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적폐수사' 논란에 윤석열 법·원칙 강조
'조국' 후 권력 수사 제동에 응어리 쌓인 듯
증오·보복 악순환 고리 윤석열이 끊어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한발 물러나긴 했으나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하겠다”는 발언은 진심이었으리라 본다. 비리가 있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는 건 ‘검사 출신 윤석열’에게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수십 년 동안 특수부 검사로 지내온 그에겐 대통령과 청와대가 흥분하는 모습이 되레 의아할지 모른다.
윤 후보에겐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조국 사건 이후 그는 사실상 날개 꺾인 매 신세였다. 권력 관련 수사에 제동이 걸리고 인사권 행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의 울분이 정치 참여의 동기로 작용했고, 가슴에 응어리도 맺혔을 법하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의 거친 어투와 날 선 발언에서 그런 심경이 배어 난다.
그러나 지금의 윤석열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다.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는 그의 말대로라도 국민이 자신에게 한풀이하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에 맞선 결기에서 국가를 올바로 이끌 수 있다는 자질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분열의 언어가 아닌 통합과 포용을 말해야 한다.
‘적폐 수사’는 ‘정치 보복’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가령 그가 말한 적폐 수사 대상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원전 경제성 조작, 라임ㆍ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일 것이다. 이미 수사가 끝나 재판 중인 사건들이지만 새로운 단서가 드러나면 당연히 재수사할 필요가 있다. 납득할 근거가 있다면 여론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체의 판단은 전적으로 수사기관 몫이다.
여기에 권력이 개입하면 정당한 수사가 아닌 ‘정치 보복’이 된다. 대통령에게는 수사를 지휘할 권한이 없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윤석열은 현재 권력자나 다름없다. 검찰이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리가 없다.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많은 범죄를 저질렀으니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윤 후보의 말은 그래서 심상치 않다. 만일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검찰은 이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여길 것이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 기간 ‘적폐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구속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도 있다. 그가 지휘한 수사 방식이 무리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권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렇기에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윤석열인 셈이다.
오로지 검사만 해온 윤 후보 이력은 약점이기도 하지만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의도정치를 경험해보지 않은 터라 양당 중심의 기득권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바람이 있다. 청와대 권력 축소와 능력 있는 인재 중용, 권력기관 중립성 보장 등도 기대할 만하다. 반면에 그의 오랜 검사 경력은 자신이 검찰을 가장 잘 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수 있기에 위험하다. 자신의 측근으로 알려진 검사장의 발탁을 암시한 발언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벌써 검찰 내에서 줄서기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 세계 권력자 수백 명을 연구해 최근 출간한 ‘권력의 심리학’에서 저자인 브라이언 클라스 영국 UCL 교수는 “권력자가 되면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자제력을 잃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이들에게서 나타났다고 한다. 윤 후보의 발언에서 '보복’의 냄새를 맡는 게 단순히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윤 후보는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돼 “정치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 재미는 대통령이 돼서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위해 일해서 얻는 보람이어야지 이기적이고 동정심 없고 힘을 남용해서 얻는 것이어선 안 된다. 윤 후보에게 당부하자면 ‘검사 윤석열’의 기억은 완전히 지우는 게 좋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