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정치의 방조자들

입력
2022.02.10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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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페미·반중으로 집권하는 게 옳은가
선동의 정치 못 거른 야당과 주변 세력
양식 있는 연대와 지지 목소리 낼 때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10일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여가부 없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10일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여가부 없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1월 초 ‘여성가족부 폐지’ 7자 공약 이후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혐오 정치로 질주 중이다. 말에 그치지 않는다. 성범죄 무고죄 신설을 공약했고,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를 막기 위한 ‘n번방 방지법’은 검열이 우려돼 개정하겠다고 했다. 언론사의 성평등·노동 공약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고, 주 52시간·최저임금제는 “비현실적”이라며 폐지를 시사했다.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이 중국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중국인을 겨냥해 “밥상에 숟가락 얹는” 외국인 건보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건 보수가 아니다.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이다.

이쯤 되면 윤 후보가 아니라 그의 당선을 돕는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정권 교체만 되면 약자를 희생시키고 공동체를 분열시켜도 상관없는 것인가. 태극기 부대 대신 20대 남성을 지지층으로 확보했으니 보수 혁신이 이뤄진 것인가.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고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는 저 몰상식한 주장에 모두 동의한다는 말인가.

국민의힘이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채택한 시점은 사실 이준석 당대표를 배출했을 때다. 윤 후보도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한다” “건강한 페미니즘” 등 노동자·여성·외국인 비하를 드러냈지만 반페미니즘과 반중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대표의 전술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이대남을 결집시켜 당대표가 된 그는 지금 윤 후보의 성평등 공약 답변 거부를 자랑스레 페이스북에 올리고 “20대 여성의 요구는 추상적이어서 공약으로 반영할 게 없다”고 단언한다.

진정한 보수라면 이 대표가 윤 후보를 흔들었을 때가 아니라, 성차별과 혐오를 들고나왔을 때 비토했어야 했다. 그러나 권력 공백기였던 국민의힘은 30대 혐오 정치인을 걸러내지 못하고 결탁했다. 미국 공화당이 자정 기능을 잃었을 때 당선 확률 1%라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는 보수 언론을 이용해 대통령이 됐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이민자에 폭력을 용인했던 노르베르트 호퍼가 급부상하자 주요 보수 정당인 국민당이 진보 정당 후보를 지지해 혐오 세력의 집권을 저지했다. 한국의 제1야당이 이러한 자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비극적이다.

당 밖의 방조자도 있다. 언론은 성차별 현실을 가리는 정치인 발언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 이대남 공략의 위험성을 짚지 않은 채 전술적 효과만 분석하는 것은 지식인의 역할이 아니다. 몇몇 정치인과 장관 잘못을 들어 여가부 폐지가 정당하다는 칼럼은 영합의 목소리다. 반페미는 아니지만 무관심에 가까운 중장년층도 책임을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임금 청소노동자 중에서도 여성이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노동이자 젠더 문제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곧 저출산이자 젠더 문제다. 흔히 ‘헤어지자거나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일어나는 교제살인이 2020년 보도된 것만 228명에 이르는 현실이 폭력이자 젠더 문제인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10일 이 대표를 만나 “여가부가 없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고 했다. 윤미향 의원의 잘못과 여가부의 존재 이유는 별개라는 상식의 시선이자 피해자의 요구다. 선동의 정치가 엉뚱한 표적에 이대남의 분노를 집중시킬 때 해를 입을 것은 위안부 피해자, 집 없는 청소년, 아이 돌봄이 필요한 양육자, 성범죄 피해자, 성소수자, 이민자 등이 될 것이다.

건전한 양식을 가진 시민과 지식인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차별을 감수할 약자, 그에 저항하는 활동가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망칠 혐오와 차별을 견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극우 포퓰리즘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비참한 일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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