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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로 딴 메달' 소치 폐막 직후 우크라이나 침공한 푸틴, 이번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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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올림픽을 생각하면 언제나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수많은 선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면서도 쉽게 감동을 얻는 나지만, 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가 이뤄지는 방식이나 도시 환경과 약자들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에 쓰고 있던 가상 오륜기 안경을 벗게 된다. 올림픽 기간에 유난히 펄럭이는 내 마음 속 태극기가 불러일으키는 바람도 달갑지만은 않다. 나고 자랐으며 살고 있는 곳이니 국가대항전에서는 당연히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올림픽에서도 그렇지만, 응원의 마음이 너무 커져 '우리의 승리'를 최우선에 두지 않도록 경계하려고 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피겨 스케이팅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러시아 올림픽 선수단의 발리예바 선수를 보면서는 또 다른 고민이 들었다. 성인이자 스포츠 팬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스포츠라는 문화의 향유자로 남으려면 도핑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만 15세인 발리예바의 금지 약물 복용이 사실이라면, 어떤 과정과 조력을 통해서 가능했을까. 약물 복용이 정면으로 위반하는 '스포츠 정신'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기억하고 승리를 최우선 목표로 삼기를 요구하는 세계에서도 끝내 지켜내야 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또 무엇일까.
그래서 '이카로스'를 봤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이카로스'는 답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이상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작품이다. 2014년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를 연출한 영화감독 브라이언 포겔은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도 활동 중이다. 전설의 사이클 선수였지만 도핑을 해왔음이 드러나 몰락한 랜스 암스트롱을 보고 충격을 받은 포겔은,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경기력을 높이는 불법 약물의 투여, 곧 약물 도핑이며, 이를 적발하는 도핑 적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포겔은 자신의 육체에 실험을 감행하기로 하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도핑 전문가인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며 실험을 시도하던 중, 우연한 소개로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라는 이름의 러시아 과학자와 연결된다. 로드첸코프는 포겔과 영상 통화와 메일 등으로 소통하며 여러 조언을 건넨다. 여기에는 약물의 조합과 비율, 투여 방식과 같은 기본적인 도핑 방법뿐 아니라, 도핑 검사를 피할 수 있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는데 실은 이 부분이 핵심이었다. 약물은 포겔의 신체 능력을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변화시켜 간다.
여기까지 지켜온 방향으로 쭉 나아갔어도 이 작품은 운동선수들이 도핑의 유혹에 왜 빠질 수밖에 없는지, 도핑을 규제하고 적발하기가 왜 까다로운지, 그럼에도 도핑과의 싸움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과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재미있는 법이다. 2014년 11월 로드첸코프가 소장으로 있던 러시아 반도핑 연구소가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 조작의 핵심 기관임을 고발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되면서, 포겔의 도핑 실험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향해 간다.
자신과 러시아의 도핑 이슈를 둘러싼 분위기가 악화돼 가는 것을 감지한 로드첸코프는 포겔에게 도움을 요청해 미국으로 망명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핑 사건에 같이 얽혀 있던 로드첸코프의 동료들이 불명확한 이유로 사망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뤄야 하는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예상치 않은 커다란 사건의 등장은 암초일 수도 있고 신대륙일 수도 있다. 자신이 위험하지만 새로운 땅을 발견한 것을 알게 된 포겔은 실험을 중단하고 로드첸코프가 도핑 증거 조작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기 시작한다. 도핑의 허와 실을 밝히려던 시도가 도화선이 되어 올림픽 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의 진상이 터져 나온 것이다.
로드첸코프의 입으로 직접 증언하는 도핑 조작 시스템은 충격적이다. 로드첸코프를 망명하게 만든 첫 폭로 다큐멘터리에서 러시아의 한 선수는 "러시아 운동선수의 99%가 도핑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드첸코프는 약물 양성 검사를 은폐하는 과정에 러시아 정부 고위 관리를 비롯해 정보기관이 개입했으며, 도핑을 위한 조직적인 시스템이 존재했음을 증언한다. 그가 일했던 조직이 도핑에 반대하는, 도핑 여부를 발각해야 하는 기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토록 아이러니한 일이 없다. 도핑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핑을 방지하고 막는 것이 아니라, 도핑 테스트에 발각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빈틈을 파고들어 세계를 속여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로드첸코프는 자신의 일을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요. 도핑과 반도핑."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폭로 이후 러시아 스포츠와 운동선수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시스템은 어떻게 변했을까. 도핑 스캔들로 인해 러시아는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선수들은 개인의 자격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국기를 단 선수복을 입을 수 없고, 우승했을 때 국가가 울려 퍼질 수 없게 하는 등 공식적으로 국가를 대표하지 못하게 한다는 처벌이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비공식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면서 러시아 선수단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발리예바 선수를 보면서도 러시아 선수들이 도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카로스'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봐야 하는 다큐멘터리가 된다. 도핑 스캔들이 시작되는 2012년 런던올림픽으로부터 10년, 이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온 2017년부터도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두 번의 동계올림픽과 한 번의 하계올림픽이 그 사이에 개최됐다. 엄청난 음모와 부정이 폭로되고 밝혀졌지만, 올림픽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의 세계는 거의 변한 것 같지 않다. 메달의 개수로 국력을 과시하고 국민이라는 이름의 대중에게서 인기를 얻어 내려는 정치적인 전략은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이카로스'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 푸틴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여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솟구쳐 오른 지지를 등에 업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내가 정말 큰 충격을 받은 건 그 다음의 일이다. 다큐멘터리의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전쟁 위협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아무리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반복되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차이는 있다. 개인, 혹은 조직적인 도핑도, 이를 둘러싼 여러 기관의 미온적인 대처도 반복되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다. '이카로스'와 이후 여러 언론의 취재 및 조사로 밝혀진 스캔들의 진상을 확인한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둘로 나뉠 것 같다. 어둠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하며 회의를 품는 쪽이 있다. 또 다른 한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도핑과 불법이 제아무리 만연하다 해도 스포츠 정신은 이로 인해 오염될 수 없고 오염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추악한 역사를 목도하는 증인이 되어 후자의 태도를 지켜낼 수 있다면,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지 않고 변주될 것이다. 로드첸코프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인용하며 말한다. "모두가 거짓을 수용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진실이 된다." 반대로 본다면, 모두가 거짓을 거부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승리를 위해 온갖 부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국가와 단체, 개인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승리보다는 참가에, 성공보다는 노력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며 이는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고 믿는 사람이 분명히 더 많다고 나는 믿는다.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들과 거짓을 수용하지 않는 목격자가 되기 위해, 이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싶다. '이카로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최초로 201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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