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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강' 못 건넌 후보들... 너도나도 "정시 확대"만 외친다

입력
2022.02.21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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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공약, 검증한다]
<5> 교육: 공정한 대입, 어느 후보가 제시하나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시모집을 확대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공통적으로 부르짖는 대입 공약이다. 이들 모두 시대의 화두인 '공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주요 후보 중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 예외다.

교육계에선 정시모집 확대 공약을 두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다는 비판이 많다. 2025년 전면시행을 목표로 하는 고교학점제가 정시 축소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 취지는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재구성한 뒤 이를 대학 전공 선택까지 연결시키자는 것이다. 이 취지를 살리자면 '학생부종합전형(학종)+면접'으로 선발하는 수시모집이 지금보다 훨씬 확대되고 다양화돼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을 늘리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눈여겨 볼 건 고교학점제 도입을 선언하고 추진한 문재인 정부가 정작 정시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조국의 강'이 놓여 있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해 수시모집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폭발하자, 화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부랴부랴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확대를 뼈대로 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놨다. 이를 두고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바꾸지 않았다. 대선 후보들도 '조국의 강'이 두려운 나머지 여기에 편승만 하려 할 뿐, 더 진전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윤석열 "정시 확대", 안철수 "수시 폐지"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년 3대 공정정책'을 내놓으면서 그중 하나로 '대입 정시 비율 조정'을 약속했다. 수시비중이 과도한 학교와 학과의 정시 비중을 충분히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지난달 11일 민주당 선대위 교육전환위원회가 발표한 '교육 8대 공약'에도 수시·정시 비율을 조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 지난 14일 발표한 교육 공약에 구체적인 대입 관련 정책은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 정책본부장이 "큰 방향에서는 정시 확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해 말 국민의힘 경선 당시에도 정시 비율 확대를 언급했다.

안철수 후보는 아예 수시 폐지를 약속했다. 그만큼 정시확대 내용도 다른 후보에 비해 또렷하다. 대입 일반전형을 80%까지 확대하되 일반전형의 절반은 '수능 100% 반영', 나머지 절반은 '수능과 내신 각각 50%씩 반영'하는 전형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남는 20%는 특별전형으로 사회적 배려계층과 특기자전형에 각각 10%씩 할당한다.

'조국의 강' 감안하면 이해는 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는 본다. 조국 사태의 파장이 워낙 컸던 데다, 수시의 공정성은 공격당하기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을 분석한 결과, 수시모집 비율은 78%, 정시모집 비율은 22% 수준이다.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 서울권 대학들은 정시모집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는 조금 높은 39.2%다. 조국 사태 이후 교육부가 서울권 대학들에 정시모집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압박한 결과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2학년도 정시지원전략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2학년도 정시지원전략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현재 대입 정책이 너무 수시에 쏠려 있는 건 맞다"며 "정시 제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정시 비율이 좀 높아진다는 측면에서는 찬성"이라고 했다. 이어 "수시에 실패하거나 학교 내신이 좀 안 좋은 학생들에게 대입의 문이 너무 좁아서 결과적으로 우리 학생들을 너무 재수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도 "수시의 공정성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안 나온 상태에서 그나마 정시는 공정하다는 평가라도 받기에 정시 확대가 나름의 대안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고교학점제 도입되면 '정시 확대'는 4년짜리 정책

문제는 정시확대를 고교학점제와 어떻게 짜맞추느냐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 개개인의 선택과 진로를 중요시하는 다양성'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들마다 여러 요인을 감안한 별개의 수업을 듣게 되는데, 이는 전국 단위 공통 지필고사인 수능 점수를 토대로 선발하는 정시와는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후보도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후보별 대입 정책 주요 공약 및 평가. 그래픽=송정근 기자

대선후보별 대입 정책 주요 공약 및 평가. 그래픽=송정근 기자


고교학점제는 현재 중학년 1학년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25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들이 대입을 치르는 2028학년부터는 대입 정책이 고교학점제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2028학년 대입부터는 정시 확대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올해 대통령에 당선돼도 2023학년도 대입을 당장 만질 순 없다. 빨리 움직여 2024학년 대입부터 고친다 해도 2024~2027학년 '4년짜리 정책'에 그치는 셈이다.

