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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입력
2022.02.13 22:00
27면
©WALT 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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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Madwoman in the Attic)'(1979)에는 동화 '백설공주'에 대한 매우 특별한 해석이 등장한다.

동화는 어느 성의 창문에서 시작한다. 창 안으로 제일 먼저 물레질하는 왕비가 등장한다. 왕비는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를 흘리고 머지않아 백설처럼 새하얀 공주를 낳는다. 창의 상징이 늘 그렇듯 누군가의 시각, 관점을 나타내는데 동화에서는 왕으로 대변되는 남성이 왕비, 즉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여성의 전통적 역할인, 바느질(가사), 피(출산), 예속이 그 창 하나에 등장하는 이유다. 남성이 보기에 '제일 예쁜' 여성은 그들이 바라(보)는 대로 자기 존재를 규정하는 여성이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우습게도 왕은 이 동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절대적 권위로서의 왕의 목소리를 여성이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감옥, 판옵티콘이 그렇다. 중앙의 감시자는 모든 것을 보지만 죄수들은 감시자를 볼 수 없다. 감시자 왕은 부재하되, 감시와 규율은 시스템이 되고, 죄수들은 그 시스템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감시하는 것이다. 거울이 보기에 백설공주가 '제일 예쁜' 이유는 가부장적 미학이 원하는 여성상을 '알아서'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청순하고 희생적인 공주는 가부장사회가 유일하게 허용하는 여성상이다.

여왕이 백설공주를 죽이려는 이유는 공주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백설공주를 죽여야 여성은 종속된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독립할 수 있다. 그런데 공주는 그때마다 사냥꾼, 일곱 난쟁이 등, 남성들의 도움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예속성은 강화하고 공주는 점점 '여성의 전통적 이미지'로 복귀한다. 난쟁이의 가사를 책임지는 침모가 되고 더 나아가 왕자에게 '선물'로 주어질 '유리관의 바비인형'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부장사회가 백설공주를 보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 '제일 예쁜' 짓만 골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백설공주'는 착하면 상을 주고 나쁘면 벌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복종적 여성성을 가르치고 남성중심사회의 확대재생산을 기획하는 여성 훈련용 교과서다. 난쟁이만큼이나 왜소해진 여성 백설공주는 왕자의 선택을 받아 궁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첫째 여왕처럼 가부장적 미학이라는 이름의 창에 갇혀, 바느질하고 피를 흘리고 백설같이 '예쁜' 공주를 낳을 것이다. 왕비가 된 백설공주는 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부장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남성의 선택을 받을지, 어떻게 그들의 권력을 나누어 받을지 가르치고, 그로써 남성 중심의 왕국을 공고히 하는데 이바지하지 않을까?

에드워드 사이드는 "왜 동양인이 서구인의 관점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까?"라는 질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찾았다. 내가 보기에 페미니즘의 바람도 비슷하다. 노예나 농노가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찾듯, '백설공주' 속 검은 여왕의 바람처럼, 마음속 가부장의 거울을 깨뜨리고 왜곡된 본래의 모습, 억압된 언어와 목소리를 어떻게 되찾을지 고민하는 것…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큰 잘못일까?

페미니즘이 조롱거리가 되고 여성혐오와 차별이 대선 구호가 된 어느 날, 페미니즘의 희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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