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꽝스러운데 진심… ‘광주폴리’ 따라가면 도시가 보인다

입력
2022.02.22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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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도심 문화여행, 광주폴리 투어

광주독립영화관 건물 옥상의 광주폴리 작품 '뷰폴리'. 무등산이 보이는 대표적인 사진 명소지만 동절기에는 옥상으로 가는 문을 닫는다. 3월에 재개방한다.

광주독립영화관 건물 옥상의 광주폴리 작품 '뷰폴리'. 무등산이 보이는 대표적인 사진 명소지만 동절기에는 옥상으로 가는 문을 닫는다. 3월에 재개방한다.

물결처럼 가로수 사이를 흐르는 철제 구조물, 버스정류장 옆에 하늘 높이 치솟은 쇠기둥, 차량 바퀴에 무심히 짓눌리는 커다란 맨홀 뚜껑, 광주 도심을 걷다 보면 정체를 알기 어려운 여러 구조물을 만난다. ‘광주폴리’다. 폴리(folly)의 사전적 의미는 ‘어리석은 행동’이나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그러나 광주폴리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진심’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설치미술 작가들이 도시의 역사를 재해석한 후, 장소를 고르고 골라 설치했다.

광주폴리는 2011년 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기획해 현재 4차까지 진행됐다. 전체 30개 작품 중 동구에 20개가 몰려 있다. 광주 동구는 다른 광역시의 중구에 해당한다. 광주폴리도 흔적 없이 사라진 광주읍성의 자취를 더듬는다. 작품을 찾다 보면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마주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도심 대로와 골목을 들락날락하는 동선이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하 4층 구조지만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하 4층 구조지만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자연 채광 설계로 그림자가 작품이 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부. 매일 4회 건물 투어를 진행한다.

자연 채광 설계로 그림자가 작품이 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부. 매일 4회 건물 투어를 진행한다.

옛 전남도청 일대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들어섰다.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넓은 부지에 도서관과 공연장, 전시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도로에서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남겨둔 도청 건물만 보이지만 실제는 지하 4층 구조다. 그럼에도 ‘빛의 숲’이라는 콘셉트로 설계해 땅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루 4회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 아시아문화광장(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을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고, 인원이 비면 현장 신청도 받는다. 투어는 물론 전시 관람도 무료다.

광주독립영화관 옥상의 '뷰폴리'. 'CHANGE'는 광고판이 아니라 손으로 돌려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체험 작품이다.

광주독립영화관 옥상의 '뷰폴리'. 'CHANGE'는 광고판이 아니라 손으로 돌려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체험 작품이다.


폴리는 ACC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시각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광주독립영화관 건물 옥상의 ‘뷰폴리’다. 건축가 문훈과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그룹 리얼리티즈 유나이티드(realities : united)의 공동 작품이다. 아래서 보면 ‘CHANGE’ 글자가 대형 광고판처럼 보이지만, 위로 올라가면 뒤편에 분홍과 노랑이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철제 구조물이 나타난다. 그 끝에 서면 무등산 정상이 보이는데, 바로 앞 대형 건물이 절반을 가리고 있어 아쉽다. ‘CHANGE’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 실제 철판을 돌리며 색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체험 작품이다. 아쉽게도 동절기에는 옥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3월 중 다시 개방할 예정이다.

황금로 골목의 '기억의 현재화'. 커다란 맨홀 뚜껑 모양에 옛 광주읍성을 그려 놓았다.

황금로 골목의 '기억의 현재화'. 커다란 맨홀 뚜껑 모양에 옛 광주읍성을 그려 놓았다.


서석초등학교 앞의 'I LOVE STREET'. 바닥에 디자인한 글자에 트램펄린이 숨어 있다.

서석초등학교 앞의 'I LOVE STREET'. 바닥에 디자인한 글자에 트램펄린이 숨어 있다.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을 활용한 ‘뻔뻔폴리(Fun Pun Folly)’.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작품이 보인다.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을 활용한 ‘뻔뻔폴리(Fun Pun Folly)’.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작품이 보인다.


광주 대성학원 앞 '잠망경과 정자'. 실제 높이 솟은 쇳대를 통해 도심 풍경을 볼 수 있다.

광주 대성학원 앞 '잠망경과 정자'. 실제 높이 솟은 쇳대를 통해 도심 풍경을 볼 수 있다.


물결처럼 가로수를 휘감고 있는 '소통의 오두막'.

물결처럼 가로수를 휘감고 있는 '소통의 오두막'.


동구 황금로 골목 사거리의 ‘기억의 현재화(조성룡 작)’는 흔적 없이 사라진 광주읍성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바닥에 대형 맨홀 뚜껑처럼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읍성의 윤곽을 새겼다. 자동차와 무수한 발길이 지나지만, 폴리 작품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금로는 성벽의 흔적을 따라 옛 서문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서석초등학교 정문의 ‘I LOVE STREET(위니 마스 작)’도 눈길을 끈다. 영문으로 ‘I LOVE’를 바닥에 새기고, 다음 칸은 칠판처럼 비워 놓았다. 사랑의 대상은 각자의 몫이다. 함께 설치한 노란 계단도 작품의 한 부분이다. ‘V’자 안에 3개의 트램펄린이 숨겨져 있다. 실제 재미있게 뛸 수 있는데 역시 아는 사람이 드물다. 1930년대에 지어진 서석초등학교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붉은 벽돌 건물과 교정의 히말라야시더 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을 활용한 ‘소통의 문’ ‘무한의 빛’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뻔뻔폴리(Fun Pun Folly)’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하학적 빛의 행렬이 나타나거나, 나 홀로 미디어 아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등장한다.

손으로 그린 포스터가 걸려 있는 광주극장. 내부 전시물을 보면 영화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손으로 그린 포스터가 걸려 있는 광주극장. 내부 전시물을 보면 영화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광주 K-POP 스타의 거리’에 광주 출신 연예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진열돼 있다.

‘광주 K-POP 스타의 거리’에 광주 출신 연예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진열돼 있다.


폴리를 따라가면 도심의 오래된 풍경과 미래상도 만난다. 1934년 설립된 광주극장 외벽에는 지금도 손으로 직접 그린 영화포스터가 붙어 있다. 스크린이 하나뿐인 단관극장으로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내부에 걸린 옛날 사진이며 포스터를 보면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영화 아닌 ‘극장 구경’이 쏠쏠하다. 인근에는 ‘광주 K-POP 스타의 거리’도 있다. 광주 출신 연예인의 핸드프린팅과 피규어 등을 볼 수 있다.

지도만 보고 폴리 작품을 찾아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광주폴리 홈페이지 (gwangjufolly.org)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절차가 까다롭다. 최소 5일 전, 5명 이상 신청해야 하고, 담당자와 협의한 후 맞춤 투어를 진행한다. ‘동구예술여행센터(궁동 54-3)’를 방문하면 폴리 지도와 함께 대략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광주=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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