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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언덕마다 정자와 누각… 정철의 ‘성산별곡’ 바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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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 아니 나오시는가.” 조선 명종 15년(1560)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歌辭) ‘성산별곡’의 첫머리다.
성산은 지금의 담양군 지곡리 일대를 일컫는다. 조선 초기에 등장한 가사가 정철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만개했다는 의미를 내세워 담양군은 남면이었던 지명을 가사문학면으로 바꾸었다. 1976년 완공된 광주호 주변의 산자락에 성산별곡을 지은 식영정을 비롯해 소쇄원, 환벽당, 독수정 등이 흩어져 있다.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선비들이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그윽하게 자연을 즐기던 곳이었다.
식영정(息影亭)은 김성원이 담양부사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본인은 바로 아래에 자신의 호와 명칭이 같은 서하당(棲霞堂)을 짓고 시문을 논했다. 그가 교유한 당대의 인물로는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장인 임억령을 비롯해 고경명·정철과 친분이 두터워 네 사람은 ‘성산사선(星山四仙)’으로 일컫는다.
성산별곡은 바로 이곳 성산마을(별뫼마을)의 풍경과 서하당·식영정을 중심으로 한 사계절의 변화를 읊으면서, 누각을 세운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을 칭송한 노래다. 매화와 복숭아 꽃 날리는 무릉도원, 신선한 바람에 묻어 오는 연꽃 향, 오동나무 가지 사이 달밤의 정취, 눈보라 속 은밀한 설경에서 은둔 선비가 누린 성산의 자연을 엿볼 수 있다.
식영정은 근래 들어 그림자도 쉬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 해석하지만, 좀 더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자 제물편에 그림자 우화가 있다.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바보가 등장한다.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사라질 텐데, 그는 그림자를 떨쳐내려 발버둥치다 끝내 쓰러지고 만다. 이야기 속 그림자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식영정은 세속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에 편안하게 기대는 장소다.
겨울 끝자락의 식영정은 화사함과 거리가 있지만 무작정 삭막한 것도 아니다. 한낮의 볕이 따스한 서하당에서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면 식영정이다. 건물 뒤편 곧게 선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잡는다. 조그만 정자 마루에 걸터앉으면 발처럼 간격을 두고 자란 소나무 가지 사이로 광주호의 시린 물빛이 보인다.
댐이 들어서기 전 정자 아래로 흐르던 강물을 김성원과 정철은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다고 한다. 수면에 떨어진 배롱나무 붉은 꽃송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울이 연상된다. 낚싯대 드리우던 조대(釣臺), 가마우지 쉼터인 노자암(鸕鹚巖), 들풀 우거진 모래톱 방초주(芳草洲) 등 멋들어진 풍경은 자미탄과 함께 모두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시대에 따라 승경도 변한다. 아기자기한 여울 대신 잔잔하고 푸른 호수와 습지도 성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환벽당은 작은 하천(증암천)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인접해 있다. 담양이 아니라 광주 북구 충효동이지만, 불과 700m가량 떨어져 있으니 행정구역으로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 환벽당은 사촌(沙村) 김윤제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다. 후학의 앞자리에 정철이 있다. 그는 환벽당에서 10여 년간 시문학을 익히며 당대의 학자들과 교유했다.
정철은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누이 둘이 왕족과 결혼해 스스럼없이 궁궐에 드나들 정도로 잘나가던 집안은 을사사화로 격랑에 휩쓸린다. 송강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했다. 세파에 지친 부친은 1551년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담양으로 이주했다. 이때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가 정철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문하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철이 순천에 은거 중인 둘째 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증암천 용소에서 목욕하다가 김윤제의 눈에 띄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뒤에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한다.
환벽당에서 수학하는 동안 정철은 김윤제와 연이 깊은 당대의 석학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식영정의 주인 김성원, 임진왜란 의병장인 고경명과도 동문수학했다. 김성원은 김윤제의 조카다.
