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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쟁 후에'는 무엇을 남겼나

입력
2022.02.22 04:30
25면
연극 'After the War(전쟁 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연극 'After the War(전쟁 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전쟁의 상흔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깊게 드리워,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예전 삶으로의 복귀를 불가능하게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국제 공동 창·제작사업 첫 번째 결과물로 공개한 'After the War(전쟁 후에)'는 아시아의 전쟁과 항쟁, 치유와 화해의 성찰을 음악과 몸짓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시아의 문화자원에서 영감을 얻은 창의적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해외공연단체와 협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였다.

참여한 공연단체는 세계적 거장 유제니오 바르바가 창단한 덴마크 북유럽연극연구소-오딘극단(이하 오딘극단)이다. 오딘극단의 리자베스 마리 리벡 방케와 우리나라 이동일(유라시안 씨어터 인스티튜트)이 공동 연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가 공동 제작사로 참여, '아시아의 달'이라는 다국적 퍼포먼스 그룹을 구성해 무대에 올렸다.

'전쟁 후에'는 베트남이나 광주에서 자행된 폭력뿐만 아니라, 20세기 전반에 걸쳐 특히 아시아 전역에서 자행된 모든 종류의 권력형 억압과 항거를 '전쟁'으로 다루고 있다. 전쟁 후 어느 시점에서, 전쟁으로 희생되었던 혼령들에 대한 한 판의 장대한 씻김굿 형식을 취한다. 처용무에 기반한 전통 제의의 틀 안에서, 전쟁의 상처들을 보듬고자 하는 프롤로그에 이어, 희생되었던 원혼들이 소환되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혼돈, 그 기억의 조각들이 무대 위에 아로새겨진다. 전쟁의 실제 역사적 서사 대신, 역사 속에서 거듭되는 반복으로 축적되어온 전쟁들의 폭력성이 물리적 현상으로 구현된다. 상상 속에 더욱 커 가는 두려움, 그리고 삶보다는 죽음을 택하도록 하는 전장의 잔혹을 함께 체감하면서, 관객들은 무엇이 전쟁을 반복하게 하는 것일까, 전쟁을 통한 공포와 그 잔혹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곱씹게 된다.

극의 종반, 무구한 어린 생명들의 학살 장면 끝자락에서 샤먼은 드디어 위무하듯 말한다. "집에 가자!" 그들의 집, 아니 우리들의 집은 어디일까. 기억 속의 집으로 되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원혼들은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황폐한 전쟁의 이미지들 그리고 무대를 지켜보는 동양과 서양의 시선들을 투사하였던 두 개의 스크린 위에, 이 시점 무대를 가로지르는 생명수의 강물로부터 '생명의 나무'가 각기 솟구쳐 오른다. 스러져간 생명들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전통 악기의 연주와 함께 다양한 소리와 가락, 동서양 배우들의 자발적인 신체 표현과 다국적 언어들, 그리고 영상 모두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충돌하기보다 공존하며 공연을 이어나갔다. '아시아의 달' 퍼포먼스 그룹이 보다 호소력 있는 무대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이화원 상명대 교수·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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