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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맞불신고로 되레 '문제아 낙인'… 학폭 즉시분리 부작용 현실로

입력
2022.02.09 12:00
수정
2022.02.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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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 신고되면 즉각 피신고자 격리 조치
가해자들이 연이어 피해자 상대 보복신고 현실화
억울하게 가해자 낙인 찍히면 갈등 해결 더욱 요원
"학교장 해결 가능 판단 땐 분리 예외" 법 개정 추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가해 학생을 피해 학생으로부터 즉각 떼어놓는 '즉시분리' 제도가 도입됐지만 가해자의 보복신고 등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선 피해자가 되레 격리 대상이 돼서 가해자로 잘못 낙인찍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즉시분리 적용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개정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학교장은 피해자가 반대하지 않는 한 가해 학생을 최대 3일간 격리해야 한다. 학교 내 별도 공간에서 학습하거나 가정에서 원격수업을 받게 하는 방식이다. 즉시분리로 불리는 이 제도는 학교폭력 갈등 상황을 완화하고 당사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발생하는 2차 가해를 막고자 시행됐다.

하지만 일선에선 제도 부작용이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날 사단법인 한국회복적정의협회가 주최한 '즉시분리 시행조치 문제점 및 회복적 대안에 관한 포럼'에서 학교폭력 담당 교사들은 즉시분리제가 보복신고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우 경기 금암초 교사는 "학생 쌍방이 서로 피해를 주장하면 모두를 분리시킨다는 맹점이 보복신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도 소재 한 학교에선 가해 학생 3명이 피해 학생 1명을 돌아가면서 역신고하는 통에 피해자가 총 9일 동안 격리돼 교실이 아닌 곳에서 학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상우 교사는 "시험 기간을 코앞에 두고 있거나 입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학생이 분리 조치되면 부모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며 "즉시분리가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등 갈등 상황이 극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고 초기부터 즉시분리가 이뤄지다 보니 사안이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전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폭력 행사자로 오인될 위험도 있다. 누군가 돌연 교실에 3일간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이 학폭 신고 사실을 알게 되고 자리에 없는 친구를 가해자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자 경기 수원시 선행초 교사는 "가해 학생에 대한 비밀 유지가 되지 않다 보니,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학내 소문과 분리로 인한 낙인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즉시분리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피해 학생이 분리를 반대하거나 방학 중인 경우 등 극히 일부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즉시분리 예외 조치를, 학교장이 자체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도 허용하자는 것이 골자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초등정책팀장은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교육부와 논의해 분리 조치의 예외 부분 단서를 추가하려 한다"며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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