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먹을 것은 나무에 항상 열리니 일할 필요도 없다. 따사로운 온기에 옷도 필요 없어 늘 누드로 지낸다. 저녁이면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히니 리비도가 온몸에 팽창한다. 그런데 혼자다. 여긴 무인도. 그곳이 에덴이고 주민 아담은 싱글이었다. 초호화 호텔 스위트룸에 혼자 있어 보셨는지?
그러다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이 여자를 데려와 주셨다. 솔로지옥이 커플천국이 되는 그 흥분된 순간은 이러했다.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세기 2:23-25) 하나님이 뒤늦게 여자를 남자에게 데려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2:18)
싱글이나 돌싱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사실 성경은 결혼뿐만 아니라 당당한 솔로도 존중한다. 성경에 '이혼증서'는 번번이 언급되니 불가피할 때에는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재혼도 언급한다. 물론 꼭 긍정적인 정황에서 언급되진 않지만.
심지어 특수한 경우에는 혼자 살 것을 바울이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열렬히 복음을 전파하면서 집을 떠나 있었고 솔로였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그들에게 좋습니다." 다만 이들이 결혼을 하여야 할 이유로 이 같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고린도전서 7:7-9)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는 벗고 지내는 것에 부끄럼 없이 한 몸 되는 환희를 즐겼으니, 이 부부는 인류에게 원죄뿐만 아니라 원초적 본능도 전수하셨나 보다.
요새 다이어리의 주말 일정을 보면 결혼식이 줄줄이 겹겹이 적혀 있다. 코로나로 2년간 미루어 왔던 결혼식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발한다. 어느 젊은 커플의 결혼을 축하하며 성서가 전하는 지혜의 문구를 선사했다. 혼자 사는 것과 둘이 되는 것을 기가 막히게 비교한 전도서의 글이다.
"한 남자가 있다. 자식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산다. 그러나 그는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산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하고 말하니, 그의 수고도 헛되고, 부질없는 일이다."(4:8) 홀로 멋지게 사는 인생의 최고봉은 재력의 겸비에 있으리라고 누구든지 상상하지만, 실상은 이 구절 같은가 보다.
곧이어 혼자가 아닌 둘이 되는 것의 최고봉은 무엇인지 이렇게 말한다. 오글거리는 감성 멘트는 없다. 담담하게 실질적 이야기를 한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9-10) 하나님이 아담의 싱글라이프를 걱정했던 것은 어쩌면 감성보다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그리고 이 추운 겨울날 난방비를 아낄 수 있는 진짜 유익도 알려준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11)
에덴동산을 떠나면 난방비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곧 전쟁터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10) 둘이 합하는데 왜 세 겹줄일까? 둘에 무언가 하나만 더 더해질 수 있다면 정말 든든하고 강한가 보다. 그 하나는 무엇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