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광화문 시대 열려면 대통령 경호 축소 감내해야"

입력
2022.02.09 16:00
수정
2022.02.10 16:1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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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깊이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행사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으로 향하는 차량들. 1991년 완공된 청와대 본관의 위압적 구조는 권위주의와 국민들과의 소통 부족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행사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으로 향하는 차량들. 1991년 완공된 청와대 본관의 위압적 구조는 권위주의와 국민들과의 소통 부족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취임 첫날 기존 청와대는 사라진다. 대통령실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설치하겠다.”

지난달 2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청와대 조직의 해체와 집무실 이전 공약을 발표했다. 청와대 관저도 이용하지 않고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등을 이용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이에 앞서 청와대를 국빈 영접과 주요 정치 행사가 있는 날에만 사용하고 평소에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이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공약을 낸 정치인들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권력을 분산시켜 21세기의 다원화된 현실에 맞는 국정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공약이 아니다. 멀리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검토됐고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 이어 지난 대선에서도 “청와대 집무실 광화문 이전과 청와대, 북악산 시민 휴식공간 제공”을 약속했으나 중도에 단념했다. 대선의 단골 공약인 청와대 집무실 이전 공약. 과연 이번에는 실현될 수 있을까.

경호ㆍ부지ㆍ보안… 전임자 불통 논란 지켜봤던 문재인 정부도 중도에 포기

공약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문재인 정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를 백지화했는지를 복기하면 가늠해볼 수 있다. 세월호 사고 당일 관저에 머무르다 늑장 대처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전임자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된 덕분인지 문재인 정부는 이 공약을 꽤 구체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9개월째인 2018년 2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관련 공약을 점검할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했고 위원회 운영과 별개로 자체적 복수의 집무실 이전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11개월 뒤 이 공약은 전격 백지화됐다. 2019년 1월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홍준 자문위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ㆍ본관ㆍ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공약 포기 사유를 설명했다. 결국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구상하다 포기했던 전임자들처럼 문재인 정부도 경호ㆍ의전ㆍ부지ㆍ예산 등의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공약 추진에 관여했던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공약에 애착이 많았으나 공약 이행은 다른 문제였다”며 “경호 쪽에서 난색을 표명했고 이전 시 시민들 불편이 너무 커 포기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서울청사에서의 대통령 전용헬기의 이착륙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대통령 전용헬기는 타깃이 되지 않도록 2대가 동시에 이륙하는데 청와대 경내에 있는 현재 헬기장과 달리 정부서울청사의 헬기장은 안전하지도 않고 동시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광화문 집무실 공약을 발표한 윤석열 후보 측도 이런 사정 때문에 집권하더라도 기존 청와대 경내 헬기장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위에 고층건물이 즐비한 정부서울청사의 입지도 경호상 취약점이다. 청사의 창문을 모두 방탄유리로 교체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예산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게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보안문제도 걸림돌이 됐다고 한다. 정부서울청사에는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 등 주요국 대사관들이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외교안보와 관련된 최고 기밀사항이 논의되기 때문에 동맹국이라고 해도 도ㆍ감청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경호인력ㆍ비서진 등 수많은 수행인력이 근무할 공간 확보도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고 한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정부서울청사 2~3개층을 완전히 비워야 했다. 청와대는 사무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주 후 리모델링 비용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력의 경우 경호처 소속 인력만 현재 690명에 달한다. 외곽을 경계하는 경찰ㆍ군병력을 포함하면 3,000명 이상이 청와대를 경호하고 있다.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는 군부대를 광화문 일대로 이전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경호인력을 제외한) 500명 가까운 청와대 직원들이 갈 만한 공간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여성가족부, 금융위원회 등이 입주해 있는 정부서울청사 본관은 직원 2,600여 명이 근무하고 있고, 외교부가 사용하는 별관의 경우 1,20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본관으로든 별관으로든 청와대 집무실이 옮겨온다면 최소한 청사에 입주해 있는 현재 인력의 3분의 1 이상이 연쇄적으로 새 공간을 찾아야 한다. 이 공약을 백지화한 이후 문 대통령이 “경제가 엄중한 시기에 많은 리모델링 비용을 사용하고 행정상 혼란도 상당 기간 있을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한 이유다. 당시 새로운 집무실과 관련해 보안시스템 구축에만 100억 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어느 정도로 공약 추진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광화문시대위원회에 참여했던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여러 전임자들도 추진하다 포기했던 공약인 만큼 집권과 동시에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했는데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 초이지만 공약 추진 동력이 예상만큼 강력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다. 문 대통령이 광화문 집무실 이전보다는 수도 이전을 포함한 좀 더 큰 청사진에 관심을 가졌다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권 초에 대통령은 4년 연임이 포함된 개헌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개헌안에는 서울을 옮기는 것까지 검토됐다”며 “공약 백지화의 원인은 복합적이었지만 대통령이 수도 이전과 연계해 큰 그림을 구상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3월 공개됐던 정부의 개헌안에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과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포기하는 대신 세종시에 제2집무실을 신축하는 논의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도 세종시에 청와대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당 당론으로 발의돼 있다.