송 교수는 "정시를 확대한다면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어떤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지금 후보들이 보여줘야 한다"며 "대입 제도는 아주 잘 만들어 놔도 2~3년 후에는 조금씩이라도 손봐야 하는데 지금처럼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시 확대가 반드시 공정은 아니다"는 반론

가장 근본적으로는 일제고사 한 번 치르는 식으로 학생을 뽑는 게 과연 공정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실 1994학년 수능이 도입된 것도 '제각각의 다양한 학생을 다양한 기준에 따라 뽑아서 키워야지, 시험성적 하나로만 재단해서 안된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기회의 공정'이 '결과의 공정'까지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정시보다는 수시가 더 낫다.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건국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2022 대입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 참여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시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자료집을 살피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건국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2022 대입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 참여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시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자료집을 살피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실제 소득이 높을수록, 또 수도권에 거주할수록 수능에 유리하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21년 서울대 신입생 최종선발 결과'에 따르면 정시 합격자 가운데 78.4%가 수도권 출신이었다. 반면 학종전형 합격생 가운데 비수도권과 수도권 비율은 각각 44.2%와 55.8%였다.

비수도권 합격생으로만 봤을 때 학종전형으로 뽑은 경우 수능전형으로 뽑았을 때보다 합격할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았던 것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구본창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교육과 관련한 사회 문화 제도가 이미 사회적 약자가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데 정시만 확대해서 시험 잘 보면 원하는 대학 간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변별력 서커스'가 되어버린 수능,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그럼에도 정시를 확대해야겠다면 수능 제도 개편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 불거진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논란은 수능 제도 개편의 상징과 같은 사건이다. 우선 세계적 석학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렵다고 하는 문제를 고등학생에게 풀도록 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다. 또 하나 상징적인 지점은 그렇게나 어려웠음에도 정작 이 문제의 정답률이 무려 25%에 달함으로써 정답률이 5%를 밑도는 '킬러 문항' 축에도 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수능은 이제 학생들과 벌이는 '변별력 서커스'가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으로 수능을 만든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조차 수능 폐지론을 주장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송파구 잠신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의 생명과학Ⅱ 점수가 공란으로 비워둔 채 배부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송파구 잠신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의 생명과학Ⅱ 점수가 공란으로 비워둔 채 배부되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정시 확대는 물론, 더 나아가 수시 폐지까지 주장한다면 정시를 뒷받침하는 수능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설명한 이는 이재명 후보뿐이다. 그나마 이 후보가 내놓은 대답도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없애겠다"거나 "출제와 검토 과정에 교사 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대학생이 문항 검토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수준의 언급뿐이다.

구본창 소장은 "학교 수업만으로도 풀 수 있도록 사고력 기반의 논술 수능을 만들고 거기에 맞게 교육과정 전반을 개편하겠다거나 하는 식의 큰 그림을 그려 보이든가, 아니면 어쨌든 고치겠다는 선언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수능 2회 실시?... "이미 실패한 정책"

안철수 후보는 정시 확대와 더불어 수능 연 2회 실시를 공약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정책에 야박한 점수를 줬다.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수능은 도입 첫해였던 1994학년도에 유일하게 8월과 11월, 두 차례 실시됐다. 1차 시험에서 실패한 수험생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1차와 2차 중 더 유리한 성적을 선택해 대학에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훨씬 더 어렵게 출제된 2차 수능을 제출한 수험생은 거의 없었고, 이듬해부터 수능은 연 1회 시행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후로도 간간이 수능을 연 2회 치르자는 의견이 언급된 적이 있지만 두 시험의 난이도를 동일하게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검토된 적이 없다. 구 소장은 "문제은행식 출제로 수능 수준을 일정하게 관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여러 차례 시험 보는 게 의미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만 가중된다"고 반대했다. 나머지 전문가들도 "두 시험의 난이도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신선하지 못한 정책"(임성호 대표) "현실성이 떨어진다"(송기창 교수)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수능의 자격고사화, 낮은 공교육 신뢰도는?

대입 정책과 수능 제도 개편과 관련해 세 후보와 가장 차별화된 공약을 내놓은 건 심상정 후보다.

심 후보는 수능을 절대 평가(1단계)로 바꾸고 궁극적으로 자격고사화(2단계)하자는 '단계적 자격고사화론'을 들고 나왔다. 대입 정책에 대해서도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전형을 설계하겠다며 △고등학교 전 과목 절대평가 및 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을 학생부 전형으로 개편 △내신 성적과 교사의 정성적 기록만 반영 △기회균등·지역균형·지역인재 등 사회통합전형 확대 등을 약속했다.

정책의 철학이나 일관성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문제는 공교육에 대한 일반 국민의 낮은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다.

구 소장은 "수능 영향력을 낮추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면서 공교육의 평가를 기반으로 한 대입으로 가겠다는 측면에서 가장 일관성이 있는 정책"이라면서도 "공교육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다는 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송 교수 역시 "논리적으로 보면 틀린 건 없지만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 학생을 뽑아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 보면 변별력이 없으니 또 뭔가를 가지고 변별을 해내야 할 것 아니냐"며 "내신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신뢰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선언적' 의미는 있지만 '콘텐츠'는 부족하다"고 했다.

윤태석 기자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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