021년 계정에 올린 기록을 모아 정리한 책 '2146, 529'. 김소희 기자

여기, 매일 노동자의 죽음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40대 직장인 이현(가명)씨는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점심시간마다 포털에 '사망', '숨져' 등의 단어를 검색한다. 포털 검색으론 나오지 않는 지역신문까지 일일이 확인해 게시글을 올린다. '(2022.2.26) 노동자 1명 사망. "강원도 춘천시 소재 건물 신축 공사 현장 내에서 콘크리트 절단 작업 중 절단된 콘크리트가 이동식 비계를 가격하면서 상부에서 작업 중이던 재해자가 추락하여 사망"'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본업과 연관도 없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이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기록을 시작했다"고 했다. '직업병의 상징'으로 불린 1990년대 원진레이온 참사는 이씨가 대학 시절 참여한 첫 시위였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노동권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죽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창구를 옮겼다.

처음엔 '누가 보긴 할까' 싶었다. 계정을 연 지 석 달이 지나자 팔로어가 한 달에 1,000명씩 늘었다. 지금은 8,000명이 넘는 팔로어가 매일 계정을 보고 있다. 이씨가 미처 못 올린 기사를 보내주거나, 지인의 일을 직접 제보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월 LG디스플레이 화학물질 유출 사고 후 부상자의 사망 소식도 동료들이 제보해왔다. 공통된 반응은 슬픔과 분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느냐는 거다. 얼마 전 이씨는 한 60대 여성에게 "한참 계정을 보고 있었는데 너무 보기가 힘들어서 팔로우를 끊어야겠다. 수고하시라는 말도 못 남기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현(가명)씨가 운영하는 계정에 지난해 9월 6일 하루에 올라온 노동자의 사망 소식. 트위터 캡처

기록을 위해 매일 접하는 죽음이지만 이씨도 버거울 때가 있다. 이씨는 지난해 각각 다른 7명의 부고를 동시에 올린 하루를 떠올렸다. 이씨는 "수치로는 알고 시작했지만 기록하다 보니 숫자가 전하는 것과 또 다른 끔찍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4월 경기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씨 사고 당시, 아버지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참담했던 기억을 전했다.

그럼에도 이씨가 기록을 이어가는 이유는 "1년에 2,000명씩, 우리 주변에서 일하다 죽는 이들 중 극소수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노동자 한 사람의 죽음이 그대로 휘발되지 않고 기록으로 남아 뭉쳐지는 걸 꿈꾼다. 그는 "뭉치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고, 다른 걸 깰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씨는 노력의 일환으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지난해 계정에 올린 게시글을 정리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2146, 529'. '529'는 이씨가 지난 한 해 동안 계정에 기록한 죽음의 수다. 출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첫날인 1월 27일로 정했다. 일정에 맞춰 교정, 인쇄 등 전 과정이 한 달 만에 이루어졌다. 출간 후 이씨는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윤석열 대선후보,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 8명을 비롯한 정치인 10여 명에게 책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반응을 보내온 정치인은 없다.

그 사이, 노동자는 매일 일하다 죽는다. 지난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삼표는 중대재해법 '1호 수사' 대상이 됐다. 이씨는 "걸릴 곳이 걸렸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부연했다. 이씨는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 중 사람이 일하다가 이렇게 많이 죽는 곳은 어디도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덧붙였다. "조금 더디게 발전하면 어때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2146, 529'. 노동건강연대 기획. 이현 정리. 온다프레스 발행.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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