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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다 아는 걸 국가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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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국가 간의 적대감을 발현하는 정치적 행위라면, 올림픽은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국가를 편 가르는 문화적 방식이다. 올림픽과 국가주의라는 해묵은 담론은 2022년 베이징에서도 기승을 부렸다. 미국과 대서양 동맹국, 일본, 인도 등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해 국제정치의 격돌 무대가 되어버린 베이징에서 국가주의 논란을 더욱 부추긴 선수는 에일린 구(Eileen Gu)였다.
중국명 구아이링(谷愛凌). 그녀는 자신의 이중국적 여부에 대해 끝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이 내세우는 매력자본과 문화굴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유는 미국에서 누리고 특권은 중국에서 챙기는 그녀의 이중 정체성을 놓고 십자포화를 퍼부은 건 주로 미국 언론들이었다.
그러나 스포츠 스타들의 귀화 행렬이 베이징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18년 러시아에서 20년 만에 월드컵을 들어올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승 비결도 귀화였다. 당시 프랑스 국가대표 중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출신의 자녀 비율은 87%. 인종적 의미에서 프랑스인은 단 3명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 개최 당시부터 구식민지 출신 선수들의 귀화전략을 통해 국제대회 성적을 관리해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시티 수비수로 유명한 에므리크 라포르테는 반대의 경우. 당시 FIFA 랭킹 2위의 프랑스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지만 A매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랭킹 6위의 스페인으로 귀화했다. 프랑스 청소년대표로만 51경기를 뛰었던 라포르테의 스페인행에 프랑스 축구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중앙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리를 차지해 유로2020에서 4강 무대에 올랐다. 라포르테의 모국이었던 프랑스는 16강 탈락.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1년 도입된 우수인재 특별귀화 제도에 따라 30명 넘는 해외 스포츠 스타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물론 그중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도 있다. 미국의 흑인 농구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특별귀화 후 한국인 라건아(羅健兒)로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에일린 구의 어머니가 중국인이고 에므리크 라포르테에게 스페인이 할아버지의 나라였다면, 라건아의 가계(家系)에서 한국과의 인연은 찾아볼 수 없다. 라틀리프가 한국을 선택하도록 움직인 건 오직 '국가대표'라는 명예였다.
2030세대는 명예는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충성이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베이징에서 한국에 첫 번째 메달을 안긴 김민석을 울컥하게 만든 건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 '모모'였고, 스케이트도 잘 타는 유튜버 '꽉잡아 윤기'는 시상대에서 다이너마이트 댄스를 추었다. 마이크를 들이대면 대통령 각하 운운했던 국가주의 세대들이 얼마나 구리게 보였을지를 우리는 이제 알았다. 사실 우리는 4년 전 평창에서 이미 알았어야 했다. 정부가 남북 단일팀이라는 목표를 앞세웠을 때, 피땀 어린 개인의 성취를 국가의 이름으로 빼앗으려던 시도를 이들은 알았지만 국가는 몰랐던 것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스키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가 은메달을 딴 우크라이나 동료를 먼저 끌어안은 장면을 꼽을 것이다.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라는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을 이들은 알았지만 국가는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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