지난해 1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상공인단체들의 집합제한 규제 규탄 기자회견. 이 청사는 청와대 이전 대상으로 빈번히 거론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상공인단체들의 집합제한 규제 규탄 기자회견. 이 청사는 청와대 이전 대상으로 빈번히 거론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호 취약점 해결 불가능 vs 대통령 의지만 있으면 가능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 포기에서 드러나듯 가장 큰 난제는 경호 문제다. 경호실, 군, 경찰의 3선 경호가 기본인 현재의 대통령 경호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경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단순히 헌법상 행정부 수반만이 아닌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의 권한을 지니고 있는 이상 함부로 경호를 간소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청와대 경호처에 근무했던 김두현 한국체육대 명예교수(국민안전관리연구소 소장)는 “총기와 화기의 첨단화, 기술발달 추세를 감안할 때 반경 2㎞까지 통제돼야 대통령의 신변안전이 담보되는데 정부서울청사는 청사에서 울타리까지 거리가 18m밖에 안 된다”며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고 남북분단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 광화문 집무실 이전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 개방 범위가 확대됐고 경호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만약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현재와 같은 경호방식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공미사일, 대공포, 공중차단시스템 등이 배치된 군사보호구역인데 집무실이 광화문으로 이전될 경우 통제가 강화돼 시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대통령 이동 시에는 폭발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방해전파를 발신하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면 휴대폰 불통 같은 문제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내에 관저, 영빈관, 헬기장, 대피용 지하 벙커 등이 모여 있는 현 청와대와 달리 관저, 집무실, 영빈관, 헬기장 등이 분리될 경우 동선(動線)이 복잡해지고 교통 통제가 빈번해져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반면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이런 경호상 난점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이전 계획을 검토했던 실무자는 “정부청사관리소에 자문해 이전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고 경호부서에서도 안을 가져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며 “대통령의 결단만 있으면 경호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윤석열 후보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호 문제도 다 검토했다. 대통령 경호를 지금처럼(과하게) 할 것 없다”고 밝혔다. 경호 완화를 전제로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안철수 후보 측은 “현재 경호실 예산 및 경찰 협조로 충분히 이전이 가능하다”며 “다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호매뉴얼 재편은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용우 성신여대 지리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백악관, 영국 다우닝가 총리관저, 브라질 대통령궁 등 각국 지도자 숙소는 시민들이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에 있다”며 “정부서울청사는 웬만한 공격에 타격을 받을 정도로 허술하지 않으며 광화문 인근에 경호가 가능한 관저 부지도 여러 곳 있다”고 광화문 집무실 이전이 가능하다고 봤다.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폐해 타파, 소통 강화 등을 내세우며 정치인들이 청와대 이전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것은 청와대 입지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능력,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격의 없는 기자회견을 자주 갖는 등 대통령이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는데 집무실만 이전한들 소통이 아닌 ‘쇼통’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국민 30%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모든 걸 독식할 수 있는 반주권ㆍ반공화주의적 권력구조 해소가 문제의 본질”이라며 “야당과 비판세력을 존중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권력구조 개편이 뒤따르지 않으면 청와대 이전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공관 배치도

청와대 공관 배치도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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