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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노동 이슈... 대신 치열해진 '일자리 창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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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19는 국민의 안전뿐 아니라 일자리 안정까지 크게 위협했다. 디지털·비대면 물결이 가속화되며 일자리 지형도에 큰 변화가 생겼고, 비정규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일자리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이른바 '비정형 노동자'가 급증하며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보호 대책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20대 대선에서 이런 이슈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후보들은 가급적 노동 이슈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하고, 주요 후보 중 2명(윤석열·안철수)은 아예 노동 관련 정책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한 대통령이 당선됐던 5년 전 대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자리 창출 공약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방법론은 다르지만 공공부문과 민간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한목소리로 제시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구체적인 목표치까지 제시하며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노동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대책보다 경제논리에 입각한 일자리 창출로 관심사가 이동한 것이다.
노동분야 전문가들의 대선 공약에 대한 평가도 차가운 편이다. 전반적으로 일자리·노동 관련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구호나 총론은 있을지언정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방법론에서 허점을 드러내는 공약이 많다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노동시장의 산적한 과제들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각 정당 선거캠프의 정책을 종합해보면 20대 대선 노동 공약 가운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다. 배달라이더 등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 노동법 보호 밖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공약이다. 19대 대선에는 없었던 공약으로 달라진 시대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별도의 노동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을 임기 초에 제정하겠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각론에선 차이가 있다. 심 후보는 기존 노동법 체계를 뜯어 고치는 '신노동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일하는 시민에게 일할 권리와 여가의 권리, 단결할 권리라는 '신노동3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기존 노동법은 그대로 두고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던 노동자들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고 보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별도 입법을 할 계획이다. 윤 후보의 방안은 이 후보 공약과 유사한 방향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며 성장잠재력 위축이라는 부작용까지 우려되는 시점에 여야가 공통으로 취약노동층 권리보호 방안을 제안한 것은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노동시장의 또 다른 약자인 비정규직과 관련된 대책에선 캠프별 차이가 확연하다. 이재명 후보는 상시·지속적 업무와 생명·안전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법에 명시하겠다고 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경기도에서 1년 미만 단기 계약직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비정규직 공정임금'을 중앙행정·공공기관에 확대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심상정 후보도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평등임금'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이 후보의 공정임금과 다른 점은 정부가 아닌 기업에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 생명·안전업무에 대해서만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해야 하는 데 동의했다.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비정규직 대책보단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후보의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고용은 문재인 정부가 강조했던 공약이었지만 결국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며 "그 이유에 대한 분석과 차별화된 점이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노동정책이 지나치게 보호와 규제에 치우쳐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외국 자본의 투자를 저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개혁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노동 공약이 홀대받고 있는 것과 달리 일자리 정책은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10대 공약 중에서도 상위에 포진돼 있다. 청년 등 연령대별로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후보도 있다.
이재명 후보는 디지털·에너지·사회서비스 대전환을 통한 일자리 300만 개 조성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100만 개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창출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의 공약을 수용한 것이다. 임기 내 청년 고용률 5% 향상을 목표로 내걸었다.
윤석열 후보는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정책 1순위로 두겠다는 계획이다. 산업과 교육, 노동, 복지정책 등을 연계해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고 융합산업 분야 중심의 신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창의형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그림도 제시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기 초에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안철수 후보는 일자리 확대를 1호 공약으로 발표하며 디스플레이·이차전지·차세대 원전(SMR)·수소에너지 산업·바이오산업 등 5개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선도기업을 5개 육성해 G5 국가로 진입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해 불공정한 고용세습과 특혜채용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채용과 임금기준이 직무급제로 바뀌도록 채용문화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심상정 후보는 '그린노믹스'를 선언하며 50만 개 이상의 안정적 녹색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고 전 국민 일자리 보장제로 100만 개의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기술 숙련도를 배울 수 있는 폴리텍 대학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전략도 밝혔다.
권순원 교수는 "이 후보가 일자리를 300만 개 창출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 로드맵이 부재하다"며 "디지털 전환은 일자리 창출 기회보다 일자리 소멸 가능성이 높고,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청년 구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귀천 교수는 "노동 유연화나 민간주도 위주의 노동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제적 노동기준의 흐름을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욱래 변호사는 "특정 연령대에 집중되는 고용 정책의 개선을 도모하는 정책이 제시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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