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은 많으나 비룡은 보이지 않고

입력
2022.02.16 19:00
25면

편집자주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지난해 11월 25일 '2021 코라시아 포럼'이 열린 서울 중구 웨스틴 호텔에서 안철수(왼쪽부터) 국민의당, 윤석열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해 11월 25일 '2021 코라시아 포럼'이 열린 서울 중구 웨스틴 호텔에서 안철수(왼쪽부터) 국민의당, 윤석열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비룡(飛龍)이 되는 것은 어렵다.

주역(周易) 64괘의 첫 번째 건괘(乾卦)는 용이 잠겨 있고(潛), 나타나고(見), 조심하고(惕), 뛰어오르고(躍), 날고(飛). 후회하는(亢) 여섯 단계를 보여준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해동 육룡(六龍)이 나르샤’는 건괘에서 비롯됐다.

잠룡물용(潛龍勿用), ‘물속에 있는 용은 쓰지 말라.’

건괘의 초구(初九)는 이렇게 시작한다.

건괘는 초구(맨 아래)부터 상구(上九, 맨 위)까지 여섯 효(爻)가 모두 양효(-)로만 구성돼 있다.

건괘는 본래 ‘하늘의 양기(陽氣)’를 용을 상징 형상으로 취해 만물의 변화 발전 과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에 용은 권력의 신성성과 권위 등을 상징했다. 왕의 절대권력을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용에 빗댄 것이다. 임금의 얼굴을 높여 용안(龍顔), 옷을 용포(龍袍), 앉는 자리를 용상(龍床) 등이라 부르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되기 이전의 세자를 잠룡이라고 했다. 현대에서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를 ‘잠룡’이라 부르는 것도 건괘에서 유래한다. 건괘는 ‘모든 사람의 우두머리’라는 뜻도 포함한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하늘에서 대지를 뒤덮고 번개와 비를 뿌리는 먹구름을 신격화한 것이 용이다”라고 해석했다.

잠룡은 물속에 잠겨서 힘을 기르는 용이다. 잠룡은 충분히 힘을 기르면서 나갈 때를 기다려야 한다. 힘을 기르기 전에 밖에 나와서는 안 된다.

공자는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도 근심이 없고 세속에 영합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고, 명성을 구걸하지도 않는다”라고 풀이했다.

1980년대 중국의 대외 정책인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며 세상에 나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悔)가 이 뜻이다.

인생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기르기 전에 뜻을 펼치려 해서는 안 된다. 잠룡에서 잡룡(雜龍)으로 전락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다음으로 ‘현룡재전 이견대인(見龍在田 利見大人)’이다. ‘용이 지상에 나왔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말이다. 見龍의 見은 ‘볼 견’이 아니라 ‘나타날 현’으로 읽는다. 이때는 군자의 덕을 널리 베풀고 본인의 의지와 포부를 널리 알려야 한다. 특히 좋은 스승인 현인들을 만나는 것이 길하다.

세 번째 효의 척(惕)은 ‘두려워하다, 삼가다’라는 뜻이다. 용은 이제 막 들판에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인물의 출현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낮에는 온종일 쉼 없이 일하고, 밤에는 허물을 반성하며 삼가야 한다. (終日乾乾 夕惕若)

넷째는, ‘빨리 달릴 약(躍)’의 상태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공자는 이 단계를 “군자는 나가고 물러섬에 있어 시의에 맞게 행동한다. 결코 군중에서 벗어나 방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덕(德)을 쌓고 업(業)을 기르면 허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상 방심은 금물이다. 도약할 수도 있고, 다시 연못으로 빠질 수도 있다. (或躍在淵)

다섯 번째는, 용의 일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하늘을 나는(飛) 상태다. 잠룡이 가장 지향하고 동경하는 경지다.

마지막 여섯 번째 상구(上九, 맨 위)가 ‘끝까지 올라간 용은 회한만 남는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잠룡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모두 비룡이 되는 건 아니다. 見, 惕, 躍의 단계를 슬기롭게 거쳐야 한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큰일을 맡기려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苦其心志), 뼈가 끊어지는 고통을 주며(勞其筋骨),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餓其體膚), 그를 궁핍하게 만든다(空乏其身)”고 했다 이를 모두 견뎌내면 하늘이 지도자로 삼는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욥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했다.

결국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이로써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현룡에서 나온 ‘이견대인’은 비룡이 돼도 다시 강조된다.

‘비룡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

현룡이 지도자 수업이었다면 비룡은 지도자가 됐다. 비룡이 때를 만나 뜻을 펼치려면 능력 있는 인물의 조력이 있어야 한다. 친분이 아닌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지도자는 간신(姦臣)과 양신(良臣)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비룡이 되기 위해서는 군자(君子)의 덕(德)은 아니라도 수신제가(修身齊家)는 기본이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그런 비룡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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