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과학자는 보통 자신이 하는 연구의 성과를 빨리 얻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살아생전 결실을 맺기 힘든 연구를 진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구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태양과 다른 별 사이 '성간 공간의 탐사'가 그런 분야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그룹은 성간 탐사 계획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태양계 탐사는 주로 특정 목표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현재도 맹활약 중인 화성 탐사 로봇이나 파커 태양 탐사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성간 공간은 몇 세대에 걸쳐 이루어질 장기 탐사의 대상이다. 보고서에선 2030년대 중반에 탐사선이 발사된다면 50년에서 100년 정도 탐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태양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이 태양권인데, 성간 공간의 탐사를 위해선 태양권 바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 표면에선 전하를 띤 다양한 입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는데 이를 태양풍이라 한다. 성간 공간엔 다른 별들이 방출하는 입자의 흐름과 우주 먼지 등 다양한 종류의 성간 물질이 존재한다. 태양권의 경계는 바로 태양풍과 성간 물질이 만나 부딪히며 압력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경계까지의 거리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의 최소 120배 이상이 될 정도로 멀다. 보고서에서 제안된 탐사선의 속도로도 무려 15년이나 걸릴 거리다.
희박한 성간 물질만 존재하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 과학자들이 보고자 하는 건 뭘까? 우선 태양권의 모양에 대한 직접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태양은 은하계의 나선형 팔에 속해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태양권은 성간풍에 맞서는 방향으로는 눌려 축소되고 반대로는 혜성 꼬리처럼 길쭉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를 정확히 알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 성간 탐사가 본격화하면 태양권의 형상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될 것이고, 이와 더불어 태양의 형성 과정이나 태양계와 성간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연구가 태양계의 내부 깊숙이 자리 잡은 지구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태양권의 형상 변화는 어쩌면 지구와 그 위의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태양이 움직이는 성간 공간은 균일하지 않다. 초신성 폭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성간 물질의 분포가 위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태양은 국부 성간 구름이라는 한 영역을 지나왔고 그 끝을 향해 다가가는 듯 보인다. 성간 물질의 분포가 달라지면 태양권의 모양도 바뀌며 지구로 쏟아지는 입자나 복사의 분포와 밀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의 입자나 복사가 유전자 변형을 유도하며 지구 위 생명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을 생각하면 성간 영역에 대한 심도 있는 탐사는 장기적으로는 지구와 생명의 진화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띤 연구가 될 것이다.
극도로 차가우며 고에너지의 입자들이 날아다니는 척박한 우주에서 50년 넘게 버티며 다양한 측정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전송할 탐사선의 설계와 제작은 어렵지 않을까? 인류는 이미 태양권을 떠나 성간 영역으로 진입한 탐사선을 두 대나 갖고 있다. 바로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 2호다. 두 탐사선은 목성 등의 외행성들에 대한 탐사를 끝낸 후 태양권의 경계를 지나며 측정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보내왔고 4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구와의 교신을 유지하고 있다.
보이저 1, 2호의 바통을 이어받을 미국의 성간 탐사선이 2030년대 중반 발사될 수 있을까? 혹은 중국의 과학계가 동일한 목적의 탐사선을 더 일찍 발사하게 될까? 어느 쪽이 되었든 성간 탐사는 우주와 태양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것이다. 비록 그 성과를 우리 세대에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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