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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우리는 아름다웠다

입력
2022.02.10 22:00
27면
SBS '그해 우리는' 포스터

SBS '그해 우리는' 포스터

우리 역시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자꾸 잊는다. 익숙하고 소박한 나의 것으로부터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 방송국 피디, 아이돌 스타 등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인물들은 겉보기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 꺼풀만 속을 들여다봐도 하나같이 아프고 슬프고 힘겹게 버텨가고 있다. 가난으로 인한 열등감을 드러낼까 두려워 사랑을 버려야 했던 연수, 어린 시절 친부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으로 꿈조차 가질 수 없었던 웅,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거의 버려진 채 혼자만의 추운 껍데기 속에 있어야 했던 지웅, 스타지만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엔제이 등. 그들도 우리처럼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해 우리는'은 그들이 보통의 일상 안에서 겪는 감정의 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각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격랑에 휘말리는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없이도 충분히 위로와 감동을 전달해 주었다. 혹자는 이 드라마에 강한 스토리 라인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력한 스토리 라인은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몰입감을 주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극적 사건들을 따라가며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 이야기로만 다가올 수도 있다.

이 이야기 구조의 다른 면을 보자. 주인공들을 둘러싼 강렬한 스토리로 이루어진 극적 구조의 드라마에서 조연들은 그저 주인공과 사건 전개만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해 우리는'의 조연들은 모두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가지고 이야기 속에서 '인간들'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주인공 친구 1'에 그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존재들이니까.

액션물 추격 장면에서 쫓고 쫓기며 노점들을 치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리어카에서 길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지는 오렌지들, 깜짝 놀라며 길바닥에 주저앉거나 아슬아슬 치일 뻔한 노점상인들이나 행인들은 그저 이야기의 스펙터클일 뿐이다.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 조연이나 단역들이 그저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이런 장면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사밑천을 잃은 노점상들이 그 사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추격 장면에서 넘어지고 쓰러진 행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궁금해할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스토리의 진행과 스펙터클일 뿐이니까. 만일 우리의 삶이 드라마라면 여기서 평범한 우리는 조연이거나 행인 1, 2, 3이 아닐까.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모든 인물이 각자의 삶을 가진 인간들로 살아 숨쉰다. 이를테면 최웅 아버지의 친구이자 철물점 주인인 창식, 연수의 친구 솔이 언니나 회사 대표는 그저 이야기를 위한 단순한 배경이나 도구가 아니라 각자가 개성과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렇듯 '그해 우리는'은 주요 인물들의 연약하고 아픈 이면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삶도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또한 비록 조연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로 다가간 것은 아닐까.


이지영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BTS예술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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