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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살려면 검찰 견제보다 권력 비리 수사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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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1년 만에 무용론과 폐지론의 도마에 올랐다. 수사력 부족과 인권 침해 논란이 그치지 않은 1년 동안 낙제점 수준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정권의 시녀’라는 거친 비판까지 나왔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할 수 있는 수사기관으로 기대를 모았던 공수처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 1년 동안 24건을 수사하고서 단 1건도 기소하지 못했다는 게 공수처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1호 사건인 조희연 서울교육감 사건에서부터 단추를 잘못 채운 뒤 수사하는 사건마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급기야 통신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조회하다 사찰 논란까지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패방지와 검찰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야심차게 출범시킨 공수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공수처 출범 논의에 깊이 관여했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공수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공수처가 지난 한 해 24건을 수사하고도 기소는 한 건도 하지 못했다. 낙제점 수준의 부진한 성과의 원인은.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수사를 감당할 충분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채 출범하다 보니 수사업무를 수행할 역량을 키울 기회조차 놓쳐 버린 것이다. 목표 없이 접근했고 실력을 키울 기회를 상실했던 게 공수처 1년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내부적으로 수사 역량을 함양할 기회를 상실하고 외부적으로는 전문 수사 기관인 검찰 및 경찰과의 협조체제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수사 성과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다.”
-관심이 집중됐던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교육감 사건을 선택했다. 1호 사건으로서의 무게감이나 상징성을 평가한다면.
“공수처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떠맡은 사건이다.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관심에 떠밀려 쫓기듯 떠맡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미 감사원 감사가 끝나서 1차 평가를 마친 사건이라 단순히 법 적용만 해서 처리하면 되는 사건이었다. 공수처라는 아주 특별한 수사기관이 개입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1호 사건으로 입건하면서 왜 이 사건을 공수처가 맡아야 되는지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공수처의 독립성ㆍ중립성ㆍ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국민의 신뢰인데, 공수처가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인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 게 가장 비판받을 대목이다.”
-수사과정이나 결과는 문제가 없나.
“조 교육감이 공수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를 밝혔는데도 인권 수사를 하겠다는 공수처가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이미 모두 확보한 자료를 임의 제출 형식으로 받아 얼마든지 수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인권침해적 강제 수사를 동원했다는 것도 공수처가 반성해야 될 부분이다. 공수처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혐의 대부분을 검찰에서는 불기소로 처분했다. 1호 사건의 처리 결과만 놓고 보면 공수처의 역량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유출한 혐의를 받던 이규원 검사 사건을 두고는 처음부터 검찰과 관할권 다툼을 벌였다.
“공수처와 같은 특별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가 나타나게 되면 기존에 그 업무를 담당하던 부서 또는 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실제 영국에서 공수처와 같은 부패범죄수사기관(SFO)을 만들 때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기존 수사기관들과 협의를 거쳐 프로토콜, 즉 처리지침을 만들었다. 공수처가 출범할 때도 검찰을 감독하는 법무부 장관, 경찰을 관할하는 행자부 장관, 공수처장 등이 만나 협력 체계를 마련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과정이 없다 보니 협조 관계여야 될 검찰과 오히려 적대관계가 돼 버렸다. 공수처 탄생의 한계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애초 권력형 범죄척결기구로 제안됐던 공수처가 검찰개혁 논의에 휩쓸리면서 검찰 범죄를 척결하는 기구로 위상이 정립되고 말았다.”
-이규원 검사 사건은 공수처가 수사한 뒤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또 논란이 불거졌다.
“공수처 역량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수사를 해 놓고 기소 여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검찰에 넘겨버렸다. 공수처가 판사와 검사, 고위직 경찰에 대해 기소권을 행사하는데, 얼마 안 되는 기소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공수처라면 국민의 신뢰를 받기는커녕 옥상옥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됐다.”
-이규원 검사의 허위면담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수사하면서 관련 자료는 청와대에서 모두 넘겨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이 집중되는 곳이 청와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청와대는 권력형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의 잠재적 1호 수사 대상이다. 청와대에 대해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과거 검찰이 권력에 굴종했던 관행대로 자료를 임의 제출받았다는 것은 공수처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에 대해 강제 수사를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권력형 범죄를 척결하겠다는 건지 공수처가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고발사주 사건은 체포ㆍ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나.
