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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2.16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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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이 보여준 도전, 그리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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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기획은 전편 영상 협업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신문사에서는 여전히 활자 중심 사고가 지배적이지만, '딱딱하고 재미 없는 환경 의제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친숙하게 접할까'를 거듭 고민한 결과다. 한국일보 영상 캡처

한국일보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기획은 전편 영상 협업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신문사에서는 여전히 활자 중심 사고가 지배적이지만, '딱딱하고 재미 없는 환경 의제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친숙하게 접할까'를 거듭 고민한 결과다. 한국일보 영상 캡처

“작은 소모품은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시는 게 나을 거예요.”

얼마 전 무선 키보드가 고장나 애프터서비스(A/S)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중소기업이지만 전자기기 액세서리로 꽤 유명한 회사였다. 소매점에서 2만~3만 원만 내면 새 제품을 살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는데 괜한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불편을 감수하고 요청한 것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아했다. ‘왜 고쳐서까지 사용하려느냐’는 거였다. 결국 그 물건은 ‘쓰레기’가 됐고, 이제 물건을 구매할 때 가장 신경 써서 보는 점이 A/S 여부가 됐다. 자신이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끝까지 책임지고 귀하게 다루는가. 이것이야말로 생산자가 어떤 정성으로 제품을 만들었을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일상 속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언론을 고민하게 된다. 언론은 매일 같이 생산하는 뉴스를 얼마나 귀하게 다루고 있을까. 이따금 하루에도 여러 건의 기사를 쏟아내면서 과연 스스로 제기한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는지 혹은 독자가 더 궁금한 지점은 없는지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이라도 됐을까. 작금의 언론 역시, 앞서 말한 전자기기 업체처럼 ‘그 이슈는 지나갔으니 새로운 뉴스를 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라며 안내하고 있는 건 아닐까.

A/S에 임하는 태도에서 ‘언론은 문제만 제기할 뿐 해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독자들의 냉소가 얼핏 스쳤다. 언론은 얼마나 독자들에게 A/S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을까. ‘한 때 팔렸던 뉴스’를 읽은 독자들은 그 이후가 궁금하지 않을까. 물론 언론은 문제 해결을 위한 플레이어로 나설 수 없다. 윤리적이지 않거니와, 시민들이 언론에 바라는 역할도 아니다. 언론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수단은 ‘저널리즘’이어야 한다.

배달음식 주문으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 사용 실태를 취재하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한국일보 영상 캡처

배달음식 주문으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 사용 실태를 취재하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한국일보 영상 캡처

지난해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 기후대응팀과 멀티미디어부의 연중 기획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이런 맥락에서 시민들에게 ‘포장재 폐기물은 기업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오랜 기간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기업의 변화까지 후속 추적한 좋은 본보기다. 이 기획은 ‘브랜드이미지’ 등을 핑계로 과대포장을 정당화하는 기업과 생산자 사례를 집중 보도했고, 몇몇 기업이 플라스틱 포장재를 없애거나 종이로 대체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새로운 메시지를 발굴하는 방법은 ‘실험’이었다. 기자들은 마치 이공계 실험실의 연구자가 된양, 서울 한복판 빌딩 옥상 화단에 생분해 플라스틱을 묻고 3~6개월 뒤 다시 꺼내 얼마나 썩는지 살펴 봤다. 과자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자유낙하 실험도 진행했다. 비닐 포장 안의 플라스틱 쟁반(트레이)이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화려한 화장품 용기를 공업사에 가져가 반으로 갈라보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형식은 '텍스트'에 더해 ‘영상’이었다. 기자와 피디의 ‘보여 주려는’ 노력으로, 딱딱한 수치는 생생한 현상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비로소 독자들은 어려운 환경 의제가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깨닫게 됐다. “환경 의제가 재미있게 잘 읽히는 이슈는 아니잖아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예요. (기후대응팀 김현종 기자)”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이 첫 회에서 지적했던 화장품 과대 포장 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올해부터 화장품 용기에 ‘포장재 재질ㆍ구조 등급 표시’ 제도가 적용되면서,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를 한 용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환경부가 제도를 개선한 결과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이 첫 회에서 지적했던 화장품 과대 포장 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올해부터 화장품 용기에 ‘포장재 재질ㆍ구조 등급 표시’ 제도가 적용되면서,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를 한 용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환경부가 제도를 개선한 결과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세상에 울림을 주는 스물여선 편의 기사와 스물일곱 편의 영상이 나왔다. ‘기후위기와 과도한 쓰레기 배출의 책임은 소비자보다 정부와 기업에 있다’는 굵은 문제 의식을 매 기사마다 끈질기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연재 마지막 회, 그동안 보도했던 품목 중 8개를 골라 변화 여부를 점검했다(본보 2021년 12월 29일자). ‘언론은 문제 제기만 하고 끝까지 점검하지 않는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보도 A/S까지 살피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결과는 이렇다. 해태제과의 ‘홈런볼’ ‘롯데제과의 ‘카스타드’ 등 제품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사용된 ‘플라스틱 트레이’는 점차 업계에서 퇴출되는 추세다. 롯데제과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종이 소재로 대체했고, 해태제과는 올 9월 가동 예정인 공장에서 홈런볼을 트레이 없이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농심은 생생우동 제품에 한해 4, 5개 라면을 비닐로 묶는 대신 띠지로 묶음 상품을 제작한다. 파리바게뜨 등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케이크를 살 때 필수적으로 제공하는 ‘플라스틱 빵칼’ 역시 요청 시 제공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한 해 실험실 연구자나 다름없었던 이들은 올해에는 탐정으로 변신한다. 후속 시리즈 ‘그린워싱 탐정’에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해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제로웨이스트 실험실’로 제376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에서 이들의 새해 다짐을 읽는다. “몇몇 기업이 스스로 플라스틱 포장재를 덜어내는 등 실질적 변화를 보게 되어 기쁩니다. 이 같은 시도가 단지 ESG 트렌드에 따른 마케팅에 그치지 않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추적하고자 합니다. (기후대응팀 신혜정 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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