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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지방선거 같다... 사회적 의제 아닌 민원 해결성 공약 넘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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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선거운동 마지막 날 사병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겠다는 약속을 갑자기 내놨어요. 없던 공약을 선거 임박해 제시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새 정부 출범하고 한 달여만에 국방부는 예산 부족과 전투력 약화를 이유로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위약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22일 한국일보와 만나 “선거가 닥쳐 나오는 깜짝 공약은 이행 가능성이 높지 않아 가려 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매니페스토’는 표를 얻기 위한 거짓 공약을 하지 않겠다는 후보 선언을 유도하고 이를 검증해 정책 선거를 활성화시키려는 운동이다.
양강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이번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네거티브 유세가 두드러진다. 200조, 300조 예산이 드는 정책이 얼마나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지 따지기보다 후보의 행동이나 실언 등 이미지에 일희일비해 여론조사마저 출렁인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면서 변혁기의 한국을 끌고 나갈 지도자를 뽑기 위해 어떤 대선이 되어야 하는지, 유권자들은 무엇에 주목해야 할지 이 총장에게 들었다.
-20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요 후보들 공약의 전체적인 특징을 꼽는다면.
“가치 중심의 사회적 의제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민원 해결 위주 공약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선인지 지방선거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민원 해결이 많은 지방 행정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민원 해결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검찰 출신 윤석열 후보에게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현재와 미래의 의제를 문제를 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 내가 해결하겠다며 ‘스트롱맨’으로서의 능력 과시에 급급하다.”
-여전히 주요 후보들의 다수가 완성된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은행 대출 받을 때도 상환 계획 없이 돈을 빌릴 수 없다. 하물며 나라 살림 위임 받는 사람이 국정 위임 계약서라고 할 대선공약집을 일찍 제시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백지수표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공약의 좋고 나쁨에 앞서 그 공약을 국민이 제대로 알고 거기에 대해 논의하며 합의하는 과정이 필수다. 공약집으로 자신의 공약을 체계화하지 않으면 후보 자신조차 공약이 무엇이고 몇 가지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필요한 막대한 재정도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의 공약 이행 정도를 평가해 공표하지만 대선에서는 그런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선은 지도자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선거 때 약속을 중심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과정이다. 대선에서 제시한 수많은 공약도 인수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빠지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일부 언론 중에서는 공약 다 지키면 망한다며 빼고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약속이 바뀌고 빠졌는지 국민이 제대로 알 길도 없다. 이런 경우를 해외에서는 국민과의 계약을 공무원과의 계약으로 변질시켰다고 한다. 공약을 모두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조정해야 할 경우 최소한 왜 빠졌는지 설명하고 그렇게 바뀐 약속에 대해 국민의 승인을 받는 재계약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엘리트 민주주의, 카르텔 민주주의에서 제대로 된 대의민주주의로 가려면 이런 변화가 필수다.”
-최근 주요 후보 진영으로부터 정책공약질의서 답변을 받아 공개했다. 각 후보의 공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책질의서에 정책의 철학, 구체적인 실행 방법과 함께 현 정부가 내세운 100대 국정과제의 지속 여부를 물었다. 유럽에서는 정책을 검증할 때 지속 여부를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책의 지속ㆍ예측 가능성을 높여 유권자들의 판단을 도우려는 것이다. 덧붙여 17개 시도가 지역 공약으로 제시한 각종 개발 사업 수용 여부를 답변하라고 했다. 지방 사업이지만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중앙과 합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후보들의 답변은 전체적으로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려 한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사회구조가 급변하고 고령화에다 팬데믹까지 겹친 위기를 넘어서자면 각계 각층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그런 현실을 설명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합심해서 이겨내자는 공약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고통 주지 않고 내가 다 해결하겠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현실을 가감 없이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공약 사례가 있나.
“매니페스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국의 토니 블레어다. 그는 ‘저희는 영국의 국민을 믿습니다’고 시작하는 정책공약집 서문에서 당시 영국 상황은 노동당 정권이 되어도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서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주어야 이 위기를 넘어 새로운 영국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당선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손해가 생길 경우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이라고 밝혀야 한다. 우리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지나고 나면 그런 희생은 잊혀진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커지고 불신이 만연해졌다. 대선이 갈등을 치유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공약이 현실성 있으려면 재원 확보 방안이 구체적이어야 할 텐데 그 점에서 각 후보의 공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살림을 꾸릴 때도 얼마나 벌 수 있을지 따져본 뒤 아이들 학원이 먼저인지 가전제품 구매가 먼저인지 지출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후보들의 대선 공약 가계부가 명확하지 않다. 쓸 곳은 많은데 수입이 불분명하다.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는 피해 가고 대부분 선물보따리라도 안길 것처럼 공약 이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희생된 자영업자 등 지원을 공약으로 앞세운 것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재원을 확실히 밝혀야 믿을만한 것이 된다. 증세를 할 건지, 어디를 얼만큼 줄일 것인지 이런 대차대조가 너무 부실하다.”
-각 당 후보의 정책 방향과 이를 뒷받침할 실행 계획에서 바람직한 대목과 문제점을 꼽는다면.