“사건의 핵심은 검찰이 고발을 사주했다는 게 아니라 고발사주로 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이다. 총선 과정에 개입했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 사건인데, 상당히 어려운 수사다. 문제는 어려운 수사를 하면서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단계를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입건 기준부터 국민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입건 기준에 미달한다면 검찰이나 경찰로 과감하게 넘겨야 하는데 이런 한계조차 분명히 하지 않았다. 입건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사건을 종결하는 기준도 뚜렷하지 않다. 사실 고발사주처럼 실체를 밝히기 쉽지 않은 사건은 어느 순간 털어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영장기각은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야당에서는 출범 당시부터 공수처를 ‘정권 호위처’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공수처가 법무ㆍ검찰 갈등으로 야기된 수사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받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외부 견제장치의 마련을 주문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공수처를 권력의 시녀라고 비난했다. 수사의 중립성ㆍ독립성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24개 사건 가운데 조희연 교육감 사건을 제외하고 전부 검찰 관련 사건이다. 권력형 부정부패 또는 비리 범죄를 척결하는 수사기관으로서 공수처의 존재 의미를 벗어났다. 공수처는 검찰이 권력에 부합하느라고 덮어버린 사건 또는 권력에 봉사하느라 조작한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공수처는 권력형 범죄보다 검찰을 처벌하기 위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수사 대상이 소위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으로 야기됐거나 연관된 사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부분도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정치적 편향성을 거론하는 야당의 주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수사심의회를 비롯해 수사ㆍ기소 단계에 대한 내ㆍ외부 견제장치는 현재로서 충분한가.
“공수처는 거버넌스 체제를 제대로 완비하지 못하고 있다. 자문위원회를 두기는 했지만 자문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았다. 자문회의 자체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수사심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어기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다 보니 정치적 편파성이라는 비난을 피해 갈 방법이 없게 됐다.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열린 의사결정 구조가 미흡하다 보니 모든 리스크를 공수처장 혼자 부담하게 되는 구조가 됐다.”
-통신조회 논란은 공수처의 신뢰까지 흔들었다. 통신조회 어떤 점이 문제인가.
“우선 무차별 조회가 문제다. 통상 보이스피싱 범죄 등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하는 범죄를 수사하면서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하는데 공수처는 그런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과연 통신자료를 그렇게 광범위하게 수집할 필요가 있었는지 일단 짚어야 하고, 통신자료 조회를 통해 확보한 인적사항을 어떤 방식으로 최종 확인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과거에는 수사기관들이 건보공단의 협조를 받아 최종 확인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건보공단이 협조를 끊은 상황이라, 인적사항을 최종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적 수사 관행이 있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통신조회보다 법원 영장을 발부받아 취재기자의 통신사실을 조회한 것은 더 큰 문제다. 법원의 허가가 있었다 하더라도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대목이라 공수처가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재발방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수처는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의 수사인력이 부족하다며 증원을 요구하는데, 얼마나 늘려야 하나.
“검사가 25명이지만 공판에 5명 정도 투입한다 치면 나머지 20명으로 1년에 1~2건 정도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인력은 최소 3배 정도는 늘려야 된다. 인력 충원과 함께 수사기법을 개발하는 등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국회에서도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아울러 공수처가 공룡기관이 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공수처는 정부나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 만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공수처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국면을 맞아 정치권에서는 공수처 폐지론부터 대대적 개혁론까지 분출되고 있다. 한 교수는 “공수처 폐지론은 합리적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공수처가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시민사회와 정부, 특히 청와대가 나서서 수사기관 사이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공수처 폐지라는 강경론을 제시하고 윤석열 후보는 강력한 개혁을 주문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공수처가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검찰개혁 수단으로서의 공수처가 아니라 권력형 비리 범죄를 척결하는 선도 기관으로 역할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지난 1년이 시행착오의 기간이었다면 지금 맡고 있는 사건들은 빨리 정리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대신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우리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수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공수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는 공수처가 본연의 역할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외부에서 공수처를 돕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나.
“무엇보다 검찰이나 경찰이 공수처와 협조 관계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이건 시민사회나 제3자가 나설 수 없고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 경찰청과 공수처, 검찰의 수사 체계에 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한 뒤 국회에서 수사절차법 제정 등 입법적 뒷받침을 한다든지 예산 증액을 논의하는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어떤 자구책을 제시해야 할까.
“100명도 채 안 되는 공수처에서 내부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은다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공수처가 시민사회와 국민에게 묻고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공수처장이 대중 앞에 나서지도 않는 구조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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