환벽(環璧)은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고 있다는 뜻이다. 정자는 사촌이 태어난 충효마을 뒤쪽 낮은 언덕에 자리 잡았다. 봉분처럼 둥그스름한 산봉우리에는 소나무가 빼곡해 이름처럼 사시사철 푸르름에 덮여 있다.
봉우리 넘어는 1970년대 댐 건설로 만들어진 광주호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상류 습지는 광주호 호수생태원으로 단장됐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습지에 덱 산책로가 깔렸고, 호숫가에는 전망대도 세웠다. 일부 구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서서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 한두 시간 여유롭게 호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생태원 입구인 충효동 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드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세 그루가 전부인데, 여러 방향으로 굵은 가지가 휘어져 자체로 하나의 숲이다. 마을에서는 김덕령 나무라고도 부른다. 숲 뒤에 이 마을 출신 의병장 김덕령의 사당이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팔도 의병 총사령관에 오르기도 했지만 말년에 무고로 투옥돼 옥사한다. 김덕령은 식영정 주인 김성한의 조카다.
송강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는 송강정은 식영정에서 약 10㎞ 떨어진 고서면에 있다. 그의 호처럼 실개천이 내려다보이고, 소나무 숲이 운치 있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고속도로와 왕복 4차선 국도가 정자가 위치한 산자락을 3면에서 가로지르고 있어 조용한 정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송순의 면앙정도 인근에 있지만 역시 홀로 떨어져 있어서 답사 목적이 아니면 가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식영정에서 불과 1.4㎞ 떨어진 곳에 소쇄원이 있다. 자연과 인공의 미가 조화를 이룬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조광조가 유배되자 그의 제자였던 양산보가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별서정원이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면앙정 송순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대나무 숲이 터널을 이룬 입구를 통과하면 양산보의 별세계가 펼쳐진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사다리꼴로 꾸며져 있다. 황토와 돌로 만들어진 담장인 애양단과 오곡문을 통과하면 사적 공간인 제월당, 손님을 맞이하는 광풍각이 위아래로 자리 잡았다. 굳이 필요가 없는 담장으로 분리돼 있다. 건물의 기능을 구분하는 장치로 ‘헛담’이라 부른다.
주변에는 대나무를 비롯해 매화, 단풍, 소나무, 배롱나무 등이 심겨 있다.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를 상징하는 나무들이다. 무릉도원을 상징하는 복숭아나무도 있다. 모두 하서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48영(詠)’에 등장한다.
제3영 ‘위암전류(危巖展流)’는 소쇄원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흐르는 물은 바위를 씻어 내리고, 하나의 돌이 개울에 가득하네. 가운데는 잘 다듬어졌으니, 경사진 절벽은 하늘의 작품이로다.” 김인후는 양산보와 사돈지간이다.
환벽당과 식영정이 정철을 상징하는 유적이라면, 소쇄원은 당대 호남을 대표하는 쟁쟁한 학자들이 모여 시와 서화를 즐기고 학문과 세상을 논하던 장이었다. 제월당에는 김인후뿐만 아니라 고경명, 김성원, 정철, 송순, 기대승의 글도 걸려 있다. 주인의 인품이 훌륭하고 경관까지 빼어나니 자연히 인물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이즈음 소쇄원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대나무다. 입구를 비롯해 계곡 아래쪽에도 대나무가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볕이 따사로운 제월당이나 광풍루 마루에 앉으면 대숲에 이는 바람이 신선하고, 황토 담장을 걸으면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잔잔하다. 넓지 않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정원이다.
소쇄원에서 또 멀지 않은 곳에 독수정원림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나라가 망하자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와 주변 숲이다. 독수정은 이태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은둔 선비의 고결함을 상징한다. 정자는 1972년 새로 지어 기념물로 지정돼지 못했고, 대신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서어나무 등 주변 노거수가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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