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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환자에게 배운다" 그 씩씩한 환자는 깜짝 놀랄 재활법을 혼자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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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늘은 오전과 오후 진료가 연달아 있는 날. 체력이 달려서인지, 외래 시간이 자꾸 지연되곤 한다. 나름 환자를 열심히 보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점심시간까지 연장되면 외래 사원들이 고생이다.
외래 환자는 크게 두 부류다. 초진 그리고 재진. 병원 경영 측면에선 초진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높은 초진 비율은 외래 지연 요소가 된다. 아무리 빨리 진료해도 10분 이상은 소요된다. 사실 그 시간도 짧다. 본인의 증상 몇 마디로 문제를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까지 진행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시간 배분이 중요하다. 몇 달 또는 1년마다 정기 검진처럼 증상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는 환자를 위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작년 이맘때 같은 인사를 하며 외래 진료실에 찾아왔던 림프부종 여성 환자다. 사실 그는 환자라고 부르기엔 적절하지 않다. 지난 치료 기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썼던 가발과 모자도 이젠 쓰진 않았다. 얼굴도 더 이상 붓지 않고 손끝 발끝 저림 때문에 느릿느릿 걷지 않아도 된다. 비 내리는 아침이면 갑자기 쿡쿡 쑤셔 오는 가슴 통증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젠 ‘졸업하셔도 될 것 같아요!' 하며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특별히 어디 아파 보이지도 않고, 본인의 증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다.
“전 요즘 압박 스타킹도 잘 안 해요. 약 별로 안 먹어도 이제 팔이 붓지 않더라고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다. 설마 그럴 리가, 관리를 제대로 하고 압박도 꼭 해야 하고, 약도 꾸준히 먹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난번 열심히 설명했는데 지키지 않았단 말인가.
“그 대신 매일 운동해요. 이런 동작들 하면 팔이 많이 가벼워져요.”
“정말요? 어떤 운동을 하셨는데요?”
다른 환자들에게도 전해주면 좋겠다고 하면서 팔을 걷어붙인다. 침대 위에 올라 서서 천장에 양손을 붙이고 몸통을 회전시킨다. 옷 좀 더러워져도 괜찮다고 씩 웃으면서 외래 진료실 바닥에 엎드려 동작들을 보여준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산소 소모량을 증가시키지 않아 혈류 양의 과부하를 막고, 적절한 주변 근육 수축을 통해 간접적인 림프관 내 흡수를 촉진하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적절한 동작이다. 볼수록 신기하다.
기존의 동영상이나, 환자 교육 자료에는 아직 효과기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동작들이 섞여 있어 아쉬웠다. 좀 더 효과적인 동작을 찾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고, 논문을 찾아보고, 최근 연구 결과들을 모아 재해석하며 무언가 멋진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환자가 보여준 지금 이 동작들이 훨씬 훌륭했다.
“이렇게 해보니 팔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는 고통을 참으면서 몸에 좋다고 알려진 운동을 강행하기보다, 신체가 보내는 신호에 대한 감수성에 반응했다. 일본의 학자 우치다 다츠루가 ‘소통하는 신체’라는 책에서 묘사한 ‘자신의 신체에 경의를 표하기’를, 이 환자는 몸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만요. 녹화 좀 해도 될까요?”
동의를 구하고 아이폰 비디오를 켰다. 몇 가지 동작들을 녹화하니 든든해진다. 도움이 되면 좋겠노라, 씩 웃으시며 내년에는 새로운 동작들도 시도해 보고 전해주러 오겠노라, 약속을 남기며 돌아갔다. 그는 이제 환자가 아니라 '부종과 함께 살아가기'를 보여준 선생이었다. 난 보물창고에 이야기 한 보따리 더 쌓아둔 부자가 된 듯했다. 비슷한 수술과 치료를 받았고,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찾아 전해주고 싶다. 얼마나 좋겠는가, 난 환자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의사 아닌가.
뒤이어 들어온 30대 젊은 여성 역시 림프부종 환자이다. 난 얼른 인정받고 싶었나보다. 방금 나간 환자가 전해주고 간 동영상과, 근거가 될 만한 이론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내심 기대했다. ‘고맙다’ 내지는 ‘한번 해보겠다’ 하겠지?
“전 그 동작보다는 이게 더 좋던데요?” 손등이 자주 부어서 많은 시간 손장갑과 붕대를 감고 있어야 했던 그는 손등을 털어주고,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움직임이 더 좋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늘 세상이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다”는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말처럼 내 기대 역시 어긋나고야 말았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방금까지 정리한 이론으로는 이 모델이 가장 좋은데! 지금 이 환자는 내가 설명한 동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겠다.
“아, 그래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손등이 붓는 환자와 겨드랑이 몸통이 붓는 환자는 림프부종이라는 진단만 같을 뿐, 손상받은 림프관과 보상하는 기전은 완전히 다르다. 이 둘은 같은 동작이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없는 다른 환자였다. 하마터면 그를 방금 만든 우리의 잣대로 판단할 뻔했다.
난 잘난 척하며 무언가 가르쳐주려던 시도를 우선 멈췄다. 환자가 스스로 몸이 건네는 신호를 들을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세밀히 들을 수 있는 자세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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