“이재명, 윤석열 후보 공약에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책을 민원 해결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과제 설정에서 철학적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만 해결 방식에는 차이가 크다. 과거 정부에 빗댄다면 이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식, 윤 후보는 이명박 정부 방식의 해결을 추구한다. 경제, 외교, 안보를 어떤 조합으로 묶어서 보는가도 차별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수출 이야기를 하면서 외교를 말하는 식으로 외교와 통상을 묶어 보는 경향이 있다. 윤석열 후보는 한미일 협력 등 외교를 안보와 함께 거론한다. 두 후보 모두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코로나 피해자를 다독이는 공약이 1순위인 것은 좋았다.
심상정 후보가 과거와 다른 점은 공개한 공약 재원이 상대적으로 적어졌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공약이 많아 지금까지 늘 필요한 재원이 후보 중 제일 많았는데 정책 준비를 과거보다 좀 소홀히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불평등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는 것은 장점이다. 안철수 후보는 환경, 안보 분야 공약이 지난 대선 때와 많이 달라졌는데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지원에 적극적이라든가 대기업ㆍ중소기업 상생 발전에 대한 관심은 평가할만하다.”
-중요하게 다룰 사회적 의제인데 공약에서 빠진 부분은 없나.
“교육에 대한 논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사회 전환을 이야기 하고 소득 격차를 말하는데 이걸 바로잡는 건 결국 교육이다. 앞으로는 착한 아이, 암기 잘 하는 아이보다 엉뚱한 아이, 창의적인 아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교육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인재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보육비, 돌봄 지원 같은 지엽적인 문제만 나열한다. 전환기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의문이다.”
-후보 배우자 논란까지 겹쳐 과거 어느 대선보다도 막장폭로전 같은 선거다. 대선이 갈수록 혼탁해지는 것 같다.
“선거에는 네거티브, 포지티브 전략이 있기 마련이다. 유럽 등의 사례를 보면 언론이 오랫동안 탐사보도를 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정치인이 선거에 나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는 그보다 선거 때 갑자기 부상하는 후보가 많아 체계적인 후보 검증이 부실하다. 그러다 보니 인격살인 등 네거티브 요소가 두드러져 보인다. 결함 없는 제품을 소비자에 내놓기 위해 생산 과정에서 품질 검사를 철저히 하듯 정당에서 충분히 검증을 거친 후보가 본선에 나오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잇따른 전직 대통령 투옥 등을 겪으면서 정치적 화해와 사회 통합을 바라는 국민이 적지 않다. 후보들 답변에서 그런 소신을 확인할 수 있었나.
“민주주의를 앞세워 ‘정치 사냥’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를 모두 부정하려는 정서가 우리 정치에 많았다. 보수와 진보는 갈등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파트너인 측면도 있다. 파트너를 적으로만 보면 공멸하기 마련이다. 선거 뒤 패자의 정책을 흔쾌히 받아들여 퇴로를 열어주는 사례를 해외에서 자주 본다. 인수위원회에서 승리에 취할 것이 아니라 상대 진영의 공약 중 수용할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이를 받아들이는 화합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대선을 승자독식을 승인 받는 절차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꿔야 한다.
양강 후보의 공약이 크게 다르지 않다. 두 후보 모두 시장을 중시한다. 이재명 후보는 공공의 역할을 더 앞세우고, 윤석열 후보는 기업을 중시하는 정도 차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초점이 충돌만 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부문에서는 상대방 공약에 귀 기울일 대목이 많을 것이다.”
-매니페스토 실천을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도 적지 않다. 우리 언론은 바림직한 선거 보도를 하고 있나.
“이번 대선에서 탐사보도, 팩트체크 같은 것이 늘어난 것은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책을 분석하고 따지는 공약 검증 중심 보도를 하면 시청률, 열독률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실제 보도에 투입되는 인력만 보더라도 그때그때 여론조사 결과나 선거 당일 예측 보도 등에 훨씬 비중을 둔다. 승패에만 주목해 한 발 앞서 보도하는 것보다 후보의 정책을 검증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선 여론조사가 결과가 들쭉날쭉해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무리하게 경선 결과를 확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등 문제가 없지 않다. 오차범위 내 지지율 차이는 결과를 알 수 없는데도 그것으로 대선 당락을 전망하려는 경향도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정도로 참조하는 데 그쳐야 한다. 여론조사는 신뢰성이 중요한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는지도 의문이다. 문항의 편향을 개선하려는 노력 등 자기 검증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 혼란이 컸던 만큼 선거 끝난 뒤 반드시 여론조사를 복기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실현 가능한 약속을 하고 이를 지켜가는 책임정치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대통령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를 조정하는 사람, 제한된 공공자원을 배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수십 년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인 만큼 겸손하면서 책임질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권위적인 스트롱맨에서 벗어나려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선거 때 약속을 잊어버리라는 사람도 있다. 미래가 예측 가능한 시대라면 엘리트의 권위가 우선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변혁기에는 대중의 합의가 중요하다.
중국 마오쩌둥 정권에서 참새가 볍씨를 쪼아 먹는 바람에 수확이 줄어든다며 참새 박멸 운동을 기아 대책으로 내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늘어 흉년이 들고 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가장 나쁜 정책은 이처럼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다. 아무리 새로운 정책이라도 합의가 없으면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정책에 힘이 생기고 손해, 수혜자에 대한 배분도 가능하다. 후보들이 공약의 사회화를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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