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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문제 있나봐"했던 나... 어렴풋이 힌트를 얻었다 [마음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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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두근두근. 희한하게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심장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설렌다기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나보고 비정상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결과지를 설명해주는 심리상담가는 "이건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지금 내가 어떤가'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자꾸 성적표를 보고 반성하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질 성적표 사태'의 시작은 지난달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meet me)'에서 1월 온라인 리추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기질 및 성격 목록) 온라인 검사 및 해설 강연 수강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1월에만 약 450명이 밑미를 통해 TCI 검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기자는 이미 지난해 5월 밑미에서 TCI 검사 기회를 제공해줘서 한 차례 검사를 받은 바 있다.
'100점 만점에 4점'. 당시 '자율성' 척도에서 받은 점수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 터라 충격이 컸다. 나름대로 1년여간 내면을 잘 돌봤다는 생각에 이번엔 좀 다르게 나오지 않을까 싶어, 한 번 더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성격 유형 검사를 비롯해 각종 성격테스트를 즐겨 하는 까닭에 어렵지 않게 140문항에 답을 할 수 있었다. '제출하기'를 누르니 10분이 금세 지나 있었다.
이후 지난달 19일 밑미에서 제공하는 박현순 심리상담사의 TCI 검사 해석 강연을 온라인으로 들었다. 화상통화로 만난 박 상담사는 검사 결과지를 해석하는 법과 결과를 내 삶에 적용시키는 법을 일종의 강의처럼 설명해줬다.
TCI 검사는 크게 선천성을 지닌 '기질'과 후천성을 갖는 '성격'을 구분해 개인의 인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결과는 크게 △기질 척도(자극 추구, 위험 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와, △성격 척도(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로 나뉜다.
'아, 난 정말 위험을 싫어하나보다. 나 왜 이러지?' 지난번 검사 때도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은 '위험 회피' 점수가 이번에도 100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심성이 많고 세심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사회적 민감성' 점수도 89점으로 높게 나왔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을 많이 하며 사회적 접촉이 많으나 타인의 말에 휘둘리기도 하는 게 특징이다.
'난 정말 문제가 있나봐…' 혼잣말을 하며 괴로워하는 걸 읽었는지 박 상담사는 "이 결과는 '내가 지금 이런 상태구나'라고 호기심 있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라면서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기자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는 기질적 특성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높은 '자극 추구'(백분위 71점)다. 박 상담사는 "자극 추구와 위험 회피가 동시에 높으면 마음의 갈등이 많고 내면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는 서핑, 등산 등 액티비티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겁이 많은 편이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에 가는 것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쉽게 피곤해하고 수줍음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까지 챙기니(사회적 민감성) 내면의 갈등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이에 대해 박 상담사는 "이런 분들은 '내가 참 힘들었겠다, 그럼에도 잘 살아왔다'라고 자신을 위로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자도 가끔은 스스로가 참 역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다.
한편 근면·끈기 등 인내력 점수는 9점으로 매우 낮았다. 심지어 지난해 5월 28일에 같은 검사를 시행했는데, 그 당시 결과는 무려 백분위 1점이 나왔다. 특히나 근면과 끈기가 낮은 것으로 나왔다. 당시 온라인 리추얼을 함께했던 심리상담사는 이에 대해 "선천적으로는 끈기가 부족하지만 매일 해야 하는 리추얼을 100% 달성한 것을 봤을 때 후천적으로 성실하게 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40점이나 올랐네! 나 정말 많이 나아졌나보다.' 성격은 지난 1년 동안 많이 개선됐음이 느껴졌다. 지난해 5월엔 4점에 불과했던 '자율성' 점수가 이번엔 44점으로 향상돼 있었다. 자율성이 낮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자율성의 하위항목 중 특히나 낮았던 '자기수용'과 '자기일치'가 높아진 덕이다. 1년 동안 매일 일기 쓰기와 아침 요가를 해온 습관을 원인으로 꼽아볼 만하다. 꾸준히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파악하려 노력했고, 또 그 꾸준함 속에서 작은 성취감이 쌓인 것이다.
이와 관련 손하빈 밑미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상에서 하는 작은 리추얼들이 내 삶의 주도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자기 관찰을 통해 '내가 좇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를 뚜렷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밑미가 TCI 검사를 진행한 사람들에게 제공한 '온라인 질문카드'도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연결될 때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제시한다.
한편 '연대감'과 '자기초월'은 각각 74점과 87점으로 여전히 높게 나왔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협조적이면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 창조적, 독창적이다. 자기초월은 보통 종교를 갖고 있거나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은 경우 높게 나온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종교를 갖고 있는 기자는 합리적 유물론보다는 영성수용과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검사는 '내가 문제가 있다'라는 판단과 평가보다는 '내가 힘들구나'라는 이해와 수용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박 상담사가 해설 강연 동안 계속 강조한 얘기다.
기자는 결과지를 받고 "역시 난 소심해"라는 자책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박 상담사는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며 "기질은 받아들이고 성격은 변화함으로써 나답게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병배, 오현숙, 이주영(2021)이 저술한 '기질 및 성격 검사 통합 매뉴얼 개정판'은 "자신의 기질이 그대로 수용되는 환경 속에서는 성격의 발달로 이어지고, 성격의 성숙은 기질 반응의 조절로 이어진다"며 "즉, 성격 발달은 기질의 수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기자는 눈치를 보는 스스로를 많이 채찍질해왔다. 이에 대해 질문카드는 '나의 기질을 수용하기 위해 내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안내한다. 이 질문카드는 밑미가 이번 TCI 검사를 진행한 이들로 하여금 결과를 리뷰해보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제공됐다.
이에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과 타인에 대해 예민함이 높은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갖느라 고생했다"고 적었다. 쓰고 나니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나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스스로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달려오느라 정작 '내 편'이 돼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함마저 들었다.
또 '내가 변화시키고 싶은 부분을 선택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으라'는 질문카드에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나를 더 받아주고 싶다"고 썼다. 기자는 성격 척도에서 '자율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데 반해 하위항목인 '목적의식'은 높은 편이다. 즉, "자신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기자에게 질문카드는 "자기수용을 더 높이고 싶다면, '나에게 매일 칭찬하기'와 같은 작은 리추얼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위하여."
라인홀드 니버
밑미의 온라인 질문카드에 나온 첫 문장으로,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더 알아가고 싶었던 기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규정하고 파악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알려고 할수록 더욱 모호했던 내 마음. '변덕인가 조울인가 수십 가지의 페르소나가 들어 있는 건가.' 이제야 어렴풋하게나마 힌트를 얻었다. 그동안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보려고 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해왔던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인 건지도 모른다. 첫 단추를 이제야 꿰나 싶어 막막하지만, 질문카드를 적으면서 내쉬었던 한숨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참고: TCI는 전문가의 실시 및 해석이 필요한 검사다. 일정 구매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마음사랑 홈페이지에서 TCI 검사를 구매 및 해석할 수는 없다. 따라서 관심이 있다면 가까운 상담 기관을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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