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확진 환자 데리고 가라" 사흘 만에… 환자 사망, 보호자 중태

요양병원 "확진 환자 데리고 가라" 사흘 만에… 환자 사망, 보호자 중태

입력
2022.02.23 14:50
수정
2022.02.23 19:5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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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중환자 아니면 병상 배정 안 돼 내린 결정"
보건소 "일선 의료기관의 판단, 제재할 수 없어"
"방역체계 한계, 지침 부재 겹친 비극" 지적도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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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입원 환자가 병원에서 퇴원 조치된 지 사흘 만에 숨지고 보호자 또한 코로나19 감염으로 중태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환자 가족은 "요양병원이 무책임하게 환자를 강제 퇴원시켰다"고 항의하는 반면, 병원은 코로나19 병상 부족 탓에 중환자가 아니면 전원(轉院·다른 병원으로 옮김)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근본적으론 확진자 폭증으로 방역체계가 한계에 달하면서 빚어진 비극이란 지적도 나온다.

"확진자 데리고 나가라"… 환자 사망, 보호자 중태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문모(71)씨는 이달 10일 어머니 박모(88)씨가 뇌경색 재활치료차 입원해 있는 경기 하남시 소재 요양병원으로부터 모친의 퇴원 절차를 밟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 측이 문씨에게 "어머니가 병원에서 확진됐으니 오늘 당장 데리고 가라"고 통보했다는 것이 박씨 가족의 주장이다.

문씨는 퇴원한 박씨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집으로 모셨다. 하지만 박씨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고, 문씨도 간병 중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팔달구 보건소는 박씨 사례를 처음 이관받은 12일과 13일 박씨의 입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박씨가 이를 거절했다. 환자인 박씨는 물론이고 보호자인 문씨 또한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려웠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이다.

가족들은 13일 두 사람과 종일 연락이 닿지 않자 문제를 직감하고 그날 밤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가 문씨 집에 도착했을 때 박씨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숨진 상태였고, 문씨는 체온이 39.9도에 달해 의식이 혼미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문씨는 심장, 신장, 폐 기능이 모두 심각하게 저하된 것으로 진단됐고, 유전자증폭(PCR)검사를 통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문씨는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요양병원은 박씨 가족의 항의에 "박씨가 코로나19 치료 병상을 배정받을 수 있을 만큼 중증이 아니어서 퇴원시켰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보건소도 중환자가 아니면 (병상) 이송을 해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관리하라는 분위기"라며 "그간 중환자는 이송해왔지만, 박씨는 퇴원날까지도 스스로 옷을 입고 휠체어를 끌 정도여서 의학적 판단에 따라 퇴원시켰다"고 말했다.

보건소는 병원의 결정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남시 보건소 관계자는 "(재택치료 원칙화 이후) 입원을 고려할 만한 위험요인이 있는 환자라도 중증이 아니면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확진자 퇴원 절차를 규정하는 법령은 없으며 의료기관이 자체 판단에 따라 퇴원 조치한 것을 보건소가 제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침 부재-방역 한계 상황이 겹쳐 빚어진 일"

하지만 요양병원이 코로나19 확진자를 퇴원시킬 수 있다는 지침 또한 없는 게 사실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배포한 '요양병원 집단감염 발생시 현장대응 실무 매뉴얼'은 확진자 중증도에 따라 전원 조치, 병원 내 잔류 치료 등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계에선 방역체계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요양병원의 재량권이 확대되면서 확진자 퇴원 조치 또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은 "환자 전원이 어려워지면서 요양병원 재량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방역 지침이 변경돼 왔다"며 "재택치료를 위한 퇴원 조치는 비록 명시적 지침은 없더라도 인원을 분산해 감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일반적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에선 방역 상황 악화와 요양병원의 대응 여력 부족이 더해져 박씨 모자와 같은 비극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 지역 보건소 관계자는 "해당 요양병원이 지침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환자 이송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요양병원이 확진자 발생시 일반병원만큼 충분한 대응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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