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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대화 꺼리는 일본인... 선거철인 줄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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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몇 주 뒤로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어디를 가도 정치 이야기다. 설 귀향 때에 가족, 친척과 지지하는 후보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고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누구를 뽑겠느냐”는 질문이 넌지시 들어온다. 예전에는 선거철에 택시를 타도 이야기가 정치로 흘렀다. 요즘에야 그런 일은 많이 줄었지만, 그 대신 모두의 손아귀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스마트폰 속이 정치 토크로 시끌시끌하다. 최신 뉴스가 대선 후보에 관련한 자극적인 보도로 ‘도배’되고, 가족, 친구들과의 채팅방에 선거 관련 이슈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다양한 주제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정치 토론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습관처럼 인터넷을 종종 체크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정치에 관한 이야기만 좇은 듯한 피곤함을 느낀다. “정치에는 넌더리가 난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지만,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의 음험한 속사정을 너무 잘 알게 된 나머지 혐오하는 지경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거철만큼 한일 간 온도 차를 실감하는 때도 없다. 일본에서는 선거철 분위기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는다. 몇 년에 한번 치르는 총선이 임박해도 좀처럼 화제가 되지 않는다. 주택가 근처에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붙거나 전철역 근처에서 인쇄물을 배포하는 출마자를 마주치고 나서야 비로소 선거철이구나 하고 깨달을 정도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적인 대화를 꺼린다. 가족, 친구와 정치적인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사적 모임이나 채팅방 등에서 누군가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면 십중팔구 ‘갑분싸’다. 그러다 보니 친한 지인이라고 해도 정치적 소신을 묻는 것은 관두고 만다. 한국에서는 택시기사와도 스스럼없이 대선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친구나 가족과도 정치적 논쟁이 벌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일본인 친구들은 다들 깜짝 놀라서 눈이 둥그레진다.
일본에서 선거철 분위기가 미적지근한 것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일본은 국회에서 구성한 내각이 국정을 이끄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임기와 선출 방법이 제각각인 중의원(衆議院)과 참의원(参議院)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국회가 시민들을 대신해 최고 의사결정자인 총리를 선출한다. 총리의 재량으로 국정 운영의 중추인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일도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들쭉날쭉하다. 국회 운영에 관련한 규정이 복잡해서 일반 시민이 상황을 숙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다. 한국은 시민이 직접 투표로 권력의 수장을 선출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선거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여간해서는 그런 호쾌한 전개가 벌어지지 않는다. 정치판이 애초에 폐쇄적으로 짜여졌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로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각제는 유일한 입법 기관인 국회에 큰 힘을 몰아주는 정치 제도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는 어떻게 보자면 한국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철에도 시민사회의 분위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이 매우 낮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4년 만의 중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연령별 투표율을 보면 10대(43%)와 20대(36%) 투표율이 60대(72%)와 70대(62%)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1960년대에 교육 행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애매한 기준으로 정치적 담론을 터부시한 조치가 시민 의식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학교나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 정치는 일절 거론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치 참여나 시민 의식에 대한 교육이 피상적 수준에서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5년부터 투표 연령이 18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어려서부터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단 한번도 정치 담론을 접한 적이 없는 10대들이다. 선거권이 생겼다고 해서 없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생겨나겠는가.
실제로 일본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현실 정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불신도 높은 편이다. 그들에게는 소셜 미디어 등에서 기업이나 상업적 주체가 발신하는 광고나 프로모션이 훨씬 친근하고 진실에 가깝다. 정치가의 주장은 권력욕과 불온한 의도를 숨기고 있지만, 광고 문구는 적어도 물건을 팔겠다는 의도가 분명한 만큼 솔직하다는 것이다. 한편, “어차피 기성 세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치판에 젊은이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무기력함을 토로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어떤 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고령화가 상당히 진전된 일본 사회는 젊은이보다 노인층 인구가 훨씬 많기 때문에, 연령대 투표율이 동률이라고 해도 고령층의 의견이 투표 결과에 더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로서는 학업이나 아르바이트 등 바쁜 일상을 포기하면서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만한 동기 부여가 약하다. 한국에서는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 성 차별 해소 방안 등 소위 ‘이대남’, ‘이대녀’들의 어젠다가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정치판에서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젊은이들이 체감하는 사회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판에 전달할 길도, 그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기성 정치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젊은이들 사이에 정치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젊은 층의 정치 참여를 막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문제에 대한 공공연한 논쟁을 피하는 분위기는 기성 세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반성도 터져 나왔다. 다양한 주체가 느끼는 삶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은 실로 쉽지 않는 과정이다. 다른 의견이 맞부딪히고 서로 반목하는 혼란스러움을 감수하면서,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신적 화합과 일치 단결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그 결과 젊은이나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특히 벽이 높은 정치 지형이 만들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일본과 비교하자면 한국 시민들이 정치에 쏟는 관심은 매우 높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정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에서는 시민들의 높은 정치 의식에 합격점을 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정치 담론장이 건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거꾸로 매사를 정파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도한 정치화 (apoliticization)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은 정치가나 사회 지도자 층이 앞장서서 코로나 방역 대책과 같은 전문적인 사안을 왜곡하는가 하면, 당파적 의도로 객관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여론 조사가 쏟아져 나오는 등, 정치적이어서는 안 되는 사안에까지 무분별하게 정치적 해석이 개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래서야 시민들이 개인적 기준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무기력이 민주주의를 그르치는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정반대로 정치 담론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매사를 정치로 재단하는 편협함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것을 또 한번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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