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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이대녀' 좇다 깊은 고민 사라진 젠더 공약

입력
2022.02.28 04:30
8면

[내 삶의 공약, 검증한다]
<7·끝> 젠더: 누가 젠더평등 실현해 줄까요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들이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들이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무고죄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인상, 황예진법 제정…'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이 차별화를 외치며 내놨던, 유권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던 대표적인 젠더(성평등) 관련 공약들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강렬하고 화끈하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심하게 살펴보기 보다는 2030세대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구분한 뒤, 눈에 번쩍 띌 만한 멋진 이야기를 훅 던지는 방식으로 공약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의 젠더 공약이 지나치게 파편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종합적인 판단, 평가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표 계산에 밀려 임신·출산·육아 등 저출산 관련 분야부터 젠더 기반 폭력, 일·가정 양립, 고용성평등 같은 문제들에 대한 차분한 논의는 뒤편으로 사라졌다는 얘기다.

성 관련 범죄, 그저 '처벌 강화'만

젠더 기반 폭력 근절 대책은 하나같이 처벌 강화를 앞세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교제 상대로부터 폭행당해 숨진 피해자 이름을 딴 '황예진법'(데이트폭력처벌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성범죄 흉악범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 전자감독제와 보호수용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억울한 남성이 생기는 걸 막겠다며 성범죄 무고 조항 신설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디지털성착취물 플랫폼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내걸었다.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포함해 4인 공통 공약이다.

모두 교제 폭력이나 스토킹 흉악범죄, 'n번방 사건'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에서 출발했다.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보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환경 조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건 차치하고라도, 젠더폭력을 마치 젊은 남녀 사이 문제로 단순화하는 시각이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건들에 대해서만, 처벌 수준만 강화한다는 게 '대안'일 수 있느냔 지적이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지나치게 2030 세대 중심,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틀에 박힌 사고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연인뿐 아니라 노인 사이, 또는 배우자나 자식에 의한 것, 장애인이나 한부모가 겪는 문제 등 굉장히 다양한 젠더폭력 양상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풍성한 저출산 대책... 실효성 높일 방안 빠졌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5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1800명 감소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뉴스1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5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1800명 감소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뉴스1


후보들의 젠더 공약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건 단연 저출산, 경단녀 지원 정책 분야다. 자궁·유방 건강검진과 시술비 지원, 출산 후 월 100만 원씩 급여를 준다는 공약(윤석열 후보)부터, 난임 지원 확대 및 출산·육아휴직 자동등록제(이재명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임신, 출산, 돌봄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을 되도록 늘려 여성들의 경력단절, 즉 '경단녀'를 막아보겠다는 얘기다.

물론 육아휴직을 철저히 보장하고, 육아 휴직기간을 늘리고, 휴직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올리겠다는 것 자체가 나쁘진 않다. 하지만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령 선뜻 육아휴직을 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2018~2020년 육아휴직 후 퇴사율이 34%로, 휴직하면 근무지를 옮겨버리거나 휴직확인서 발급을 지연시켜 수당 수급을 불편하게 하는 등 각종 차별 사례도 있다"며 "안전한 복귀를 보장해 주는 장치가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또 육아휴직을 가면 대체인력 지원도 돼야 한다. 이 문제는 심상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언급했다. 이 후보가 공약한 인건비 지원은 현재도 시행 중이지만 대체인력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중소기업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심 후보는 대체인력을 상시 준비하는 '국가 대체인력지원센터'를 설립한다고 해 구체성과 실효성 면에서 앞섰다.


중소기업 육아휴직 비율연도별 부·모 사용률, 단위: %
통계청


저출산 대책도 '진화'가 필요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갖가지 저출산 대책이 완비된다 해도 이로 인해 여성의 경력 유지가 크게 활성화되고, 그렇기에 여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임신을 할 것이라는 건 '비현실적 낙관론'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이미 통계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2015년 21.7%였던 경단녀 비중은 2020년 17.5%로 줄었다. 그럼에도 합계출산율은 같은 기간 1.24명에서 0.84명으로 늘긴커녕 더 줄었다. 육아휴직 확대와 돌봄 지원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비혼 증가 등 변화한 시대상에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선미 여정연 여성미래연구본부장은 "경단녀 감소에 지금의 임신·출산 정책이 기여한 정도는 3분의 1도 안 된다고 본다"며 "그만큼 교육 수준,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환경 등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 본부장은 "현재 임신·출산 단계에 해당하는 여성의 일자리 특성, 일과 가정 양립 정도, 임신을 원해도 미루는 위기요인 등에 기반해 정책을 설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성별임금격차... 이번에 '남녀별 임금공시' 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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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졌다시피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5%(202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유리천장 지수도 9년째 꼴찌다. 여성계에선 채용부터 승진과정 등에서 차별구조가 있는 영향으로 본다. 이재명·윤석열·심상정 후보 모두 남자, 여자 성별 임금을 외부에 공개하는 공시제를 공약했다. 더 나아가 윤 후보는 성별근로공시제(채용부터 퇴직까지 주요 단계별 성비 공개) 제도를 500인 이상 기업부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는 계획까지 제시했다.

공시제는 남녀 간 격차를 보여주는 '시작' 단계에 해당한다. 문제가 공유됐다면, 어떻게 시정할지도 뒤따라야 한다. 현재 후보들 공약에선 차별 피해 구제, 근로감독 강화 등 정부 개입이나 제재 수준을 높이는 방향이 거론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 참여를 강제할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성별임금공시는 문재인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내세운 국정과제였지만, 기업 반발에 막혀 결국 첫발도 떼지 못한 채 그냥 묻혔다.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참여를 유도할 만한 인센티브 없이 규제만 강화하는 건 실현 동력을 주지 못하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와 규제를 번갈아 작동해야 기업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임금 공개만으로는 부족하고, 지원자 성비 대비 합격자 성비, 각 직책까지의 성별 승진 소요 연한 등 다양한 데이터도 포함해야 하며, 문제 해결과 개선 계획 제출, 실행 점검까지 진행해야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원 대책은 깜깜이… 이 약속들 지켜질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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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약은 돈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얘기는 보이질 않는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후보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각종 공약 이행에 들일 돈은 200조~300조 원 이상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뿐이다.

젠더 공약도 매한가지다. 그나마 가장 구체적인 것은 윤석열 후보의 '부모급여' 정도다. 윤 후보는 출산 뒤 부모에게 1년간 매월 100만 원씩 주겠다며 소요예산을 '7조2,000억 원'이라 해뒀다. 하지만 구체적 재원 조달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재정지출시기 조정' '재정지출 구조조정' 같은 표현의 반복뿐이다.

전문가들도 후보들의 모든 공약에 대해 재원 조달 방법까지 제시하긴 힘들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예상치라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령 이재명 후보는 피임과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면서 구체적 비용은 밝히지 않았다. 보건사회연구원 자료만 봐도 약 34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추산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인지예산 전문 연구자인 이택면 여정연 성주류화지식혁신본부장은 "아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지기 전이고 부처에서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 등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후보들이 모든 예산을 정확하게 내놓으라는 뜻은 아니다"라며 "파격적 지원을 약속한다면, 기존 수치나 자료를 토대로 재정 소요 예상치를 대략적으로라도 밝혀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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