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욕망에 대한 솔직한 풍자, 뮤지컬 '난쟁이들'

입력
2022.02.25 04:30
12면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4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난쟁이 역할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랑 제공

4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난쟁이 역할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랑 제공

지루한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삶이 점점 더 팍팍해져 간다. 이러한 현실에서 웃음은 삶의 윤활유가 되어 준다. 무기력함과 무력감이 지배하는 요즘. 웃기기로 작정하고 만든 대학로 창작 뮤지컬 '난쟁이들'을 소개한다.

2015년 초연 이후 여러 차례 재공연할 정도로 인기 레퍼토리인 뮤지컬이다. 이 작품에는 제목대로 '백설공주'의 난쟁이들과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그리고 동화 속 왕자들과 마녀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동화 속 인물들이지만 우리가 아는 그대로는 아니다.

동화에는 지나치게 착하고 용감하고 정의롭거나, 아니면 이유 없이 못되고 악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뮤지컬 '난쟁이들'의 동화 속 인물들은 마냥 착하고 용감한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인물처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난쟁이 찰리는 공주와 결혼해 인생 역전을 꿈꾸고, 일곱 난쟁이 중 가장 어린 난쟁이였던 빅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백설공주를 잊지 못해 한 번이라도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 한다.

공주들도 동화 속 이상적인 모습과는 판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평민 출신인 신데렐라는 부와 출세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데 쉬운 단어도 정확하게 말하는 적이 없어 웃음을 준다. 인어공주가 공주 지위를 잃자 ‘생선’이라고 부르는 등 높은 자에게 약하고 낮은 자에게 강하며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백설공주는 타고난 공주 가문이지만 ‘어른이 뮤지컬’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성적인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다. 우아한 공주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넌 몇 번째 왕자냐?’라고 일진 언니 톤으로 목소리를 깔 때면 보는 관객들도 괜히 공손해진다. 물거품으로 사라졌던 인어공주는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마녀의 마법으로 9등신이 된 찰리와 사랑에 빠져, 그가 부르는 노래에 자신도 모르게 스텝을 밟는 등 천진난만하고 철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왕자들은 겉멋이 잔득 든 허세 가득한 인물로 변한다. 왕자1, 왕자2, 왕자3이 ‘뜨그덕’ 하며 가상의 말을 타고 함께 등장하는 장면부터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왕자들이 선사하는 가장 큰 웃음은 이들이 뮤지컬 넘버 ‘끼리끼리’를 부를 때다. 난쟁이들이 공주를 만나겠다는 생각을 비웃으며 왕자들이 세상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이야기하는 매우 코믹한 노래다. 엉뚱한 가사와 그것에 어울리는 코믹한 춤이 어우러져 큰 웃음을 준다.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허황된 말만은 아니어서 웃음 뒤에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4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왕자 역을 맡은 세 배우가 코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랑 제공

4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왕자 역을 맡은 세 배우가 코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랑 제공

뮤지컬 '난쟁이들'은 동화 속 이미지를 뒤집은 캐릭터의 깨는 대사와 코믹한 상황, 그리고 솔직한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B급 코미디로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웃음을 준다. '난쟁이들'의 웃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웃음이기 때문이다. 난쟁이들이 주고받는 부동산 관련 현실 풍자와 같은 애드리브성 멘트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왕자들의 예와 같이 과장되고 허황된 상황·인물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천민 출신으로 공주 계급에 남기 위해 민망할 정도로 애를 쓰는 신데렐라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본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백설공주, 사랑의 상처 때문에 움트는 마음을 애써 거부하는 인어공주까지 이들의 행동은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냈던 동화 주인공들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는다. 백설공주는 성적 욕망을 넘어서 자신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간직한 난쟁이 빅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공주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베푸는 기쁨을 깨닫는다. 신데렐라는 신분 상승을 위해 열렬히 노력해 왕자를 차지한다.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처럼 이들 역시 해피엔딩을 맞지만 '난쟁이들'의 해피엔딩은 동화의 그것과 다르다. '난쟁이들'은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성장하면서 해피엔딩에 이른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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