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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의 '기개', 어디서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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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해 8월 "페미니즘이 악용돼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고 말했다. 틀린 말이다. 이성애자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를 막는 것은 친밀한 사이에 있는 남성들의 폭력(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이라는 말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므로 이렇게 쓴다)이나 스토킹이다. 근본적으로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용인해주는 성차별 사회다.
지난해 9월에는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이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국민들 다수는 물론, 인도와 아프리카 사람들까지 모욕하는 말이었다.
윤 후보는 올해 1월 6일에 '무고죄 처벌 강화'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성범죄 피해자 중 무고죄로 기소된 비율은 0.78%에 불과하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는 일부 남성들의 불만을 그대로 적용해서 표현해 본다면, '무고죄 처벌 강화'는 여성을 잠재적 꽃뱀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성폭력 사건에 무고죄부터 거론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다음 날인 7일에는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윤 후보는 성평등 정책 주관 부처를 없애는 대신,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룰 부처를 만들겠다고 했다. 여성을 인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출산도구로만 보는 파시스트 정치인의 시각이 보여서 소름이 돋았다.
부지런한 윤 후보는 지난달 8일 인스타그램에 이마트에서 장보는 사진을 올리며 #달걀 #파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SNS상 발언으로 시작한 '멸공' 챌린지를 무려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이어받은 것이다. 이에 흥을 느꼈는지 일부 야권 인사들도 멸치와 콩 등을 SNS에 올리며 '멸공'을 언급했다.
끔찍하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공산당/빨갱이라는 말은 사실 관계를 떠나서 정적이나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공격하고 죽일 때 찍는 낙인이었다. 그런데도 '멸공'이 재미 있나? 대통령 후보는 물론, 어떤 사람이라도 국민 서로를 '멸'해야 하는 존재로 낙인찍고 공격하게끔 선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 윤 후보는 30일에는 페이스북에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썼다. 사실과 다르다. 외국인 건보 재정은 흑자다. 외국인 혐오를 선동하는 발언이다.
가장 최근의 어록을 보자. 얼마 전 2월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선언했다. 이분은 참 일관적이시다. 반페미니즘, 무고죄 강화, 여가부 폐지에 이어 구조적 성차별 자체가 없다니. 인류의 역사 시대 시작 후 가부장제는 4000년 넘게 지속되어 구조적 성차별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 모든 학계 전문 학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다 인정하는 구조적 성차별이 여기 대한민국에만 없다니, 이 기개, 놀랍다.
지금까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인 윤석열 후보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대강 기억에 남는 발언만 정리했는데도 이 정도 분량이다. 이번 칼럼을 너무 쉽게 쓰는 것 같아서 원고료를 받는 입장에서 한국일보사에 죄송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그건 그렇고, 자, 이 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윤석열 후보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다. 20대 남성들이 모두 외국인 혐오자에 안티 페미니스트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 30대 남성들로 구성된 단체인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의 회원 10여 명이 9일 오전 10시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정치권과 미디어는 혐오를 부추기는 것을 멈추고 성평등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달라"고 '청년 남성'의 입장에서 요구한 것이 대표적 예다.
물론 남초 사이트 등에서 큰 목소리를 내며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는 하다. 중국이나 일본,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보면 무조건 악플 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입후보한 사람이 여론을 반영한답시고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하다.
성숙한 시민 사회에서라면, 말하는 이가 누구든 공적 공간에서 혐오와 차별을 대놓고 주장하는 이들은 비판과 제재를 받기 마련이다. 윤 후보 역시 말할 때마다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분명 윤석열 후보 본인이나 윤 후보 측 선거 캠프에서 이런 발언을 통해 정치적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린다 브렌트 이야기(원제 : 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는 해리엇 제이콥스가 1861년에 쓴 자서전이다. 흑인 노예소녀로서의 삶을 담담히 회고한 이 책은 당시 흑인들의 삶과 노예제도, 백인들의 성폭력을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다. 책에서 한 대목을 인용한다.
'월요일 저녁이 되었다. 그 시간은 언제나 바빴다. 월요일 밤은 노예들이 일주일치의 음식을 배당받는 시간이었다. 남자들은 한 명당 고기 3파운드, 옥수수 16파인트, 청어 열두 마리를 받았다. 여자는 고기 1.5파운드, 옥수수 16파인트, 청어 열두 마리를 받았다.'
여기서 여성 노예들은 남성 노예들이 받는 고기의 절반을 배급받았다는 사실에 주목.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노예제가 있던 당시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들의 반항을 억누른 방법 중의 하나는 남성 노예들에게 여성 노예들보다 음식을 많이 주는 것이었다고. 자신보다 더 차별대우받는 여성 노예들이 있기에 남성 노예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백인 노예주에게 저항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런 예는 우리 역사에도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전체 공장 노동자의 3분의 1 정도였다. 그런데 조선인 남성 노동자는 일본인 남성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2분의 1을, 여성 노동자는 4분의 1만 받았다. '여성의 눈으로 본 한일 근현대사'에서 정확한 금액을 찾아 인용하겠다.
'1931년 당시 성년공 일당 평균은 일본 남성 1.87원, 일본 여성 85전, 조선인 남성 85전, 조선인 여성 46전이었다.'
특히 방직공업 노동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인 소녀 노동자들은 일본인 성년 남성 노동자 임금의 7분의 1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인 남성 노동자들은 일제치하 현실에 불만을 품고 반발하다가도 같은 일을 하고서도 자신들의 절반인 임금을 받는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을 보면서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을 느꼈다. 결국 일본인 공장주들은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함으로써 전체 인건비도 절약하면서 조선인 남성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보면 패턴이 보인다. 집단A를 대접해 주는 방법은 당연히 그 집단에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여기에 편법을 쓰는 지배자들은 A집단보다 차별당하는 B집단을 만들어 A집단 아래에 깔아 준다. A집단 사람들이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현실에 안주해 새로운 요구를 안 하게끔. 이는 지배집단 입장에서는 전체 비용도 아끼면서 A집단의 환심을 사는 가성비 좋은 방식이다.
마찬가지다. 혐오와 차별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윤석열 후보는 바로 이 '가성비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와 차별을 내세운 정치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공약을 내세울 때 깊게 고민하고 팩트 체크해가며 머리를 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윤 후보의 어록에 새로운 차별 대상이 정해진다. 차별받는 B집단, C집단을 만들어낸다. 오늘은 여성, 내일은 외국인 노동자…. 다음은 또 어떤 집단을 겨냥할까. 이런 '가성비를 위한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히틀러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당시에 인종차별 폭력이 만연했던 사실을 잊지 말자. '가성비 좋은 혐오와 차별의 정치'의 결과는 늘 끔찍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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